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떴다방' 정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2021. 6.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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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동산 분양권 전매가 활성화되었던 1998년 이후에 아파트 분양현장 주변에 등장한 이동식 중개업소를 ‘떴다방’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2003년에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고 정부의 단속도 강화되기 이전까지, 떴다방 업자들은 아파트 당첨자들로부터 ‘딱지’라고 불렸던 당첨권을 사들여 높은 금액으로 되파는 수법으로 이익을 챙겼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그런데 현재 우리 대통령 선거도 사실상 ‘정치 떴다방’을 중심으로 치러지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 선거라는 ‘장’이 서면 이른바 후보자 캠프가 꾸려진다. 선거 캠프는 국민들이 ‘혹’할 이슈를 발굴해 던지면서, 그중에 하나라도 터지면 그 이슈 중심으로 선거를 치른다. 떴다방 업자가 좋은 딱지를 구한 것과 같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뜨는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면 여기저기 자문을 구한다.

지난 대선 때 나 역시 몇몇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캠프에서 자문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 경제와 사회의 주요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고, 이런 개혁 없는 대증적 처방은 백약이 무효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매우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결국은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아이디어가 없냐는 것으로 끝이 났다. 구조 개혁이니 중장기적 효과니 하는 것은 떴다방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부동산 떴다방에 많은 투기세력이 몰렸듯이 정치 떴다방에도 인생 역전을 노리는 많은 인재가 몰린다. 정치 떴다방은 어떻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선거공학이 ‘판’을 주도한다. 또 ‘세’를 불리기 위해 온갖 연줄이 동원되고, 유력 후보자 캠프에는 승진에 목을 맨 현직 공무원도 줄을 서기 시작한다.

떴다방 정치는 한국의 정당 정치를 형해화할 뿐 아니라, 정책의 지나친 ‘선거화’를 가져오고 있다. 당장 선거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이에,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사라지고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깊어만 가고 있다.

다가오는 대선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높은 국민적 기대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4년은 그동안 가려져왔던 비정상을 더 드러내는 아이러니의 연속이었다. 국민들 특히 젊은층의 불신, 불만, 불안이 차곡차곡 쌓여서 조그만 자극에도 격한 반응이 일어난다. 합리성보다는 감성이 더 발동하는 분위기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떴다방 정치공학자들에게는 오히려 기회이기도 하다. 또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바라는 집권세력도 이에 편승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민심을 낚을 유혹에 더욱 빠진다.

가을에 재벌 기업들이 고용을 늘려주면 정권 재창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는 유혹을 문재인 정부는 받고 있을 것이다. 재벌 협력의 반대급부로 이재용 사면이나 재벌세습을 제도화할 차등의결권 입법화를 허용한다면,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는 더 심화되고 제조업 고도화 및 중간재 산업에서 혁신은 고사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가는 국민들이 오롯이 부담하게 된다.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미리 앞당겨 사람을 뽑고는 그 이후에 고용을 늘리지 않아 재벌들은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이다.

K방역의 성공을 위해 영업제한을 감수했던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보상해 주자는 손실보상법 제정이나 코로나19로 인해 급속히 줄어든 고용보험 적립금에 대한 재정지원에는 소극적인 정부와 여당이 추석 전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추진하는 것은 전형적인 떴다방 정치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든지, 소속 정당이 미래에 어떤 문제에 봉착할 것인지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떴다방의 본질이다.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떴다방에 모인 정치 투기세력은 충분히 한 밑천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의 사정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국정 경험이나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유력 후보자를 중심으로 정치 투기세력들이 떴다방을 꾸리고, 정부 불신과 불만에 기댄 이미지 장사로 재미를 볼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정치를 하겠다는 비전과 구체적 정책의 제시는 뒷전이다.

짧은 대통령 선거 기간으로 인해 이미지와 떴다방 정책으로 집권 가능하다는 선거의 셈법을 깨뜨려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과 정당 후보의 선거 기간을 지금보다 두 배 정도로 늘려야 한다. 또 이 기간 동안에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선관위에서 이를 관리하도록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 물론 이번 대선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지식인이나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이들 역시 떴다방 정치에 동조자가 되어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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