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말려죽인 '과수 에이즈' 공포..추석 때 과일구경 못하나

신진호 2021. 6.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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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화상병, 전국 340개 사과·배 농장서 발생

“우리 동네 과수원이 몽땅 없어지게 생겼어요.”

충북 충주시 산척면 석천리에서 21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서모(62)씨는 과수화상병이 확산한 지역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충주의 대표적 사과 산지인 산척면은 2년 전까지 200여 농가가 과수원을 운영했지만 지난해 과수화상병이 마을을 덮친 뒤 43개 농가로 줄었다.

지난 7일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의 한 사과농장에서 관계자들이 과수화상병에 감염된 과수나무를 매몰하고 있다. 뉴스1

서씨는 “지난해 과수원 2곳(1만3200㎡)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해 나무를 갈아엎었다”며 “올해 나머지 과수원 3곳에도 병이 번지는 바람에 농사를 더는 짓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과수원에 들렀다가 나무 몇 그루에서 검게 그을린 듯한 잎을 발견했다. 그는 “아침에 소독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나무가 몇 시간 사이 잎이 검게 변했다”며 “평생 사과 농사만 지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감염되면 줄기·잎 시커멓게 말라 죽어
과수화상병이 충북과 충남, 경북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후 6시를 기준으로 전국에서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는 5개 도(道), 20개 시·군 340곳으로 집계됐다. 피해 면적은 162㏊에 달한다. 충북이 188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69곳, 충남 68곳, 경북 11곳 등이다. 이 가운데 261개 농가에서 매몰작업을 마쳤다.

과수화상병은 주로 사과나 배 등에서 발생한다. 감염되면 잎과 꽃·가지·줄기·과일 등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며 말라 죽는다. 아직 치료제가 없고 전염력이 강해 ‘과수 구제역’ ‘과수 에이즈’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2015년 경기도 안성에서 처음 발생한 후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7일 과수화상병이 확진된 충남 예산군의 한 사과농장에서 7일 굴삭기를 이용해 사과나무를 땅에 묻고 있다. 연합뉴스

이 병은 올해 감염됐다고 해서 즉시 시커멓게 말라 죽는 게 아니다.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기도 한다. 발생 원인도 오리무중이다. 나무에 잠복한 균이 적정 기후를 만나 발현되거나, 균이 비바람과 벌·전지가위 등을 통해 번지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과수화상병에 감염된 나무를 매몰한 밭에는 3년간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물론 방제 당국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치료제 없고 전염력 강해 로 불려
피정의 충북농업기술원 식량기술팀장 “나무에 잠복하고 있던 과수화상병 병원균이 발현했거나, 개화기 곤충 전파 가능성, 전정 작업을 하는 사람에 의한 전파 등 발병 원인은 여러 경로가 될 수 있다”며 “현재까지 치료제가 없어 나무의 면역력을 높여주거나, 소독, 상시 예찰을 통해 감염 나무를 제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자치단체마다 이동 제한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충남의 대표적 사과 주산지인 예산군은 지난 4일 오가면의 사과농장에서 과수화상병이 확인되자 과수원 경영자와 작업자에게 사전방제 행정명령을 내렸다. 행정 명령에 따라 과수농가는 화상병 예방·예찰 활동을 강화하고 작업자들은 다른 농장 방문이 제한된다. 작업자의 이동과 작업 기록도 의무화하고 묘목을 새로 구입할 때는 이력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예산 지역 사과밭은 973㏊로 충남 전체의 58%나 된다.

지난 7일 충남 예산군의 한 사과농장에서 7일 과수화상병 방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예산군]


예산군 관계자는 “(과수화상병이) 보통 6월에 발생하는 데 올해는 봄철 기온이 높아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빠르게 나타났다”며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발견 즉시 제거하고 땅에 묻어야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 경북 안동 '이동제한' 조치
지난 4일 과수화상병이 처음으로 발생한 경북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북의 사과밭은 지난해 기준 1만8705㏊로 전국(3만1598㏊)의 59.2%를 차지한다. 당국은 과수화상병이 경북을 중심으로 확산하면 우리나라 과수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며 예찰·예방 활동을 강화했다. 작업자 간 과수원 이동 제한 조치도 발령했다.

농촌진흥청은 장마를 앞두고 집중호우가 내릴 것에 대비, 각 자치단체와 농가에 신속하게 매몰작업을 마치도록 촉구했다. 과수화상병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역담당관을 확대 운영하고 있다. 과수화상병 단계를 ‘경계’로 상향 조정하고 18일까지 전국 사과·배 농가를 대상으로 예찰도 강화했다.

지난달 31일 허태웅 농촌진흥청장이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충남 당진시의 한 과수농가를 방문, 방제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화상병은 세균성 병으로 조기발견이 어렵고 치료제가 없어 신속한 진단과 매몰이 중요하다”며 “적과와 봉지 씌우기 등 작업 때 증상을 발견하면 곧바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예산·충주·안동=신진호·최종권·김정석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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