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은 과연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제쳤을까..커지는 기술 뻥튀기 논란

이종혁 2021. 6. 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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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반도체 긴장해야 할 시기는 맞다"

[MK위클리반도체]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최첨단 D램·낸드플래시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먼저 선보인 데 이어 양산도 앞서가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의 우려가 크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투자 적기를 놓치며 마이크론에 추격을 허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의 기술 뻥튀기 논란도 만만찮다.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대만 '컴퓨텍스 2021' 포럼 기조강연을 통해 1α나노미터(㎚·1㎚는 10억분의1m) LPDDR4x D램의 대량 양산을 발표했다. 마이크론 발표에 따르면 이 회사는 AMD·에이서 같은 고객사에 1α나노 D램을 공급 중이다. 마이크론의 1α나노 D램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14나노 D램에 해당한다. 14나노 D램을 대량 양산하는 건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다.

메로트라 CEO는 176단 3차원(3D) 낸드 기반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신제품도 이날 공개했다. 마이크론은 작년 11월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 양산을 시작했는데, 생산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의미다. 메모리 양대 제품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제치고 기술 선두를 꿰찬 것이다.

미국 마이크론이 공개한 176단 3차원(3D) 적층낸드플래시 기술. /제공=마이크론
마이크론은 여세를 몰아 이달부터 대만의 첨단 D램 공장을 증설해 본격적인 점유율 확대에 나설 태세다. 마이크론은 대만 타이중 A3 D램 공장 증설을 이달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A3는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5만~6만장 수준의 증설이 가능하다. A3는 1α나노 D램 생산 거점으로 육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의 이 같은 '파죽지세'에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일단 놀랍다는 반응이 많다. 마이크론이 한국과 일본의 메모리 공정 엔지니어들을 대거 영입하며 기술 개발에 속도를 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마이크론이 최근 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서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출신의 경력직 엔지니어를 다수 채용해 미국과 일본 거점에서 생산 기술 개발에 투입했다고 전했다.

매일경제가 글로벌 비즈니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링크트인을 조사한 결과 실제로 2017년 이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서 엔지니어 수십 명이 마이크론에 이직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메모리 중에서도 D램 분야 핵심 엔지니어들이 마이크론에 많이 넘어갔다. 이들이 마이크론에 기술적 디딤돌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마이크론의 기술이 과대 포장됐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비해 1~2년 기술이 뒤처져 있던 마이크론이 단기간 내 격차를 좁히긴 어렵다는 얘기다. 마이크론이 양산했다고 밝힌 1α나노 D램, 176단 낸드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제품과 동급의 성능을 갖췄는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마이크론이 발표한 첨단 반도체 제품을 정작 시장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마이크론이 176단 낸드 생산을 처음 발표한 건 작년 11월이다. 1α나노 D램의 첫 양산 시기는 올해 1월이다. 대량 공급을 선언한 6월에는 시장에서 흔하게 제품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현황
마이크론의 연이은 기술 '추월'에 삼성전자도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한진만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 4월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마이크론의 약진에 대해 "D램 시장에서 15나노 제품 비중은 우리가 업계 최고 수준"이라며 "하반기는 14나노 양산을 본격화해 계속해서 업계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1x, 1y, 1z 같은 용어를 써왔다. 예를 들어 10나노급 1세대 제품은 1x, 2세대는 1y, 3세대는 1z로 표기한다. 상세한 공정 기술을 감추기 위한 용어다. 반도체 업계는 이런 관례를 깨고 삼성전자가 정확한 숫자를 밝힌 건 마이크론의 행보에 자극받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반도체 사업은 소자 자체 성능뿐 아니라 생산능력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정된 웨이퍼에서 누가 많이 양질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고, 또 얼마나 큰 규모로 출하하느냐에 따라 사업 경쟁력이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마이크론의 1α나노 D램 수율과 생산능력은 베일에 싸여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반도체 미세화 공정 기술 개발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저만치 앞서가 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격차를 더 벌리긴 어려워도, 마이크론이 따라잡기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마이크론이 반도체 공정 미세화의 주역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쓰지 않고도 14나노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에 주목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0나노 초반급 D램부터 EUV 공정을 적용하고 있다. EUV는 1대당 2000억원이 넘는 초고가 반도체 장비로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한다.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만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EUV 장비가 없는 마이크론은 액침불화아르곤(ArF) 노광장비 등 EUV보다 한 세대 전인 심자외선(DUV) 기술로 첨단 메모리를 만든다.

마이크론의 D램 메모리 기술 청사진. /제공=마이크론
다만 마이크론의 기술력을 둘러싼 논란 그 자체로 이미 한국의 메모리 초격차가 위협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176단 낸드를 양산하지 못하는 상태다. SK하이닉스는 176단 낸드 개발을 완료했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그러나 양산은 아직이다.

양사는 176단 낸드 양산 시기를 올해 하반기로 제시했지만 전문가들은 연말께야 가능할 것으로 본다. 14나노 D램 양산 시기 역시 올해 말께로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마이크론의 기술력에 대해 한국 기업은 물론 일반 여론마저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20년 넘게 누려온 한국 메모리 산업의 기술적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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