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的 이유로 재산권 제한하더라도 '합당한 보상' 은 필수

박준희 기자 2021. 6. 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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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전승훈 기자

■ 내분 사회, 헌법 정신에 길을 묻다

美 독립혁명 때 제정된 헌법

유·무형자산 보호조항 규정

박탈할 수 없는 권리 못박아

산업화로 각종 폐해 나타나자

신성불가침의 무제약성 흔들

‘공공복리 부합해야’로 변화

재산권 침해로 사회적 갈등

공공 필요에 따른 수용에도

정의·공평의 원칙 준수해야

자신이 손에 쥐고 있거나 보유하고 있는 유·무형의 재산에 대해 배타적인 소유권과 행사권 등을 누릴 수 있는 ‘재산권’. 이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같은 보편적 기본권으로서의 재산권은 근대 시민혁명의 산물이다.

근대 이전에는 한 국가나 사회의 재산 대부분을 소수의 사람이 소유했고, 여성이나 노예처럼 재산을 소유할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초기 산업화가 극심한 양극화와 빈곤 등 부작용을 드러내면서, 재산권이 개인의 필요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필요에도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한다는 정신이 각국 헌법에 반영됐다. 그럼에도, 개인의 사유재산은 정당한 보상하에서만 제한이나 침해가 이뤄진다는 사유재산 우선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개인의 재산권은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권리를 보호하는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기본권으로서 재산권의 성립 = 자유권과 평등권 등 인간의 보편적 기본권이 확립된 것은 근대 입헌주의 국가에서다. 국가의 권력과 재산이 군주나 일부 귀족, 엘리트 집단에 속하고 다수의 사람은 소외돼 있던 근대 이전에는 재산권이 특권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 시기에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권력 또한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근대 입헌주의 국가에서 재산을 소유하고 향유할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 가운데 핵심으로 여겨지게 됐다. 첫 성문 헌법이 만들어진 미국 건국 초기를 보면, 재산권에 대한 당시 국민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로 불리는 독립혁명 정치인들은 제정 헌법에 수정헌법 조항을 더해 재산권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강화했다. 특히 그들은 재산권 보호 대상에 토지나 식별 가능한 유형 자산뿐만 아니라 무형 재산에 내재된 모든 권리가 포함된다고 인식했다. 1787년 만들어진 제정 헌법에 이미 ‘저작자와 발명가에게 저술과 발명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일정 기간 확보’라는 조항을 규정한 것은 이들이 이미 저작권과 특허권 같은 추상적 재산권을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절대적 재산권’의 부상 = 근대 입헌주의에 입각해 재산권이 성립될 당시 재산권은 국민의 핵심적 권리로 인정됐다. 경제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 자유나 참정권이 박탈된 것만큼이나 개인의 행복 추구에 큰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헌법에서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로서 천부인권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권선언)’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인 소유권은 합법적으로 확인된 공공 필요성에 따라 사전에 정당한 보상조건하에서 그것을 명백히 요구하는 경우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박탈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미국 건국 당시에는 재산권이 “다른 모든 권리를 보호하는 권리”로 인식되기도 했다. 정부의 개입을 받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소유·이용·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면 어떠한 자유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수정헌법도 프랑스 인권선언 조항과 같이 ‘박탈당하지 않는 재산권’과 ‘정당한 보상을 전제로 하는 사유재산의 수용’을 적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와 영국의 존 로크 등 계몽주의자들은 이러한 재산권이 자연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절대적 재산권’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 근거를 제공했다. 즉, 재산권이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연적 권리라고 본 것이다.

절대군주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던 근대 동양에서도 ‘절대적 재산권’에 대한 주장이 나왔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나선 일본에서 군국주의에 반대하며 ‘헌정의 아버지’로 불린 정치가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1858~1954)는 1935년 도쿄(東京)대에서 열린 헌법 관련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사유재산은 천황 폐하라고 해도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는 것이고, 이것이 제국 헌법의 정신이다.”

◇양극화로 인한 재산권 인식 수정 = 사실상 자유방임주의하에 이뤄진 초기 산업화가 극심한 폐해를 낳으면서 ‘절대적 재산권’이라는 인식도 흔들리게 됐다. 빈부 격차 확대와 도시 빈민 증가 등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경제·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경고음은 앞장서서 산업화를 이룬 구미 각국이 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수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한정된 자원이라는 특수성을 띤 토지에 대해선 재산권 제한이 더욱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됐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처음 반영된 헌법은 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이다. 바이마르 헌법에는 재산권의 절대성 및 계약의 자유를 대신해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성을 강조하는 수정자본주의 원리가 강하게 반영됐다. 이 헌법 제153조 3항은 재산권(소유권)의 사회적 의무를 규정하는 동시에 재산권 행사의 목적도 ‘공공복리를 위한 것’으로 적시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2항이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며 사유재산권 행사의 헌법적 한계를 규정한 것도 이 같은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건국 초기 재산권에 대한 절대적 보장에 무게를 두고 자유방임주의 시기를 거친 미국에서도 20세기 후반부터는 민권운동과 환경운동 등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재산권 개념에 큰 변화가 생겼다.

재산권 행사에 대한 사회적 제약을 가하는 법적 원리는 초기 산업화의 부작용이 발생하기 전에도 존재했다. 관습법·판례법 등으로 운영되는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 체계에서는 ‘생활방해(nuisance) 원칙’을 통해 토지 소유주가 이웃의 권리를 부당하게 방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토지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한국의 헌법 정신과 재산권 갈등 =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정 당시부터 재산권과 관련해 △재산권 보장 △법률적 한계 인정 △공공복리에 부합 △보상 지급을 전제로 한 제한 등의 원리를 적용해 왔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 제23조 등의 재산권 관련 규정은 제헌헌법 제15조 이래로 거의 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즉,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면서도 이를 신성불가침의 무제약적이고 절대적인 권리로는 보지 않고 사회적 구속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하는 것이다. 재산권의 구체적인 내용과 한계가 입법자에 의해 형성된다는 기본권 형성적 법률유보 규정도 헌법에 담겨 있다. 현행 헌법 제23조 1항은 “(재산권 보장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재산권의 한계와 제한을 설정하고 있는 헌법 규정이 사유재산 제도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고, 개인의 합리적인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수도 없다는 것이 법학계의 해석이다. 헌법 제37조 2항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규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재산권의 구체적 내용과 한계에 대한 입법을 하더라도 과잉금지 원칙, 명확성 원칙, 비례성 원칙 등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적인 필요에 의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할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우리 헌법은 강조하고 있다. 같은 조 3항은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공공 필요에 따른 특별한 희생에 공공의 부담으로 보상하는 것이 정의와 공평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한 법학자는 “헌법상 기본권은 개인이 가진 게 무엇인지를 바탕으로 접근한다”며 “개인의 육체와 정신, 사생활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그 사람이 가진 물건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한 것이 재산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에서 어떤 물건을 누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는 모두 다른데, 이는 재산에 관한 기본권의 양이 다르다는 뜻”이라고 했다. 신체와 정신, 사생활은 이미 국민 개개인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지만, 재산의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헌법상 기본권과 관련한 재산권 논란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그는 “재산권 행사에 관한 문제가 생기니 국가권력이 개입하고 있지만, 그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자유민주주의 과정에 포함된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희·임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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