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격해지는 美中 경제전쟁.. 제재와 보복 난타전 가열

권경성 2021. 6. 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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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과 협력해 中 포위.. 美 공급망 플랜
'中 견제 이심전심' 의회, 초당적 예산 지원
中은 反외국제재법 반격.. 보복 제재 채비
사미라 파질리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부국장이 8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글로벌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간 충돌이 더 격해지고 있다. 최전선은 경제산업 분야다. 미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공급망 재편 청사진을 내놓았다. 또 미 의회에서 인공지능(AI) 등의 공격적 육성을 위한 대(對)중국 견제법이 통과됐다. 당장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내정 간섭이자 발전을 막는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을 겨냥한 중국의 맞불 제재법 도입이 10일 예정돼 격렬한 상호 보복전이 예상된다. 제재와 공방의 난타전이 시작되면서 ‘미중 경제 전쟁’은 한층 가열되는 분위기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8일(현지시간)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등 필수 광물, 제약 등 4대 핵심 산업 분야 공급망 재편을 위한 장ㆍ단기 전략 보고서를 공개했다. 대중 의존도가 높은 분야들인 만큼 누가 봐도 타깃은 중국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처럼 관세 등 중국 대상 직접 제재 수단을 동원하는 형태는 아니다. 동맹ㆍ우방국 포섭과 자강(自强)으로 중국을 왜소화하겠다는 목표다.

단기 대책은 공급망 차질 대응 위주다.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반도체, 생산과 건설, 교통, 농업 등 분야의 공급난 해결에 일단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무역대표부(USTR) 주도로 신설되는 조직 ‘공급망 무역 기동 타격대’다. 미국의 공급망을 망가뜨리는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는 임무를 맡는다. 표적은 중국이다. 백악관은 “불공정한 보조금과 무역 관행이 미국 제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시장 왜곡이 공급난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중ㆍ장기 전략의 궁극적 대상은 중국이 아니다. 자국이다. 중국을 누르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게 미국의 구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2조2,500억 달러(약 2,500조 원) 규모의 ‘미국 일자리 계획’에 포함된 예산과 각종 제도적 인센티브가 십분 활용된다.

총력전이다. 백악관은 “미국 홀로 공급망 취약성을 해결할 수 없다”며 “국내 생산 증대에 필요한 투자와 더불어 국내 생산 부족분 충당을 위한 동맹ㆍ우방국가와의 협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외교적 접근법까지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공급망에 관한 공동 접근법을 개발하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핵심 동맹과 파트너 국가의 정부 당국자, 민간 부문이 함께 참여하는 ‘공급망 회복 글로벌 포럼’을 바이든 대통령이 소집한다는 구상까지 보고서에 담긴 배경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ㆍ호주ㆍ인도가 참여하는 인도ㆍ태평양 4개국 협의체 ‘쿼드’가 중심이기는 하다. 쿼드는 미국이 일찌감치 대중 포위의 수단으로 낙점한 핵심 세력이다. 하지만 공급망 재편에 관한 한 한국을 빠뜨리기는 어렵다. 반도체와 배터리는 한국의 기술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다 미국 내 투자도 아주 큰 분야다. 백악관은 반도체 부문 설명에 삼성이 최근 170억 달러(약 19조 원) 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한 사실을 사례로 적시했고 반도체 분야 상호 보완적 투자 촉진을 위해 지속적 협력이 필요한 국가로 한국을 콕 집어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픽=김문중기자

기술 분야 중국 견제는 미 행정부만의 의지가 아니다. 미 상원은 이날 반도체 등 중국과 경쟁하는 신기술 분야에 2,500억 달러(약 280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집중 지원한다는 내용의 중국 견제법안 성격의 ‘미국 혁신ㆍ경쟁법’을 찬성 68 대 반대 32라는 압도적 표 차이로 가결했다. 민주ㆍ공화당 각 50석 구도인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들까지 가세해 초당적 표결이 이뤄진 셈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공급하고 있던 초소형 주문형 컴퓨터 반도체를 제조하는 미 기업에 5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즉각 쏟아붓는다”고 전했다.

미국 중심의 ‘반중(反中) 전선’은 미국이 의도한 패러다임 변화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ㆍ태평양 담당 조정관은 지난달 미 스탠퍼드대 온라인 행사에서 대중 관계와 관련해 “관여(engagementㆍ대화)로 묘사되는 시대는 끝났다”며 “(중국과의) 경쟁이 지배적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이런 파상 공세에 대한 중국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마침 7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전인대 상무위원회 회의를 열고 있는 중국의 반응은 즉각 나왔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전인대 외교위원회는 미국 혁신ㆍ경쟁법의 미 상원 통과와 관련, 법안이 냉전 사고와 이데올로기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며 미국의 글로벌 패권 유지를 위해 과학 기술과 경제적 디커플링(탈동조화) 등으로 중국의 발전 권리를 박탈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더는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게 중국의 각오다. 현재 전인대 상무위는 ‘반(反)외국제재법’ 초안을 심의하고 있다. 회의 마지막 날인 10일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 위험과 인권 침해 등을 명분 삼은, 최근 미국의 자국 기업과 관료 대상 무더기 제재에 대한 반격 차원인 이 법은 보복 조치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게 된다. 지금껏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법보다 단계가 낮은 부처 행정명령으로 상대해 왔다.

격화하는 미중 갈등을 바라보는 한국 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공급망 재편 보고서에서 한국을 반도체 분야 최고 파트너로 치켜세운 만큼 미국 사업이 새로운 기회가 될 테지만, 미국이 중국 견제에 동참을 요구해 올 경우 중국에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인 우리 기업들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ornot@hankookilbo.com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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