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원전' 찾아 4세대로 눈 돌린다..韓 100MW '살루스' 연구 시작

이현경 기자 입력 2021. 6. 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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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원자로 개발을 위해 원자로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모습.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제공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차세대 원자로 기술 경쟁에 불을 지폈다. 게이츠가 설립한 원전 스타트업인 테라파워는 최근 미국 와이오밍주에 혁신적인 방식의 4세대 원전을 지어 전기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2029년 345MW(메가와트) 규모의 4세대 원자로가 세계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다. 중소도시 규모인 약 25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용량이다.  

빌 게이츠가 창립한 원전 스타트업 테라파워가 올해 미국 와이오밍주에 건설을 시작한다는 혁신적인 4세대 원자로 개념도. 345MW(메가와트)급의 소형 원전으로 건설된다. 테라파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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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듐냉각고속로 선두로 4세대 6개 개발

4세대 원자로는 첫 상업용 원자로(1세대)와 현재 운영 중인 2, 3세대 원자로를 잇는 차세대 원자로다. 기존 원자로에서 쓰이는 중성자보다 빠른 중성자를 사용해 흔히 고속로로 불린다. 고속중성자를 우라늄에 쏘아 플루토늄으로 만들고, 여기서 다시 발생한 중성자가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 우라늄 효율이 기존 원자로보다 100배 이상 증가한다. 연료 효율은 더 높고, 핵폐기물은 더 적고, 경제성을 갖춰야 하며, 무엇보다 안전해야 4세대 원자로로 인정된다.

2001년 설립된 4세대 원전 국제 협의체(GIF)는 전 세계 공모를 통해 130여 종의 미래형 원자로 후보를 모았다. 그리고 엄격한 기술 검토를 거쳐 소듐냉각고속로(SFR), 초고온가스로(VHTR), 납냉각고속로(LFR), 용융염원자로(MSR), 초임계압수냉각로(SCWR), 가스냉각고속로(GFR) 등 6개 원자로만 이들 기준을 만족하는 4세대로 규정했다. GIF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등 14개국 원전 전문가들로 이뤄진 국제 단체다.  

소듐냉각고속로는 4세대 선두주자로 꼽힌다. 테라파워도 소듐냉각고속로를 선택했다. 소듐냉각고속로는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는 기존 원자로와 달리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액체소듐으로 식힌다. 소듐은 원자로 운전 중에는 545도까지 가열되지만, 대기압(1기압)에서 끓는점이 880도로 매우 높아 폭발 위험이 거의 없다. 

대신 원자로에서 생긴 열로 수증기를 만들어 발전까지 이어지게 하기 위한 증기발생기 설계가 기술적으로 매우 까다롭다. 김용희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소듐은 물과 만나면 격렬하게 반응한다”며 “증기발생기는 500도가 넘는 소듐과 470도의 물이 1mm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끊임없이 흘러 다니게 만들어야 해 기술적 장벽이 높다”고 말했다. 

테라파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듐냉각고속로로는 열만 만들고, 용융염 기반의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결합해 증기발생기 없이 전기를 만들어 저장한다. 이런 방식의 소듐냉각고속로는 테라파워가 처음 시도한다.    

초고온가스로는 중국이 앞서 있다. 중국은 2018년 210MW급 실증로도 구축했다. 초고온가스로는 원자로 온도를 900도 가까이 올려 열을 생산하고, 이때 촉매로 고온의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해 청정에너지인 수소도 동시에 얻는다. 방사성 누출이 없는 헬륨가스를 냉각재로 사용해 안전하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오랫동안 잠수함 동력원으로 썼던 납냉각고속로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납냉각고속로는 액체 납이나 납-비스무트 합금을 냉각재로 사용한다. 김 교수는 “납의 녹는점은 327도로 낮아 만에 하나 원자로에 문제가 생기면 열만 끊으면 납이 금방 굳어 주변으로 퍼질 염려가 적다”고 말했다. 

이밖에 가스냉각고속로는 소듐냉각고속로에서 냉각재만 헬륨 등 기체로 대체한 방식으로 개발이 더딘 편이다. 초임계압수냉각로는 물의 임계점 이상에서 운전하는 고온·고압 원자로여서 중국이 주도적으로 개발해왔지만 미국 등은 연구하지 않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들이 제어실에서 사용후핵연료를 태워 없애기 위한 용도로 개발한 소듐냉각고속로(SFR)의 실증로인 ‘스텔라-2’ 실험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 용융염 쓰는 MSR이 ‘궁극의 원전’

국내에서도 1997년부터 소듐냉각고속로를 연구해 지난해 개발을 완료했다. 다만 전기 생산용이 아니라 가동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태워 없애기 위한 소각용으로 설계됐다. 어재혁 한국원자력연구원 다목적원자로기술개발부장은 “실제 소듐냉각고속로의 5분의 1 크기로 실증로인 ‘스텔라-2’를 구축해 시험도 마쳤다”며 “이론적인 수준에서 설계는 완료했다”고 말했다. 

올해 4월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300억 원을 지원받아 소각용으로 개발한 소듐냉각고속로를 발전용으로 전환한 4세대 원자로인 ‘살루스(SALUS)’ 연구도 시작했다. 살루스는 로마신화에서 안전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어 부장은 “소각로는 사용후핵연료를 자주 태워 없애야 하는 만큼 핵연료 교체 주기가 1년 정도로 짧다”며 “살루스는 핵연료를 한번 장전해 20년 이상 오랫동안 태울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살루스는 100MW급으로 2035년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4세대 중에서도 용융염원자로를 ‘궁극의 원전’으로 꼽는다. MSR은 액체 핵연료인 용용염을 써서 외부에 누출돼도 바로 굳어버려 중대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MSR은 세계적으로 개발 초기 단계다. 국내에서는 원자력연이 삼성중공업과 선박 전원을 MSR로 공급하기 위한 연구를 막 시작했다. 김성중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자율운전형 MSR을 위한 기초연구를 진행 중이다.

임채영 원자력연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은 “테라파워를 시작으로 2030년대 중반에는 4세대 원자로를 300MW 이하 소형모듈원자로(SMR)로 짓는 차세대 원전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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