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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칼럼] 뒤늦게 날아든 탈원전 고지서

입력 2021. 06. 03. 19:34 수정 2021. 06. 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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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결국 탈원전은 공짜가 아니었다. 전기요금이 오르지도 않고,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라는 요란한 약속은 처음부터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지난 4년 동안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였던 탈원전은 판매자가 부르는 대로 값을 치러야 하는 '명품'이었다. 그동안 국민과 주주를 외면하고 맹목적으로 정부에 협조해왔던 한전에게 정부가 국민의 돈으로 생색을 내겠다고 결정한 보상의 규모가 무려 1조 4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국회의 의결을 거친 것도 아니다. 국무회의에서 졸속으로 의결해버린 '시행령' 개정이 전부였다. 에너지 관련 법률을 통째로 무시하고 밀어붙인 탈원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정부가 이제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59조의 조세법률주의까지 휴지통에 내던져버렸다. 촛불 민심의 염원이었던 '법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서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정책실패를 대비한 정부의 쌈짓돈이 절대 아니다. 밀양 사태 이후 부쩍 어려워진 송배전 설비에 대한 주민 설득이나 고성 산불과 같은 대형사고 예방을 위해 마련해놓은 것이다. 오로지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필요한 송배전망 확충과 유지·보수에만 써야 한다는 뜻이다. 탈원전의 비용 보전은 여유 재원을 활용하는 것이고, 전기요금 인상 등 추가적인 국민 부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산업부의 주장은 국민을 두 번 속이는 부끄러운 변명이다.

정부가 단순히 탈원전 비용을 보전해준다고 한전의 경영이 정상화 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전의 경영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상황이다. 지난 4년 동안 6만 원이었던 주가는 2만 5000원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부채는 37조 원이나 늘어났다. 정부가 탈원전을 고집하는 한 한전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발전단가가 가장 낮은 원전과 석탄발전소의 조기 폐쇄에 따른 한전의 영업 손실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탈원전·탈석탄·탄소중립·그린뉴딜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2030년까지 신재생 설비와 송배전망 확충에 35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각종 신재생 보조금과 탄소배출권 비용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2조 5000억이었던 환경급전 비용이 2024년에는 2배인 5조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한 해 2조 원에 지나지 않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한전의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도 암울한 미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신임 사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는 한전의 부채가 159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우량 공기업이었던 한전이 부채비율 234%의 부실징후기업으로 전락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탈원전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물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부가 떠들썩하게 약속했던 국민 안전과 환경 보존도 빈말이 될 수밖에 없다. 2050 탄소중립의 꿈도 공허한 환상이다.

나주시의 텅 빈 골프장 부지에 1조 6000억 원을 투입해서 설립하고 있는 '한전공대'도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탈원전의 파편이다. 한전의 교육사업은 국회가 정해놓은 '한전공사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불법 사업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전문인력 양성 및 관리'에도 쓸 수 있도록 만든 지난 1월의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한전공사법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전라남도와 나주시가 떠안게 된 한 해 200억 원의 무게도 해가 갈수록 버거워 질 것이다.

강의실 하나 없는 한전공대가 9월에 신입생을 모집하겠다는 시도는 국민 기만적이다. 신입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기숙사는 2025년 완전 예정이고, 이미 확보했다는 교수진 22명의 명단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허겁지겁 세워지는 한전공대가 세계적인 에너지 특화대학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다. 오히려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신(新)적폐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대선 전에 반드시 개교를 하겠다는 억지의 정치적 의도는 삼척동자도 짐작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공정한 대선관리에 대한 야당의 우려는 절대 과한 것이 아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판도라에서 시작된 어설픈 탈원전은 더 이상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원전수출 동맹도 약속했다. 사고의 위험이 높은 원전을 충분히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력을 키우고, 제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능라도가 아니라 여의도에서 시작되는 탄소중립의 화려한 꿈은 패배주의적인 탈원전을 포기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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