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 팽배한 철거현장.. 광주 붕괴 사고, 예견된 '人災'

김동표 2021. 6. 1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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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다운 방식' 규정 어기고 철거 비일비재
작업순서 기준 안 맞는 계획서도 문제없이 검토 과정 통과
비용 아끼려 '재재하청' 등 무분별하게 영세업체에 맡겨
10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의 한 재개발구역내 빈 건물 앞에 깨진 유리조각, 철근 등이 어지럽게 방치돼 있다. 이 일대는 안전펜스는 물론 출입금지 안내문도 없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아시아경제 김동표 기자, 문제원 기자, 류태민 기자] 17명의 사상자를 낸 지난 9일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의 건물 붕괴사고는 현장의 안전불감증, 당국의 관리·감독 소홀이 복합적으로 빚은 ‘예고된 참사’라는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이미 유사 사례가 과거에도 수차례 발생했지만 일선 건물 철거·현장에서는 이같은 문제점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시아경제가 경기도 광명시의 재개발사업 철거현장 답사를 통해서도 확인했듯, 전국 곳곳의 공사 현장에서 위험이 시민의 일상을 언제든 일상을 덮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철거현장 고질적 안전불감증…불법하도급 의혹도

먼저 이번 사고는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재개발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부터 하청받은 철거업체는 건물 옆에 3층 높이의 토산을 쌓고 그 위에 굴착기를 올려 이른바 '톱다운' 방식으로 철거작업을 했다. 철거 잔해가 구조적으로 이미 불안정한 상태인 건물에 수평 하중으로 작용해 위험할 수 있다.

작업자들이 저층 부분의 일부 구조물을 허물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기초 부분이 약해진 상태에서 횡으로 압력이 가해진다면 붕괴는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철거에 관련된 ABC(기본)도 지키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면서 "철거 등 건설현장에서 안전에 대한 수칙이나 규칙 등을 도외시하고 제대로 지켜오지 않은 것들이 쌓여온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공사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위험을 외주화하는 불법 재하도급 관행에서 비롯된 인재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신축에 비해선 철거작업이 비교적 수월하다"면서 "현실적으로 철거업체의 경우 영세한 곳이 많고, 엔지니어링 기술을 전문적으로 갖고 있는 곳도 드물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윤을 늘리려다보니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관행이 일반화되고,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안전은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 건설업이 가진 고질적 문제점인 '하청-재하청-재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법적 구조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 4항에 따르면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나, 철거 현장에서 무시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2019년 국토교통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된 '5개년(2014년~2019년 8월) 불법하도급 적발현황' 자료에 따르면 5년 동안 총 885건의 불법 하도급 사례가 적발됐다.

신설 法도 무용…정부는 '사후약방문'

정부는 건축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후진국형 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해 5월 건축물 철거·해체 공사의 관리감독을 강화한 '건축물관리법'까지 도입했으나 이번 참사를 막지 못했다. 이 법에 따르면 사고 위험이 높은 건물은 해체시 작업순서와 해체 공법 등이 담긴 해체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공사감리도 받아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이 법을 도입할 당시 "해체공사에 대한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가능해졌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붕괴된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건물의 경우 계획서에 적시한 내용과 감리 의무 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건물은 안전을 위해 위층에서 아래층 순서로 철거를 진행해야 하는데, 시민들이 제공한 사진에 따르면 5층 건물 중 3층 이하 저층부터 부수는 모습이 확인됐다. 건축물관리법을 통해 감리제를 강화한 것이 무색하게 사고 당시 현장에는 안전을 책임질 감리자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일각에선 계획서에 담긴 작업순서 등이 기준이 부합하지 않았음에도 형식적인 검토 과정을 거쳐 통과됐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2019년 7월 서울 잠원동에서 발생한 5층 건물 붕괴사고 등을 계기로 법을 만들었음에도 유사한 '인재'가 똑같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건축물관리법 전반에 대한 제도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업계에선 법에 '감리자 상주' 관련 규정도 없는 등 미흡한 점이 많다는 의견이 다수다. 국토부는 사태가 커지자 전국 '긴급 안전진단'이라는 사후약방문식 처방을 다시 내놨다. 당장 이날부터 도로가에 붙어 있는 철거 현장을 대상으로 점검을 실시한다. 이와 함께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위원장인 이영욱 군산대 교수를 필두로 시공·구조·법률 전문가 10명의 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원인규명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부터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홍보에 열중했음에도 계속해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두고 '보여주기식 대응'이 아니냐는 비판에 제기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찰과 별개로 해체공법 적정성과 하도급 관계 등을 조사해 원인을 규명하고 조속히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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