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극단 선택' 성추행 피해자 '단순 변사'로 보고했다

장나래 2021. 6. 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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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 성폭력]엉터리 수사·부실 대응 속속 드러나
피해자 분리 조처까지 2주 걸려
숨진 뒤 뒤늦게 가해자 휴대폰 확보
추행 구체적 적시해 '2차 피해'도
"책임자 엄중 문책을" 비판 일어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 모 중사가 2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방부 제공.

공군이 성추행 피해를 입은 이아무개 중사의 극단적인 선택을 국방부에 ‘단순 변사’로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자체 수사를 진행하던 공군의 엉터리 수사와 부실 대응 정황도 드러났다. 국방부 검찰단은 공군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 의혹도 수사할 계획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2일 “공군 군사경찰이 이 중사 사망 사흘 뒤인 지난 달 25일 국방부 조사본부에 ‘단순 사망’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보고에는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모습이 촬영된 휴대전화가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내용만 담겼을 뿐, 이 중사가 성폭력 피해자이고 관련 조사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은 누락됐다. 이에 국방부는 이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동영상까지 남긴 이유가 무엇인지 추가 보고하라고 지시했지만 공군은 1주일 동안 후속 보고를 하지 않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이 알려진 뒤에야 성추행 피해 사실과 수사 경위 보고가 올라왔다고 한다. 국방부 당국자는 “후속 보고를 요구했는데 공군이 우물쭈물하며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군검찰단은 이런 부분까지 포함해 철저하게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초동 수사를 진행하던 공군은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뒤늦게 확보하고 사건 발생 2주일 뒤에야 분리 조처를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공군 법무실에서 제출받은 사건 보고서를 보면, 성추행 사건은 올해 3월2일에 발생했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장아무개 중사는 보름 뒤인 3월17일에 공군 군사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장 중사는 일부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고 차량에 동승해 운전을 하던 ㄱ하사는 “성추행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는 등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었다. 증거인멸이 우려됐지만 군사경찰은 장 중사를 조사하면서 휴대전화를 확보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언론에 사건이 보도된 지난달 31일에야 군검찰은 장 중사의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 형식으로 확보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도 2주일이나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는 성추행 사실을 사건 이튿날인 3월3일에 신고했지만 장 중사는 3월17일에야 공군 군사경찰의 조사를 받고 다른 부대로 전보됐다. 가해자 조사와 분리 조처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면서 피해자는 사건 무마, 은폐 압력, 합의 종용 등 ‘2차 가해’를 받게 됐다.

공군은 피해자에게 22차례 심리상담을 제공했다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막지 못했다. 피해자는 부대 성고충 전문상담관과 상담을 진행하던 지난 4월15일 “자살하고 싶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4월19일부터 30일까지 2주간 6차례 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4월30일 공군은 피해자와 대면상담을 마친 성폭력상담소로부터 “자살징후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는 보고를 받았고 피해자는 두달간의 청원휴가를 마치고 5월3일에 복귀했다. 그리고 본인 요청에 따라 보름 뒤 다른 부대로 전보됐다. 피해자는 그로부터 3일 뒤인 5월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대 복귀 뒤 극단적 선택에 이른 18일 동안 군 상담관의 상담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채익 의원은 “초동수사가 부실했으며 분리 조치 등 피해자 보호프로그램이 전혀 작동되지 않아 앞날이 창창한 젊은 부사관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분리 조치 등 피해자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자 엄중 문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의원은 군의 성추행 사건 수사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가해자·피해자의 엇갈린 진술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체적 추행 사실을 적시해 빈축을 샀다. 성폭력 사건에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건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장나래 길윤형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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