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교육을 '남혐 조장'이라 공격.. 아이들 '남자가 억울' 믿기 시작"

박소영 입력 2021. 6. 8. 10:00 수정 2021. 6. 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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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페미니즘 백래시 중에 유독 '성평등 교육'이 공격받고 있어요. 이전에는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공격당했다면 이제는 '남성 혐오를 조장한다'고 공격받아요."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들은 "성평등 교육에 대한 오해가 있으면, 오프라인에선 직접 설명해 풀면 되지만 온라인 공격은 대처할 방법이 없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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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 인터뷰 
"요즘 백래시는 '남성 혐오' 내세워"
'교사 집단, 또는 그보다 더 큰 단체로 추정되는 단체가 은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상(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암약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관련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참여인원이 30만 명을 넘겼다. 교육부는 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조사 요청을 했고, 현재 교육청에 제보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요즘 페미니즘 백래시 중에 유독 '성평등 교육'이 공격받고 있어요. 이전에는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공격당했다면 이제는 ‘남성 혐오를 조장한다'고 공격받아요."

최근 만난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계기는 지난달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조직적으로 학생들을 세뇌하려 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수사, 처벌, 신상공개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남초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시작돼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온 이 글은, 내용 자체는 무시할 만하다 해도 이날 기준 동의 수가 30만 명을 넘겼다. 성평등 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2016년 결성된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수업시간에 쓸 성평등 교재를 연구하고 만드는 초등 교사 모임이다. 교육부, 교육청 등의 성평등 교재, 교원 연수 진행도 맡고 있다. 연구회 입장에서는 국민청원 내용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국민청원의 증거로 제시된 웹사이트의 IP 주소지가 미국으로 돼 있어 경찰청을 통해 미국에 국제 공조 수사 요청을 한 상태"라고 밝혔다.


말도 안 되는 민원에도 응답해야 하는 학교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들은 “성평등 교육에 대한 오해가 있으면, 오프라인에선 직접 설명해 풀면 되지만 온라인 공격은 대처할 방법이 없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연구회 대표인 서한솔 교사는 “교사들이 함께 만든 성평등 교육 교안에 ‘탈 코르셋’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남혐하는 사람들’이라 공격받은 적이 있다”며 “성교육을 하고 나면 제가 다니는 학교로 민원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항의와 민원이니 무시하면 그만이라곤 하지만, 공직사회의 특성상 학교로 들어오는 민원엔 무조건 답을 해야 한다. 학교에 따라서는 교사 보호보다 '좋은 게 좋은 건데 민원을 불러들인다'고 불편해 하는 곳도 있다.

여성가족부가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진행한 성평등 도서 학교 보급 사업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이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의 공격에 밀려 사업이 중단된 일이 대표적이다. 6년 차 박해민(가명) 교사는 “최근 페미니즘 백래시 상황에서 정부가 급히 사과하거나 변명하는 일이 잦다"며 단호한 대처를 요구했다.

4학년 학생이 학교 도서관에 차별과 편견 여부를 조사하고, '모두를 위한 도서관'을 위해서 어떤 책들이 필요할지에 대해 작성한 학습지. 초등성평등연구회 제공

성평등 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 초등 저학년 때에는 방과후 교실로 축구를 하던 여학생들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없어진다. 이들은 방송 댄스 같은 더 ‘여성적인’ 활동으로 바꾼다. 남학생 부모들은 ‘우리 아들 기가 너무 약하다, 축구 안 하고 여학생들하고만 논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서 교사는 "이럴 때 ‘아이의 문제가 아닙니다’라며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게 해 줄 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젠더 갈등에 대한 남학생들의 정서가 ‘재미’에서 ‘억울함’으로 바뀌고 있다. 서 교사는 “남학생 제자들이 여성혐오적 용어를 사용할 때 이유를 물어보면 이전에는 ‘재미로요’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20대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고 ‘남자들이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기 시작했다”며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이 최소한 그런 ‘억울함’을 공유하지 않는 커뮤니티를 경험하게 하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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