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아동 대책 재고해야 [오늘을 생각한다]

2021. 6. 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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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난 4월, 법무부가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한시적 구제 대책을 발표했다. 그간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경우 강제퇴거를 유예한다는 법무부 지침에 따라 암묵적으로 국내 체류를 허용받아왔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강제퇴거의 불안에 시달리는 암울한 현실 아래서 살아야 했다. 그들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번 구제 대책이 반가워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국내 출생, 15년 이상 거주, 중·고교 재학 또는 고교 졸업이라는 구제 대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살 청년 A는 다섯 살 때 한국에 왔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마쳤고, 25년 가까이 한국에 살았다. 그러나 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번 구제 대책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주아동 B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B는 곧 만 열다섯 살이 돼 가까스로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될 테지만 초등학생 동생들은 미등록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반면 두 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스물한 살 청년 C는 한국에서 태어나 현재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생들만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한국에 장기간 거주한 이주아동은 한국인에 준하는 정체성이 형성돼 있고, 모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본국에 유대 관계도 없어 본국에 돌아가면 적응이 어렵다. 무엇보다 미등록으로 체류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체류자격 없이 살게 된 것은 아동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 구제 대책 시행의 배경이다. 그렇다면 체류자격을 부여할 대상이 반드시 국내 출생 미등록 이주아동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아동과 영유아기에 한국에 온 이주아동이 동일한 기간 동안 국내에 체류했다면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초·중·고 교육기간이 12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5년 이상의 거주기간을 요구하는 것도 지나치다. 법무부는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의 교육에 투입된 공적 자원을 고려할 때 이들에게 체류 기회를 주는 것이 한국사회에도 이익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단순히 거주기간을 따질 것이 아니라 공교육 이수기간을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대체로 5년 안팎의 거주 또는 공교육 이수를 자격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거주기간보다는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통합의 정도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체류자격 부여는 꽤 오랫동안 국내 인권단체뿐 아니라 국제 인권기구에서도 요구해온 바다. 그렇기에 이번 구제 대책이 의미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까다로운 자격조건과 한시적 시행이라는 한계 등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부디 이미 발표됐다는 이유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외면한 채 구제 대책을 시행하기보다는 아동 최상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아동권리의 원칙에 입각해 구제 대책이 재정비되기를 바란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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