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젠더 갈등, 남녀 양성 장점 키워 극복해야

2021. 6. 1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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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이 여권 신장 결정적 계기
여러 분야서 남성적 우월성 잠식
양성평등 위한 제도가 역차별 초래
남·녀 내면엔 다른 성적 특징 존재
성별 초월, 양성 균형있게 겸비해야


러브에이징
20·30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젠더 갈등이 대한민국 정치 지형을 변화시킬 범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젠더(gender)는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남·여)과 구분되는 사회적인 성(性)이다. 남성다움, 여성다움, 성 역할, 성적 정체성 등과 관련되며 심리적·문화적·사회적·역사적 상황에 따라 학습되고 변화한다.

인류는 문명사회를 연 이후에도 자연재해와 외세에 지속해서 맞서야 했다. 강인한 체력과 용맹함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힘·공격성·경쟁력·적극성·활동성·모험심·자신감·지배력·야망·용기 등을 의미하는 남성성은 우월함의 상징이 됐다. 승자가 된 남성은 출산과 양육에 충실하면서 자기 뜻대로 가정을 운영해 줄 여성을 선호했고 순종·유약함·모성애·수동성·감수성 등은 여성성의 상징이 됐다. 현실적으로도 여성은 사춘기 이후 수십 년의 가임기간에 반복되는 임신·출산·수유·양육 등으로 사회 진출이 어려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 사회의 남성은 사회활동과 경제권을 독점하면서 여성을 지배했고 여성의 지위는 아버지나 남편에 연동됐다. 불행히도 권력의 비대칭은 갑을관계를 형성해 부당한 갑질을 양산하기 마련이다. 육체적·정신적·언어적·환경적 폭력은 가부장제 사회의 가장이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억압과 차별을 받는 여성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19세 영미권에서 전개됐다.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여왕(1837~1901)이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사회는 여성에게 현모양처를 요구했다. 20세기가 되면서 여성참정권운동가(suffragette)들은 평화 시위를 넘어 돌과 폭탄을 이용한 전투적 투쟁과 단식 투쟁을 벌였고 사망자도 발생했다.

하지만 정작 여권이 신장한 결정적인 계기는 남성 권력자들이 일으킨 1, 2차 세계대전이다. 사무실·공장·농장 등 산업 현장에서 일하던 남자들이 전선에 배치되자 빈자리는 여성으로 채워졌다. 은행원·철도원·집배원·판매원·운전수·농사·축산 등은 물론 군수공장에도 여성이 투입됐다. 전쟁이 끝나자 사회 활동을 통해 독립성을 확인한 여성들에게 국가는 참정권을 부여했다.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는 1차 세계대전 후에, 이탈리아(1945년), 프랑스(1946년) 등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선거권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친 남녀평등과 성적인 해방을 추구하는 2세대 페미니즘은 의·과학의 발달이 촉진했다. 1960년에 등장한 먹는 피임약 덕분에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조절할 수 있게 됐고 결과는 여고 중퇴율 감소, 여대생의 급증,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등으로 나타났다. 선진 사회에서는 금녀(禁女)의 벽이 급속히 허물어졌다. 실제 2020년 노벨 화학상은 두 명의 여성 과학자가, 지난 4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82년생 여성이 작품상·감독상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과학 기술도 남성적 우월성을 빠르게 잠식했다. 강한 힘과 체력이 요구되는 육체노동은 물론 가사 노동도 기계가 대신하고, 최고의 검투사도 왜소한 여성의 총 한 발로 제압되는 시대가 열렸다.

젠더 이슈에 있어서 서구 선진국은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오랜 기간 논의됐고, 여성들이 목숨 건 투쟁도 했다. 반면 한국의 여성운동은 역사가 짧다. 참정권도 1948년 투쟁이나 저항 없이 남녀가 동시에 보장받아 치열한 희생의 발자취도 미미하다. 게다가 정치적 이해관계나 집단 이기주의까지 얽혀 모순된 주장도 난무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때 여성 운동 출신 정치인이 ‘피해 호소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피해자를 울리고, 유명 페미니즘 단체가 비판 성명조차 안 낸 아이러니는 단적인 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성평등을 위한다는 제도 중에는 역차별 문제를 초래해 특히 병역·취업난·할당제 등을 중심으로 현재 청춘 남녀 간 첨예한 젠더 갈등이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타개하고 청년 세대가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전진할 수 있을까.

일찍이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남성은 무의식에 존재하는 여성스러움(아니마)을 발달시키고 포용해야 성숙한 인간이 된다고 강조했다. 아니마는 세심하고 온화하며 감성적인데 억압되면 변덕스러운 허영심으로 타인의 감정을 해치는 문제의 남성이 된다. 여성의 내면에도 남성스러움(아니무스)이 존재하며 이를 적절히 개발하면 강인하고 적극적이며 이성적인 사람이 된다. 아니무스는 억압되면 수동적·의존적인 불완전한 여성이 되고, 지나치면 둔하고 호전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상적인 인간상은 성별의 차이를 초월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균형 있게 겸비한 존재인 셈이다.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성별에 따른 인생의 유·불리를 논하기가 어렵다. 여성이라서 좋은 점, 나쁜 점이 있으며 남성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개개인은 하나의 성 역할에서 벗어나 양성의 장점을 키워야 하며, 사회는 성 차별적 요소를 신속하게 조율해 공정과 상식, 시대상 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청년들이 살기 좋은 지속가능한 사회가 전개될 수 있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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