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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난쏘공]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 저소득층 내쫓고 개발이익은 중상층에게만

남보라 입력 2021. 06. 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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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토지 소유주 아닌 공공이 재개발 계획, 주도
세입자 살던 곳과 '동등한 환경' 제공돼야 이주

<4·끝> 한국식 폭력적 개발 언제까지

'경기도 최대 규모 뉴타운'을 만들기 위해 내년 철거가 시작되는 경기 광명시 철산3동 쪽방촌. 전세 500만 원에 방 한 칸을 얻어 사는 이곳 주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홍인기 기자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2018년 겨울. 서울 아현동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증금 200만 원, 월세 25만 원짜리 전셋집에 살았던 박준경(당시 37세)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다. ‘아현 2구역’ 재건축으로 강제 철거가 시작돼 쫓겨난 지 3일 후 벌어진 일이다. 12년 전 겨울에는 철거에 저항하던 상가 세입자들이 사망하는 ‘용산참사’가 있었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이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집과 일터를 빼앗기며 조용히 비극을 맞았다. ‘주택 공급’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공익’ 앞에 작고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 남의 건물과 땅을 빌려 장사하고 농사짓는 사람들의 희생은 당연시돼 왔다. 1층에 살던 사람이 낯선 동네 반지하로 이사 가고, 땅 1,000평을 빌려 농사짓던 농부가 300평밖에 빌리지 못하게 되는 일들은 늘 관심 밖이었다. 버티기라도 하면 “보상을 더 받으려고 저런다” “생떼를 쓴다”고 폄훼했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은 맨몸으로 쫓겨나고, 개발 이익은 중상위층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악순환. 민간 주도 재개발이 도입된 후 40여 년간 반복돼 온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의 민낯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소불위 조합, 뒷짐 진 지자체… 공익 아닌 이윤 중심 재개발

경기 광명시 홈페이지 중 '광명 뉴타운' 개발 관련 페이지에 "광명시의 역할은 뉴타운 계획 수립까지"라고 적혀 있다. 민간에 모든 걸 맡겨둔 채 지자체는 관여하지 않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 재개발은 대부분 토지·주택 소유자와 민간 건설사가 주도하는 ‘합동 재개발’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을 인가만 해준다. 처음 이 방식이 도입된 건 1983년.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86 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정비가 필요했지만 정부는 돈이 없던 때, 민간의 자원을 활용한 주택 공급방식이었다. 깔끔한 공동주택이 공급되고 중산층 거주 지역이 새로 생긴다는 사회적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많았다. 개발에 반대하는 소유주의 토지·주택까지 수용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합은 세입자들을 강제로 내보냈고, 원주민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 후 세입자 보호를 위한 법 등이 조금씩 보완돼 왔지만 실효성이 낮고, 민간 주도 개발은 40여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도시 계획, 정비라는 공익의 외양을 띠지만 개발 이익은 조합이 독식하는 구조도 그대로다.

“지금 방식은 완전히 거꾸로 된거예요. 지자체가 도시 계획을 세워 공익에 맞게 개발을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방식은 토지·주택 소유자가 개발을 결정하고 시행하잖아요. 지자체는 인가만 해주고 뒷짐 지고 있고요. 토지 소유자들이 재산 불리려고 하는 사업에 도대체 무슨 공공성이 있겠어요. 이 거꾸로 된 걸 바로잡아 이윤이 아닌 공공복리를 목적으로 개발을 해야 난개발, 세입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이강훈 변호사의 지적이다.


공공이 개발하는 선진국... ‘이전과 동일한 환경’ 지원

우리나라처럼 토지 소유자에게 이처럼 막대한 권한을 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공공이 어느 정도 예산을 투입하고 개발을 주도한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유럽은 토지 소유자가 현재의 토지 이용에 대한 권한은 갖지만, 개발권은 없다”며 “토지 개발은 그 도시의 계획을 통해서만 할 수 있고, 개발에 따른 이익은 사회 전체의 편익이므로 그 이익 역시 공공이 같이 나눠 갖는다”고 설명했다.

