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6개월치 물량 확보한 조선업계, 18년 만에 슈퍼사이클 진입하나

김우영 기자 2021. 6.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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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조선 '빅3′ 2년 6개월치 물량 확보.. 2003년과 유사
후판값 상승은 부담.. "실적 반영까지 1~2년 걸릴 것"

한국조선해양(009540),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042660) 등 국내 조선 ‘빅3′가 오랜 불황을 끝내고 전 세계 선박 발주를 쓸어 담고 있다. 5개월 만에 연간 수주 목표의 70% 이상을 채운 조선소도 있다. 도크(건조 공간)도 빠르게 차면서 2년 6개월 상당의 물량도 확보된 상태다. 조선업계 안팎에선 최근의 업황이 과거 호황기였던 2003년과 유사하다며 18년 만에 슈퍼사이클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온다.

일각에선 신중론도 제기된다. 수주 잔고가 과거 호황기 수준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선박 가격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강판)가 등 비용 상승도 문제다. 당장의 수주 증가가 영업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1~2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후판 가격 상승은 곧바로 비용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픽=정다운

◇ 도크 채운 조선사들 “2023년까지 물량 걱정 없다”

1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한국조선해양의 누계 수주량은 해양플랜트까지 포함해 108억달러(약 12조원)로 집계됐다. 연간 수주 목표인 149억달러의 72.5%를 달성한 셈이다. 삼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59억달러 상당의 선박을 수주해 목표치인 91억달러의 64.8%를 채웠다. 대우조선해양 27억400만달러 상당을 수주해 올해 목표 77억달러의 35.6%를 달성했다.

조선업계에선 장기 호황을 의미하는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슈퍼사이클이 시장에 처음 언급된 것은 지난 4월 한국조선해양의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 자리에서였다. 당시 한국조선해양은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지금의 조선업황이) 슈퍼사이클 진입 직전이었던 2003년 초입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국내 조선 3사는 2023년까지 2년 6개월 치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올해 192척, 2022년 181척, 2023년 161척을 발주처에 인도할 예정이다. 2024년에도 32척이 인도될 예정인데, 올해 하반기로 예상되는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 발주 물량까지 합치면 2023~2024년 물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장기간 불황에 시달렸던 조선업계가 2~3년 치 물량을 확보한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내부에서 2003년 호황기 진입 직전과 유사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 조선소. /한국조선해양 제공

◇ 환경 규제에 선박 교체 시기 짧아져3차 슈퍼사이클 빨리 올 수도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슈퍼사이클은 총 두 번 있었다. 1차 슈퍼사이클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1965년부터 석유 파동이 벌어진 1973년까지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 차원에서 대량으로 건조한 선박들의 교체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해운 시황의 강세도 선박 수요 증가를 부추겼다.

2차 슈퍼사이클은 2003년부터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까지였다. 시작은 중국이었다. 당시 중국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해상 운송 물동량이 크게 늘었다. 1차 슈퍼사이클 당시 건조된 선박들의 교체 시기도 다가오면서 선박 발주가 대폭 늘었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전 세계 선박 발주 규모는 연평균 600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2020년 선박 발주량의 2배가 넘는 물량이 매년 쏟아졌다고 한다. 2005년에는 조선 빅3가 한해 수주 목표치를 5개월 만에 달성하기도 했다.

조선업계는 1·2차 슈퍼사이클 때처럼 시황 개선과 노후 선박 교체 시기가 맞물리면서 3차 슈퍼사이클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박 발주를 늘릴 해운업계는 최근 경제 회복과 물동량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부터 유례없는 호황을 맞은 상태다. 여기에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선 5400여척 가운데 900여척(약 17%)은 선령이 이미 20년이 넘어 단계적으로 폐선에 들어가야 한다. 2차 슈퍼사이클이 시작된 2003년을 기준으로 이르면 2023년부터 본격적인 선박 교체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도 무시할 수 없다. 이태환 대신증권(003540)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로 이연됐던 선박 발주 수요와 1·2차 슈퍼사이클 당시엔 없었던 IMO의 강도 높은 환경규제는 3차 슈퍼사이클 도래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선사 입장에선 경쟁사보다 하루라도 빨리 IMO 환경 규제에 맞춘 선대를 갖추는 게 이득인 만큼, 선박 교체를 앞당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수출 선박 모습. /조선DB

◇ “슈퍼사이클 언급 시기상조선가에 비해 후판 가격 여전히 부담”

슈퍼사이클 진입 여부에 대해 조선업계 일각에선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선박 가격이 상승 추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 슈퍼사이클에 비할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박 가격 추이를 나타내는 클락슨리서치 ‘신조선가지수'는 지난달 136.1포인트를 기록했다. 2차 슈퍼사이클 막바지였던 2008년 8월 당시에는 190포인트로 지금보다 약 40% 높았다.

후판 가격도 부담이다. 최근 몇 년간 조선시황 악화를 이유로 후판 가격을 동결해온 철강업체들은 올해 들어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004020) 등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은 조선 빅3와의 가격 협상에서 후판 가격을 t(톤)당 10만원 이상 인상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판은 선박 건조 비용의 약 20%를 차지한다. 후판 가격이 인상되면 조선사는 상승분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후판 가격이 5만~7만원 인상되면 조선업계의 원가 부담은 연간 약 3000억원 늘어난다.

조선업계에선 선가에 후판 가격을 반영할 경우 발주처 입장에서 부담을 느껴 어느 시점에서는 발주 증가세가 중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발주가 늘어도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1년 이상의 시차가 존재하는 만큼 당장 업황이 개선되긴 어렵다”라며 “원자재 가격 상승도 여전히 부담이어서 좋은 분위기를 못 누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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