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 돌며 간접화법 일방 메시지, 윤석열의 '간보기 정치'

장나래 2021. 6.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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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한 선술집에서 장예찬 시사평론가와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장예찬 시사평론가 페이스북 갈무리

카메라 앞에 서서 육성을 들려준 적이 없다. ‘오늘은 누구를 만났다더라’ 하는 소식만 전해진다. 그런데 ‘호평’ 일색이다. 이런 잠행 같지 않은 잠행이 벌써 석달째다. 그동안 ‘여의도 정치권’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방식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얘기다. 돌발실수 같은 리스크가 큰 직접 노출은 피하면서 하고 싶은 메시지만 전달하는 ‘비대면 일방향 미디어 정치’인 셈이다. 정치 초보로선 안전한 장치지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중의 호기심도 식어갈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최근 정체돼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비대면 간접 정치로 우호적 이미지 쌓기

윤 전 총장은 올해 3월 검찰총장 직에서 물러난 뒤 중요현안에 대해 직접 발언한 사례가 거의 없다. 5·18을 놓고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라며 몇몇 언론에 문자 메시지로 답한 정도다. 한마디 언급도 없었던 4·7 재보선 사전투표 현장을 제외하면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된 적도 없다. 대신 윤 전 총장이 누군가를 만난 뒤 그의 측근이 언론에 ‘사후 확인’해주거나 상대의 입을 빌려 언론에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정치인을 만나봤지만, 골목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윤 전 총장이 유일하다(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반도체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었고 습득도 빨라 놀랐다(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는 등의 칭찬이 쏟아진다. 대중과 직접 소통은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만 차곡차곡 쌓고 있는 셈이다. 초보 정치인으로서는 안전한 방식이다. 날 것 그대로가 아닌 정제되고 의도된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컨설팅 전문가인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초보 정치인이 정치권에 진입하기 이전에 좀 더 안전하게 진입하기 위해 완충 지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을 통한 메시지로 자신은 부담을 덜고 대중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고 짚었다.

권성동·정진석·윤희숙 등 국민의힘 의원들을 연쇄 접촉하며 입당 분위기를 잡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입을 빌려 당내 ‘우호적 여론’을 형성할 수 있고, 나중에 상황이 변해도 ‘내 뜻이 아니었다’며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일단 자신과 가까운 의원들과 만난 사실을 그들의 입을 통해 알리며, 당내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당 분위기를 떠보는 동시에 우군을 만드는 전략”이라고 짚었다.

정권 ‘잽’ 날리는 과외 정치

윤 전 총장은 그동안 외교, 경제, 부동산, 소상공인, 반도체, 건축 등 다방면의 전문가를 만나며 ‘대선 수업’에 열중했다. ‘수사밖에 할 줄 아는 게 있겠느냐’는 비판을 반박하기 위한 장치로 풀이된다. 특히 그가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나눈 분야를 보면, △집값 폭등을 잡지 못한 부동산 정책 △불안정해진 노동시장 △코로나19로 직격탄 맞은 자영업·소상공인 문제 △정부 규제로 20대 민심을 건드린 가상자산 문제 △글로벌 반도체 전쟁 등 문재인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국내외 현안을 망라하고 있다.

전문가와 만남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고 ‘대안 세력’으로서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의도인 셈이다. 김덕모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장(호남대 교수)은 “윤 전 총장이 정권에 아픈 부분들과 관련된 전문가들을 의도적으로 만나면서 계속 ‘잽’을 날리고 있다”며 “자신은 현 정부와 다르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계속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0대 스피커 내세운 유튜브 간접 소통

윤 전 총장은 지난 2일 30대 시사평론가 장예찬씨를 처음으로 자신의 ‘스피커’로 내세웠다. 모종린 교수를 연희동 골목 상권에서 만난 영상과 사진이 장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됐고, 장씨는 앞으로 윤 전 총장의 공보참모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정 언론사에 본인 일정이나 메시지를 흘리거나 측근을 통해 사후확인해주는 방식의 ‘검찰식 홍보’에서 유튜브를 통한 대중적 의사 소통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30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차기 대선에서 스윙보터로 떠오른 2030 민심을 겨냥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의도연구원장 출신인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탈정치화되고 탈이념화되어있는 2030세대에게 윤 전 총장은 진보와 보수 이분법이 아닌 당장 현실 속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라며 “거대 캠프 등 기존 권위를 파괴하는 게 젊은 층에는 혁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해석했다.

‘윤석열식 정치’는 검증 회피 수단?

그러나 유튜브 채널도 편집된 화면을 통해 의도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대중들과 만남을 피하고 ‘비대면 일방통행’으로 호평을 전달하는 윤 전 총장의 정치 방식에는 본질적 변화는 없는 셈이다. 이때문에 이런 식의 미디어정치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김덕모 교수는 “윤 전 총장이 세력 정비 등 준비가 덜 됐거나 전면에 등장했을 때 타격을 적게 입기 위해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간을 보는’ 행태가 계속되면, 너무 뜸을 들이다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력대선주자인 그가 쟁점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자신의 입으로 드러내지 않고, 콘텐츠나 정치력에 대한 국민의 검증을 피하는 소극적인 행보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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