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투기·헬기 조립 완전 수작업이네.."한대 조립에 2년 걸려"

김재섭 2021. 6.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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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_한국형 전투기·수리온 헬기 조립라인
KF-21 2~6호 시제기 조립 한창
롤-아웃 1호기는 혹독한 지상 테스트 중
헬기 조립라인선 경찰용·소방용 조립
한국형 전투기(KF-21)의 시제기들이 조립되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하 카이) 한국형 전투기(모델명 KF-21) 시제기 조립라인. 지난 4월9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형 전투기 출고(조립이 완성돼 제 바퀴로 굴러 나간다는 뜻으로 롤-아웃(Roll-Out)으로 불린다) 행사에서 공개된 ‘1호기’ 다음으로 선보일 시제기 2~6호기가 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태로 조립되고 있었다. 2호기는 전투기 모양을 갖추고 미사일이 잘 장착되는지 여부 등을 테스트하는 단계에, 나머지 시제기도 각각 한자리씩을 차지한 채 서서히 전투기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한국형 전투기 조립라인 상세 공개

시제기는 양산에 앞서 각종 테스트와 시험비행용으로 만드는 제품이다. 시제기를 열고, 뜯고, 해체하고, 허술한 부분을 보완하고, 적합성이 떨어지는 부품을 교체하고, 다시 조립하고, 또다시 테스트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시제기의 시험비행도 1년여 동안 지상 테스트를 거쳐 ‘오케이’ 판정을 받아야 가능하다.

카이는 이날 <한겨레>를 초청해 한국형 전투기 조립라인을 상세 공개했다. 1호기가 일반에 공개될 때 강인한 이미지의 국방색 색깔이었던 것과 달리, 이날 공개된 조립라인의 전투기 본체와 날개 등은 모두 봄철 갓 틔운 뽕나무 이파리처럼 보들보들한 느낌의 연녹색을 띠었다. 또한 거의 모든 조립 과정이 전통시장 대장간에서 칼과 호미가 만들어지듯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2호기 미사일 장착 작업에는 무려 20여명의 엔지니어가 함께 매달렸다.

김준명 카이 운영그룹장은 “자동차 생산라인과 같은 컨베이어벨트 식을 상상했을텐데, 전혀 다르죠”라며 웃었다. 이일우 한국형 전투기 수석엔지니어(상무)는 “전투기는 알루미늄 같은 특수소재 금속을 사용해 용접을 할 수 없다. 본체를 잇거나 날개 등을 본체에 붙일 때는 양쪽 모두에 촘촘하게 구멍을 뚫은 뒤 나사를 사용해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잇는다. 날개 한쪽을 붙이는데만 이 작업을 1만회 이상 한다”고 설명했다. 이음새 부분을 만져보니 재봉질한 것만큼이나 촘촘하고 정연하다. 나사 못이 박힌 부분도 손에 걸리는 느낌이 전혀 없을 정도로 매끈하다. 나사못이 1㎜라도 튀어나오면 공기 저항을 일으킨단다.

지난 4월9일 대통령 참석 출고(롤-아웃) 행사 때 일반에 첫 공개된 한국형 전투기(KF-21) 시제 1호기 모습. 지금은 혹독한 지상 테스트 과정을 거치고 있다.
카이가 양산·수출 중인 고등 훈련기(TA-50) 비행 모습.
카이 기본 훈련기(KT-1) 비행 모습.

이 수석엔니지어는 이어 “전투기는 가벼우면서도 충격과 압력을 버티고 전투 중 총탄을 맞아 일부 구조가 손상돼도 기능이 유지되도록 내부를 격자 구조로 설계하고, 조종석부터 날개 끝까지 전자장비가 촘촘하게 달린다”고 말했다. 연료통도 기체 곳곳에 9개가 달리는데, 모두 조종석에서 전자장치로 제어하도록 설계된단다. 이날 들여다본 반제품 단계의 시제기에선 전자장비들을 연결하는 다양한 길이와 굵기의 케이블들이 격자 구조 사이 통로에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또한 케이블끼리 1~2㎝ 간격으로 묶여지고, 격자 구조의 본체 뼈대에 촘촘히 고정됐다. 이 수석엔지니어는 “전투기는 비행 속도가 빠른데다 급가속, 급상승, 급하강, 급회전 등을 반복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헐렁하면 손상을 입고 소음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시제기 출고는 개발 중간쯤 단계

한국형 전투기 시제기들은 조립라인 초입에 조립대가 만들어진 뒤 전투기 모양을 갖추고 각종 무기를 장착해보는 단계를 거쳐 자신의 바퀴로 지상 테스트 장소로 이동한다. 1호기는 여기까지만 6년 가량 걸렸다. 1호기는 현재 조립라인 맞은 편 건물에서 또다시 속을 드러낸 채 혹독한 지상 테스트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 작업만도 또다시 1년가량 걸린단다. 류광수 한국항공우주 고정익사업부문장(전무)은 “연료를 주입해 시험비행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될 때까지 지상에서 테스트와 개선 작업이 반복된다. 이후 2341회 시험비행을 거치며 문제점이 없다는 게 확인돼야 양산을 시작한다”며 “전체 개발 일정으로 보면 이제 중간쯤 정도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날 기준 한국형 전투기는 공군과 인도네시아 등으로부터 총 170여대를 주문받은 상태이다.

