세계 무탄소 발전 시장, 한국 원자력이 파고든다

황주호 경희대 명예교수. 전 한국원자력학회장 2021. 6. 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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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의 '한·미 공동 해외 원자력 진출 협력 합의'의 의미

(시사저널=황주호 경희대 명예교수. 전 한국원자력학회장)

"가슴 벅차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보고 난 여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남긴 첫 한마디다. 대통령 방미 전에 있었던 여당 지도부 간담회에서 한·미 원자력 협력을 강조했던 집권당 대표로서 다행스러운 느낌이었을 것이다. 5월21일 워싱턴 현지에서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원전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해 해외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안보·비확산 기준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혁신형 SMR 국회 포럼 발표자료

한·미 원자력 협력의 물꼬를 트다

우리나라는 2015년 개정한 한미원자력협력협정에 따라 한·미 양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는 우리 원자력 수출 업계가 미국산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는 이른바 포괄적 동의를 확보했다. 그러나 2017년 본격화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신규원전사업에 우리나라가 진출하고자 할 때 원천기술 제공자인 웨스팅하우스가 제동을 걸었고 이를 해결하려는 도중에 정부 당국 간 오해가 발생하면서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은 대화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원자력 연구·개발 분야 주요 협력도 무산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렇게 꽉 막혔던 한·미 원자력 협력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러시아와 중국은 세계 원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해 왔다. 특히 러시아는 방글라데시, 벨라루스, 중국, 이집트, 핀란드, 헝가리, 인도, 이란, 터키 등에서 건설을 추진 또는 진행 중이고 중국은 파키스탄과 영국에서 건설과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원전 시장에 급진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안전· 안보·핵비확산 정책의 약화를 불러올 것으로 많은 전문가가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미 정상이 합의한 해외 원전 시장 진출 협력과 최고 수준의 안전·안보·비확산 기준 유지는 우리의 경제적 이득을 넘어서는 글로벌 수준의 기여를 의미한다.

무탄소 발전 늘려야 '탄소중립' 가능

세계 각국은 2015년 파리협약을 기점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탄소중립을 향한 각종 정책들은 2050년 또는 2060년 등으로 목표 일정까지 정하고 추진 중이지만 발전 분야의 전망을 보면 재생 에너지 발전을 포함한 무탄소 발전을 대폭 확대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할 것이다. 각국은 폐쇄하는 석탄발전소를 대체할 전력원이 필요하다. 2018년 전 세계 전력 생산의 64%를 화석연료 발전이 담당해 왔으며, 지난 10년간 재생 에너지 발전에 엄청나게 투자해 왔음에도 이 값은 변하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벨라루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러시아가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로 우리나라 1980~90년대처럼 전력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동유럽 국가들,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와 태국, 인도와 중동, 아프리카 나라들도 전력소비 증가를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나라들이 전력공급을 무탄소로 하려면 전력계통의 기본 축을 대형 원전으로 해결해야 하며 그러한 시장을 뚫은 것이 러시아다. 미국, 프랑스 등 수십 년간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가 재개하면서 건설과 기자재 공급에 차질을 빚은 경우에는 대형 원전이 경제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대형 원전이냐, 중소형 원전이냐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원전을 표준화해 순차적으로 여러 기를 건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원칙적으로 대형 원전은 규모의 경제를 고려할 때 전력 생산단가를 낮게 유지하기에 적당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신규 또는 노후 원전 대체용 대형 원전 시장은 꾸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에 대형 원전을 수출했고 예산 범위 내에서 공사기간에 맞춰(On-time, On-budget) 완공한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인구가 적으면서도 넓은 땅에 도시가 분산돼 있는 나라들은 장거리 송전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중소형 원전을 배치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극지방이나 오지 광산 등에도 중소형로가 무탄소 발전원으로 적합하다. 중소형 원전의 안전성을 극대화한다면 도시 근교의 석탄이나 가스발전소를 대체하는 수요로서 그 잠재 규모는 무궁하다.

문제는 누가 먼저 시장을 열 것인가, 그리고 열린 시장을 장악할 것인가에 있다. 우리나라는 소형 원전인 SMART 개발 이후에 더욱 혁신적인 중소형로 개발을 계획하고 있으며 여야 공동으로 혁신중소형로 개발 국회포럼이 구성돼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두산중공업과 협약을 맺고 원자력수소 생산기술을 개발키로 하는 등 탄소중립을 위한 원자력의 기여를 고려하면 원자력 발전 시장의 확대된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후속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1. '경제동맹' 수준의 양국 원전 공급망 구축

미국은 지난 30년간 거의 원전 건설이 없었으므로 건설 관련 공급망이 부실하다. 반면에 아직도 90여 개에 달하는 원전을 세계 최고의 이용률로 운영 중이고 전 세계에 공급한 수백 기의 원전 유지·보수를 지원하므로 유지·보수 분야 공급망과 노하우는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설계·건설·제작 면에서는 세계적 우위를 가지고 있으나 유지·보수 분야는 최고라 할 수 없다. 아랍에미리트 원전을 우리가 건설해 놓고도 장기 유지·보수의 주계약자가 되지 못한 일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간 상호 보완적인 유지·보수 협력체계를 구축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원전 공급망 협력체계를 경제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최고 수준의 안전 기준 유지

우리 원자력 안전규제는 기존 원전 설계를 검토하는 수준에서 매우 치밀하고 효과적이다. 다만 새로운 원전의 설계를 검토하려면 기술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SMART 인허가를 추진하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신개념의 장치나 원자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 기술 개발과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 한·미 간 원자로 안전규제 협력을 정보 교환 수준을 넘어 규제 실무로 연결하는 협력체계 구축까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3. 최고 수준의 비확산 기준 유지

우리나라는 2003년 연구 단계에서 핵물질 농축과 재처리를 시도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것 때문에 유엔 안보리의 제재 문턱까지 갔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을 설립하고 원자력 기자재 수출입 통제와 핵물질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확실하게 우리나라의 핵비확산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하는 '핵비확산 국제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해 태평양 연안국들의 핵비확산 연구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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