주민 의견 수렴과 세입자 이주대책도 촘촘하다. 토지·주택 소유자만 재개발 찬반 투표에 참여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세입자를 포함한 전체 거주자가 주민투표를 한다. 또 독일은 정비계획을 세우기 전에 반드시 주민들과 함께 ‘사회계획’을 세워야 한다. 거주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로, 개발로 인해 거주자나 상인 등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경우 사업 시작 전에 지자체와 이해관계자들이 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협의해 문서로 확정하는 것이다. 사회계획에는 주택 소유자들이 세입자에게 임시 거주용 주택, 직간접 이사비용 등을 제공하고, 개발 후 임대료도 현재 세입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정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미국 역시 ‘동등한 대체주택 제공 없이는 이전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입자의 기본 권리로 보장하고 있다. 대체주택 제공, 저렴한 주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한 정보 제공, 금융 및 세무 지원, 맞춤형 상담 등을 통해 최대한 이주 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또 법적 기준에 맞는 세입자에게 4개월치 주거 이전비(도시근로자 가구원 수별 월평균 가계지출비 기준)를 주는 우리나라의 획일적인 지원과 달리 미국은 원래 살던 집과 동등한 대체주택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임대료 차액을 지원한다.

이강훈 변호사는 “외국은 주거의 질을 높이면서도 주거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개발하는 추세”라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면 철거 및 중산층 거주 단지 공급이라는 가치만 앞세워서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는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 법적 기준 완화… 개발 영향평가 통해 약자 피해 줄여야

지난 4일 철거민 4명이 옥상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기 구리 재개발 인창C구역의 성일장 여관. 12년 전 용산참사를 겪고도 상가 세입자 대책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전혼잎 기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제도 중 시급히 바꿔야 할 것으로 세입자 기준을 꼽았다. 현재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알리는 ‘구역 지정 공람공고일’ 이전에 살았던 주거 세입자, 즉 최소 10년 이상 거주한 세입자에게만 임대주택 신청권 또는 주거이전비를 지급한다. 이 좁은 기준 때문에 대부분의 세입자는 아무 대책도 없이 쫓겨난다. 이원호 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서울시가 기초생활수급자인 세입자에 대해서는 ‘사업시행 인가일’ 이전으로 조례를 바꾼 것처럼, 전체 세입자에 대해 이 날짜를 기준으로 이주대책을 지원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또 개발이 주민들의 주거와 생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검토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지역사회 영향평가’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국 등은 사회영향평가, 인종형평성평가 등을 통해 개발 지역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 미치는 영향까지 사전·사후에 진단한다. 박인권 교수는 “빈민, 저학력자, 여성, 장애인, 고령자 등 지역사회에서 배제되기 쉬운 사회적 약자에 미치는 차별적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 평가해 계층 간 불균형에 대응하는 등 부정적인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가 세입자에 대한 대책도 더 미룰 수 없다. 상가세입자가 받는 지원은 영업손실 보상금 4개월치가 전부다. 용산참사를 겪고도 3개월치였던 이 보상금을 한 달치 늘려준 것외에 다른 제도적 보완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도가 후퇴했다. 상가 세입자 기준은 주거 세입자와 달리 당초 재개발 '사업시행 인가일' 기준이었는데 2018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 때 주거 세입자처럼 '구역 지정 공람공고일'로 훨씬 앞당겨지면서 향후 영업손실금조차 못 받는 상인들이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세입자 기준을 되돌리고, 보상 외에도 공공임대 상가, 임시 상가 제공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현재 상가 세입자는 보상만 있는데 각자의 상황에 맞게 임대 상가에 들어가는 등 여러 선택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인권 교수는 "과거에는 토지 소유주 중심으로 개발했지만 이제는 세입자, 상인들의 권리까지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개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력적인 대규모 신도시 개발은 그만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 신도시 개발도 방식 자체를 다시 고려해 볼 때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비밀리에 대규모 구역을 결정해 민간의 토지를 강제 수용하는 방식 자체가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또 인구 감소기와 도시 형성 완숙기에 접어든 우리나라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는 개발에 대해 계속 주민들과 협상을 하지, 우리나라처럼 기습적으로 무조건 땅을 빼앗는 나라는 없다”며 “과거에 정말 집이 없을 때는 그렇다 쳐도, 이젠 조금 천천히 지어도 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인권 교수는 “신도시 개발은 기존의 도시 계획을 모두 무시하는 초법적 개발인데, 이런 방식으로 대규모 개발을 하는 것이 인구 감소기에 정말 필요한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이제는 소규모 필요한 택지를 계획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개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21세기 난·쏘·공 : 글 싣는 순서

<1>살 곳 없는 세입자들

<2>생계 잃은 농민들

<3>내몰리는 상인들

<4>한국식 폭력적 개발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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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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