카이 헬기 조립라인에서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이 조립되고 있다.

이어 들른 옆 건물의 회전익(헬기) 조립라인에서는 경찰과 경남소방청 등에서 주문받은 헬기가 조립되고 있다.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헬기 조립도 상당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김 그룹장은 “방위력 개선 프로젝트 차원서 개발한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KUH)을 민수용으로 응용한 헬기들이다. 소방, 경찰, 기업 등 주문자 요구에 따라 특정 기능들이 추가된 형태로 조립돼 납품된다”고 말했다.

카이는 항공기 날개를 기준으로 ‘고정익’과 ‘회전익’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고정익 부문에선 기본 훈련기(KT-1)와 고등 훈련기(TA-50)를 양산해 공군 납품과 수출(태국·말레이시아 등)을 시작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와 손잡고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은 2015년 시작돼 지금은 시제기 조립 단계이고, 지상 테스트와 시험비행 과정을 거쳐 2024년 중반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회전익 부문에선 수리온을 개발해 군 납품과 수출(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을 시작한데 이어 소형 공격용 무장헬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카이의 전투기·헬기 사업은 국방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방위력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해 전투 훈련기와 전투기 등을 개발하며 기술을 축적하고 부품을 국산화한 뒤, 양산 시점에서 수출과 민수용 파생 상품 시장을 개척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한창헌 카이 미래사업부문장은 “고정익 쪽에선 한국형 전투기를 2024년부터 양산하면서 성능을 개량한 전투기와 군 수송기 같은 특수 임무기 개발에 나서고, 회전익 쪽에선 차세대 기동 헬기 국내 개발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래 사업으로 전기 항공기 같은 미래형 비행체(UAM) 개발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방위력 개선 프로젝트 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부터 양산까지 수년(헬기)에서 수십년(전투기)까지 걸린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며 “2015년부터는 우리 전투기로 우리 영공을 지키게 하겠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7번의 예비타당성 심의 끝에 2015년 개발 계약을 맺어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항공우주가 양산해 수출 중인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모습.
한국항공우주의 소형무장헬기(LAH) 시제 1호기 모습.

“성취감 크지만 자괴감도…”

물리와 소재 전공자부터 시험비행 조종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력이 전투기와 헬기 개발에 투입된다. 지난달 말 기준 카이 임직원 4986명 중 43%가 직접 개발 인력이다. 조립라인에서 공구를 들고 케이블 묶음 작업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도 개발자와 엔지니어들이다. 수작업 비중이 큰 탓에 부품이 다 준비된 상태로 양산을 시작한 뒤에도 전투기 한대를 완성하는데 2년가량 걸린다. 전투기 부품 종류는 22만여가지로 자동차 부품 수의 열배에 이른다. 그만큼 전후방 산업 쪽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전투기 개발의 이런 특별한 과정 때문에 오해와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언론이 1호기가 다시 속을 드러낸 채 지상 테스트를 받고 있는 모습을 뭔가 기술적 문제가 있어 분해·해체 작업을 거치는 것처럼 보도해 논란을 부른 게 대표적이다. 김 그룹장은 “정상적인 개발 과정인데,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다시 작업하는 것처럼 엉뚱하게 전해 한국형 전투기 사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일본어판 기사에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을 조롱하는 댓글까지 붙었다”고 하소연했다.

전투기와 헬기 기종 하나를 개발하는데 평생을 바쳐야 하기도 하고, 그래봤자 결국은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것이란 주력 사업의 특성 탓에 임직원들이 느끼는 감정도 복잡하단다. 김 그룹장은 “고등 훈련기가 초도비행을 마치고 활주로로 들어설 때는 직원들이 공장 옥상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전했다. 다른 고위 임원은 “훈련기 수출 뒤 수령자로부터 ‘덕분에 적군을 죽이는 훈련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카이의 올해 매출 목표는 2조8천억원이다. 군수 쪽 비중이 65%로 가장 많고, 민수는 21%, 완제기 수출은 14%를 차지한다. 카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민수용 수요가 줄면서 군수 비중이 20%포인트 가량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사천/글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사진 한국항공우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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