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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60년 고초 김승균 대표 "낡은 유물, 이제 버려야"

입력 2021. 06. 12. 11:09 수정 2021. 06. 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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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기와 더불어' 발간 김승균 '민족사랑방' 대표, 국가보안법 폐지없이 언론자유 없다 "자유는 인간의 것"

책 ‘세기와 더불어’는 “무릇 인생 만년에 자기의 한 생을 회고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화로운 일이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권 머리글 첫 문장이다. “걸어온 행로가 같지 않고 보고 듣고 느낀 생활 체험이 천차만별이라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심경으로 지나온 나날들을 더듬어보게 되는 것이다”는 문장이 후술된다.

저자는 고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주석. 책은 전기로 분류된다. 자신이 태어난 1912년 4월부터 일제 식민지 시기가 끝난 1945년 동안 항일 투쟁기를 주로 그린 회고록이다. 전체 8권 ‘152×225mm’ 기준 351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영어 제목은 With the Century로, 미국, 호주, 캐나다, 이집트, 싱가포르, 에티오피아 등 해외 공공·대학 도서관이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을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한국만 예외다. 2021년, 이 책을 볼 수 있는 곳은 국회도서관밖에 없다. 일부 대학 도서관에도 있지만 특수자료로 분류돼 일정한 허가 절차를 거쳐야만 열람할 수 있다. 


▲책 '세기와 더불어' 표지.



▲책 '세기와 더불어' 전 8권.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라는 이유다. “국가 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함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는 출판물은 제작, 수입, 복사, 소지, 운반, 반포, 판매, 취득 등 일체 행위를 금지하는  7조 5항이 근거다. 북한이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의 지배자를 미화하거나 그들에 동조하는 책은 출판해서도, 소지해서도 안  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회고록이 국가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을까. 주인공이 김일성 주석이란 사실은 객관적으로 얼마나 위험한가. 최근 ‘세기와 더불어’ 판매 중단을 둘러싼 논란은 ‘낡은 유물’이 된 국가보안법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달 초 미디어오늘과 만난 김승균(82) ‘민족사랑방’ 대표는 “73년 된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민족사랑방은 ‘세기와 더불어’ 출판사다. 

팔순 넘긴 재야운동가, 또다시 공안수사

지난 2월 발간된 책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4월22일 판매 사실이 보도로 알려지자 교보문고, 예스24 등 온오프라인 서점이 스스로 판매를 중단했다. NPK아카데미 등 보수 성향 단체는 즉각 판매·유통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3주 후인 5월13일 법원이 기각했지만, 이번엔 경찰·국가정보원이 나섰다. 지난달 26일 김 대표가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죄) 위반 혐의를 산다며 그의 자택부터 사무실, 관련 서점 등을 수색해 모든 책을 압수했다. 

“아침 9시10분쯤 됐나. 소파에 앉아 있는데 누가 벨을 눌렀다. 문 열었더니 10여명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다 경찰인 줄 알았는데, 국정원 직원도 섞였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압수수색 영장에 국보법 위반, 압수 목록엔 ‘세기와 더불어가 찍힌 모든 것’ 이렇게 적혔다. 2시간 정도 집을 다 뒤졌다. 서울 공덕동의 출판사 사무실, 영업을 맡은 출판협동조합 사무실, 인쇄소, 책을 산 서점까지 수색했다. 재고가 80질 정도 있었는데 싹 가져가서 완전 거지가 됐다. 책이고, 메모지고, 장부까지 다 들고 갔다.” 

민족사랑방이 발간하지 않은 책까지 다 뺏겼다. 주식회사 ‘남북교역’ 소유의 책이다. 김 대표가 1991년에 설립한 대북 무역회사로 통일부가 인가한 특수자료 취급기관이다. 북한의 신문, 잡지, 서적, DVD 등 출판·간행물을 주로 거래했다. 이번에 발간된 ‘세기와 더불어’는 남북교역이 과거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로부터 산 책의 복사본이다. 남북교역은 ‘코로나19’ 문제로 2019년 12월부터 북한 국경이 봉쇄되며 경영에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 이달 초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김승균 민족사랑방 대표. 사진=손가영 기자


