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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그거 거짓말이야

이훈범 입력 2021. 06. 1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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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본래 좌파 주특기
유독 한국에서 크게 타락해
생계형 좌파로 추락한 까닭
덩샤오핑 실사구시 배워라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몇 년 새 지겹게 봐왔지만, 원래 ‘내로남불’류는 좌파의 주특기인 거다.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 좌파의 역사와 같이 해왔다. 100년 전 좌우 이데올로기가 피 튀기게 경쟁하던 때도 그랬다.

스탈린 시절 소비에트 체제의 잔혹성을 당시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까지 하던 찬양을 하루아침에 비판으로 바꾸기는 자존심이 상할 터였다. 그래서 소비에트를 옹호하기 위해(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이중 잣대를 꺼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탈린이 정적들을 가혹하게 숙청할 때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진취적인 이웃 국가(소련)가 정직한 사람들에게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인도적으로 신중하게 (…) 한 줌의 착취자와 투기자를 처단하려고 할 때, 우리가 짐짓 도덕적인 태도를 취하며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드골 정부에서 문화부장관까지 지낸 앙드레 말로 또한 이렇게 두둔했다. “종교재판이 기독교의 본질적 존엄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처럼 모스크바의 재판은 공산주의의 본질적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다른 현실에는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까지 옹호했다. “소비에트와 소비에트 정부에 대적하는 가장 악랄한 적들의 견해에 비춰보더라도 재판이 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음모의 존재를 밝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소련의 실상을 아는 오늘날 눈으로는 참으로 지독한 견강부회(牽强附會)지만, 그래도 이들에게는 귀여운 구석이라도 있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좇으려니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는데, 신념은 지키되 궤변으로 빠지지 않게 (결국은 실패했지만)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까닭이다. 이중 잣대의 안과 밖 치수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내로남불 수준에는 미치지 않는다.

그런 좌파의 소심한 주특기가 유독 오늘날 이 땅에서 이렇게 추락하고 타락한 건 슬픈 현실이다. 주인이 생계형 또는 기회주의 좌파로 타락하니 불가피한 일이다. “증거 인멸 아닌 증거 보존을 위해 PC를 빼돌렸다”는 역사에 길이 남을 내로남불 어록을 남긴 작가, 자기의 최대 적이 자기인 걸 (자기만) 모르고 (자기를 어떻게 옥죌지 모를) 자서전까지 펴낸 내로남불 끝판왕 얘기는 더는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선데이칼럼 6/12
그들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권력을 쥔 운동권 좌파들은 매사가 내로남불 아니면 견강부회, 아전인수(我田引水)에 수석침류(漱石枕流)다. 정권 출범 초부터 그렇게 지적을 받고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대선이 발등의 불로 떨어지니 여당은 그나마 달라진 시늉이라도 하지만 정부는 아니다. 달라질 의지는커녕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참석한 국제회의 소개 영상에 서울 아닌 평양의 위성사진이 등장한 건 작은 실수가 아니다. 국격 추락은 말할 것도 없고 두고두고 소환될 국제적 조롱거리가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사과와 함께 엄격한 책임 규명, 설득력 있는 해명이 따랐어야 한다. 그런데 “국제행사인데 아무 곳이면 어떠냐”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북한 좋아하는 정부이니만큼 무슨 의도가 담긴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든다.

이번 검찰 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 부러 저질러놓고 어물쩍 눙치는 태도가 이 정부의 시그니처 행태이니 말이다. 충성파 검사들은 피의자 신분이고 뭐고 죄다 승진하고, 눈치 없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거나 비판한 검사들은 죄다 좌천됐다. 그런 결과를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는데 인사권자인 법무장관은 “공정과 내실을 기했다”고 태연히 말한다. 승진한 검사나 물먹은 검사들 모두 웃었을 게 분명하다.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을 받아 출당 또는 탈당 권유를 받은 여당 의원들 경우도 그렇다. 사연도 있고 억울한 점도 있을지 몰라도 그리 거품 물고 난리 칠 일은 아닌 거다. 국민들은 이미 억울해도 법 때문에 그들처럼 못 하고, 그들처럼 했다가 단속돼 벌금 내고 유죄 받아도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못해왔던 까닭이다. 국민 생각은 안 하고 나만 생각하니 내로남불이고 그래서 욕을 먹는 것이다.

공수처의 윤석열 수사 착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이 정권이 왜 그토록 공수처에 집착했는지 본심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야당을 배제하고 졸속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까지 말이다.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속으론 딴생각한다는 걸 누구나 안다.

대부분 신문이 어제 사설에서 지적한 걸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다른 좌파의 입을 빌려 말할 수 있겠다.

아주 괜찮은 좌파다. 이념 또는 진영에 매몰되지 않고 잘못도 인정할 줄 안다. 그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이 땅의 좌파들이 배웠으면 하는 절망적인 바람을 가지고 말이다.

개혁 초기이던 1979년 덩샤오핑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여배우 셜리 매클레인이 만찬장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문화혁명 당시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하방(下放)된 노학자를 만났다. 학자는 그녀에게 “대학에서 강의할 때보다 인민공사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게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매클레인은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노라고 덩에게 말했다. 덩이 그녀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대답했다. “그거 거짓말입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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