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들Q] '손정민 사건' 유튜버 비판한 언론, 그들이 쓴 기사들

정아연 2021. 6. 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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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손정민 씨 사건…언론의 관심은 어떻게 폭발했나

지난 4월 25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된 뒤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 씨. 사건 한 달이 넘었지만, 사망 경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한 달 사이,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언론에서는 유례없이 많은 보도가 나왔고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확대·재생산한 기사도 쏟아졌습니다.

<질문하는기자들Q> 제작진이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newstof)'과 함께 손 씨 관련 언론 보도량을 분석해봤습니다. 빅카인즈(뉴스 빅데이터 분석서비스)에 등록된 54개 언론사에서 손 씨 실종 소식이 처음 알려진 4월 28일부터 5월 21일까지 출고된 기사는 모두 1,620건에 달합니다.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다른 이슈들과 비교해봤습니다.

올해 초 아동학대 사망 사건인 '정인이 사건'의 기사량(1월 2일~1월 22일)인 2,091건보다는 적었지만, 역시 전국민의 공분을 샀던 LH 임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 기사량(3월 2일~3월 22일)인 716건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청년 '故 이선호 씨 사망 사고' (5월 6일~5월 26일) 기사와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됐습니다.


한강 실종 사망 사건은 한 해 평균 100건이 넘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사건에 이렇게 많은 관심과 언론 보도가 쏟아진 이유는 뭘까요?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젊은 의대생 청년의 죽음, 실종 당시 유가족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인한 여론 형성, 함께 있었던 친구의 미심쩍은 행동, 한 달간 경찰 수사에도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는 점, 이런 상황에서 진위 여부를 떠나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저신뢰' 문화로 인한 '경찰 불신'이 이번 사건에 대한 여론을 키운 이유라고 꼽았는데요.

김 대표는 "그동안 '버닝썬 사건'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 기사 폭행 사건' 등으로 생겨난 경찰에 대한 의구심, 대중들의 정의감 등이 이번 사건에 종합적으로 몰아친 거로 보인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경찰 수사로 드러난 팩트가 제한된 상황에서, '손 씨 사망 경위'를 둘러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쏟아지는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언론사들의 경쟁이 결국 검증 없는 의혹 받아쓰기 기사, 조회 수를 늘리려는 기사를 양산했다는 얘깁니다.

■ '사이버 레커', 왜 손 씨 사건에 주목했나

이 같은 의혹들은 대체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의혹의 상당수는 실종 직전 손 씨와 함께 있었던 친구 A 씨를 향한 것들이었습니다. 익명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SNS, 기사의 댓글 등을 중심으로 A 씨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의혹과 비난 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를 언론이그대로 가져와 "친구 A 씨의 수상한 행적 미스테리" "친구 A 휴대전화 왜 버렸나?"라는 식의 제목을 달아 기사를 출고하는 행태가 반복됐습니다.

김준일 대표는 이를 두고, "언론이 취재원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 보도하는 걸 두고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해왔는데,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 행태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아니라 게시판, 댓글 등을 그대로 인용하는 '게시판 저널리즘'으로 오히려 퇴보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이 같은 '게시판 저널리즘'의 중심에는 '유튜브'가 있었습니다. 이번 사안에 여론의 뜨거운 관심이 몰리자, 유튜버들이 저마다 뛰어들어 관련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조회 수와 구독자 수를 늘리려는 시도는 가짜뉴스, 각종 의혹 제기로 이어지며 진위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바로 '사이버 레커'들입니다.

사이버 레커 :

교통사고 현장에 잽싸게 달려가는 렉카(Wrecker‧견인차)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재빨리 짜깁기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이슈 유튜버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말이다. - 네이버 시사상식 사전

이들이 제기하는 의혹은 대부분 근거가 없거나 실체가 불분명했지만, 가짜뉴스들은 퍼져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친구 A 씨에 대한 이른바 '신상털기' , A씨 가족에 대한 거짓 소문이 도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무속인이 등장해 손 씨 사망 경위를 추정하거나, 정치평론 혹은 요리 영상을 다루던 유튜버가 갑자기 손 씨 죽음을 다루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손정민 추정인물 끌고 가는 수상한 3인' '손정민 사건, 누군가 밀쳐 추락'처럼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타살 의혹을 강하게 제기할수록 조회 수가 올라갔고 구독자 수도 한 달 새 몇만 명이 오르는 등 관심을 더욱 불러모았습니다. 손 씨 사고를 돈벌이로 악용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유튜브 통계분석 사이트인 '녹스인플루언서'와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손정민 씨 사건 관련 영상을 올리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 일부 채널들을 분석해봤더니, 최근 한 달 사이 천만 원에서 많게는 4천만 원 넘게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녹스인플루언서는 조회 수 당 지불된 광고비 등을 기준으로 유튜버 수익을 추정하고, 플레이보드는 실시간 채팅 후원 내역을 집계하는 방식으로, 실제 수익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기성 언론, 유튜버 비난할 자격 있나

그런데, 기성 언론들은 크게 다를까요?

의혹 제기에 뛰어든 유튜버들을 비난한 언론사들 역시, <풀리지 않은 영상 미스터리>, <그날 휴대폰은 왜 친구와 바뀐 건지> 식으로 조회 수 노린 제목 달아 기사를 내보낸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김준일 대표는 "취재 없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보도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는 것, 이른바 '게이트 키핑'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포털과 유튜브에서 기성 언론들의 과도한 조회 수 경쟁, 무책임한 보도 관행이 가짜뉴스를 양산한 유튜버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저마다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조회 수와 클릭 수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손정민 씨 사건'과 같은 이슈가 또 생겼을 때 언론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질문하는 기자들Q> 8회차 방송 <'한강 대학생 사망' 의혹 전달 급급… 언론이 얻으려 했던 건?>에서는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언론의 보도 양상을 집중 분석합니다.

오는 6일(일요일) 밤 10시 35분에 KBS1TV에서 방영됩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준일 뉴스톱 대표, 정아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방송은 <질문하는기자들Q>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ref=pMenu#20210530&1
https://www.youtube.com/channel/UCltnR6L9PTipGx7Q-FqjNcg

정아연 기자 (nich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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