김승균 대표는 “민족 문제를 토론하는 공간으로서 민족사랑방을 만들었다. 그러려면 수익 활동이 필요해 통일에 유용한 서적도 낼 수 있는 출판사를 등록했는데, 첫 책부터 이런 문제가 터졌다”고 설명했다. 저작권 문제엔 “(민화협 측에서) 당연히 항의할 수 있다. 그래서 책에다가 ‘남는 수익금은 전부 통일운동 기금으로 사용한다’고 적었다. 그쪽에서 돈을 달라고 하면 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을 발간한 근본 이유는 ‘남북 교류와 화해’다. 한반도 분단 극복은 김 대표가 평생 사회운동에 투신한 이유 중 하나다. “남북이 서로 화해하려면 서로 대화·교류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할 거 아닌가. 6·25 전쟁을 말할 건가, 남북 체제를 말할 건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은 누가 했든 값진 일이다. 학술서의 의미도 있다. 세계 식민지 혁명 운동에 있어 무장투쟁 사례는 흔치 않다. 누가 어떤 부대에 있었는지 등 세세한 내용도 담겨 있다.” 김 대표의 말이다. 

학술적 의미는 북한학 학계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예대열 박사는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투쟁만 절대시하던 과거의 경직된 역사관을 탈피해 매우 전향적이고 포괄적인 역사관을 보여준다”며 “사회주의적 이념을 넘어 모든 계급·계층을 포괄하는 통일전선적 시각에 의거한 민족해방투쟁을 중시함으로써, 3.1운동이나 상해임정의 독립운동 등의 우익적 항일운동, 그리고 일제말기 좌우익의 민족통합적 항일운동 등을 최대한 수렴해 각각의 민족해방운동사로서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게 평가했다”고 분석했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2010)

“지금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반쪽짜리”라는 문제의식도 있다. 김 대표는 “(1947~1948년의) 제주 4·3사건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도 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고 있고, 여수·순천 사건(1948)도 그런 과정에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조선공산당을 포함한 좌파 진영의 항일투쟁 역사는 아직도 제대로 기록되지도, 역사로 인정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책에 오류나 미화가 많다는 지적엔 “읽어보니 순 거짓말이었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지적하면 될 일”이라고 답했다. “검증도 원고를 볼 수 있어야 하지 원고도 못 보는데 누가 뭘 알 수 있느냐”며 “회고록 자체가 자기 중심적으로 서술되기에 남이 한 것도 내가 했다고 쓰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있다면 누구든 자유롭게 검증·비판하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프랑스 공영방송 France 24가 한국의 '세기와 더불어' 검열 사태를 보도한 기사. 프랑스 통신사 AFP, 이코노미스트지 등 각국의 다양한 언론이 이 사태를 다뤘다.


▲전 세계 도서관의 장서 보유 여부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www.worldcat.org) 갈무리. 세기와 더불어를 검색한 결과의 일부다.


국보법 폐지 없이 언론 자유 없다

‘언론·사상의 자유’는 그가 사회운동에 60여년간 투신한 이유다. 김 대표는 21살이던 1960년 4·19 혁명 참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민족 통일운동 등을 이끌어온 재야인사다. 1968년 ‘자유 언론 투쟁’의 상징이던 ‘사상계’ 편집책임인을 맡았고 2년 후 ‘오적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다. ‘금서’가 있던 1970년대 후반 출판사 ‘일월서각’을 설립해 사회과학책을 내다가 또 수배를 당했다. 

‘오적’은 박정희 군부정권에 정면으로 대항한 시였다. 1970년 5월 5·16 쿠데타 9년 기념호로 낸 사상계에 실렸다. “5·16 쿠데타 공약에서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고 한 군부 세력들은 형편없이 호화롭게 살고 있었다.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다. 김지하 시인에게 ‘시 하나 써주시죠’ 하고 부탁했다. 며칠 후 김 시인이 300줄이나 되는 장시를 가져왔다.” 초판 5000부는 삽시간에 팔렸고 재발행 요구도 빗발쳤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이를 20만 부나 발행되던 기관지 ‘민주전선’ 1면에 실으면서 사태가 급변했다. 

김 대표는 시 게재로 구속됐다가 100일 후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그는 2013년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사무실에서 장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정보부에서 들이닥쳤다. 차에 태워져 머리가 처박힌 상태에서 어디론가 끌려가 뭇매를 맞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사상계를 들어간 이유로 “당시 민주언론을 선도하는 잡지로 청년들이 서로 들어가려 했던 매체였다”고 말했다. 사상계는 1970년 9월, 오적을 게재한 지 5개월 후 폐간됐다.

김 대표는 다음 해 박정희 정권의 간첩 조작에 휘말렸다. 그는 당시 군부정권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주장했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협) 사무총장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민수협 인사들을 북한과 연계시켜 간첩단으로 만들고, 민수협에 참여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 등 야당 인사들에게 간첩 혐의를 씌우려 했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1971년부터 체포된 1977년까지 7년간 수배·도피 생활을 했다.

이후 ‘일월서각’을 설립해 운영하면서도 갖은 고초를 겪었다. 사회 변혁을 다룬 사회과학 서적 대부분이 금서로 지정된 때였다. 1980년대 구속된 출판사 사장만 한 달에 한 명꼴인 140여명이었다. 일월서각은 세계 각국 혁명사, 중국 혁명사, 한국 전쟁의 기원, 한국 분단사, 일제강점기 탄압사 등의 서적을 주로 발간했다. 김 대표는 정부의 회유에 대항해 사회과학 출판사 모임 ‘금요회’를 만들었고, 판매금지도서 전시회를 개최하다 또 수배를 당했다. 1982년 조선·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80년대 해직기자들과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만들어 공동대표도 역임했다. 

▲책 '세기와 더불어' 1권 내지 중 자료사진.


▲책 '세기와 더불어' 내지 중 일부.


‘국민의힘’조차 “북한 서적 통제, 국민 유아 취급”

김 대표는 언론 자유 운동과 더불어 남북의 사회·문화적 교류에도 매진했다. 김 대표가 남북 교류를 위해 북한 책을 발간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년 전 북한 사회과학연구원이 36년간 번역해 완간한 ‘이조실록’을 한국에 들여왔다. 조선 시대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 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쓴 사서다.

이조실록은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400권 1질이 한국에 있는 전부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문과 대학원생 등 비전문가들에게 쪼개서 번역을 시켰다. 오류가 얼마나 많았겠나. 이미 북한은 이조실록을 30여 년에 걸쳐 완역했다. 이게 얼마나 귀중하냐, 이게 있으면 박사학위도 수도 없이 나올 수 있지 않겠냐. 북에 애걸복걸한 끝에 수입했다. 북에서 한 세트까지만 허가해 그 이상 들여오지 못했다.” 김 대표의 말이다. 

때문에 이번 국보법 혐의 수사에 김 대표는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 학술단체의 행사에서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매진한 활동을 발표하다 자기도 모르게 펑펑 울기도 했다. 청년기에 국가보안법 때문에 구속·징역·수배에 시달린 햇수만 10년이 넘는다. 나이 팔십을 넘겨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받고 자택 수색까지 강제로 당했다. “이게 촛불 혁명으로 세운 정권이냐. 장관이고, 청와대 인사고, 사정 다 뻔히 아는 이들이 또 탄압을 한다”고 했다. 

국보법의 시대착오적 측면은 수사기관만 외면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조차 ‘세기와 더불어’ 이적표현물 규정에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는 건 국민을 유아 취급하는 것”이라 밝혔다. 같은 당 부대변인은 “대한민국 국민의식과 체제의 우월성을 믿고 국민에게 판단을 맡기자”고도 성명을 냈다. 사단법인 대한출판문화협회도 “북한 책이라고 무조건 비판을 쏟아붓고 ‘판금’ 조치를 내리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성명을 냈다. 

이적표현물을 규정한 판례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김 대표는 “사상·언론·출판의 자유가 우선이다. 이 자유는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만 최소로 제한된다”고 강조했다. 국보법 7조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위헌 소송은 현재 7건이 헌법재판소에 계류돼있다. 21대 국회에도 국보법 7조를 폐지하는 국보법 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지난달 19일엔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올린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청원’이 10만명 동의를 얻었다. 이 경우 국회 소관위원회가 청원을 심사해야 한다. 

“(이 책이) 7조 위반이라는데 (북한) 찬양이 없다. 항일 투쟁에 대해 쓴 건데 뭘 찬양을 하나. 대한민국 수립되기 전, 100년 전의 얘기다. 대한민국이 존재한 이후라야 국가 안보든, 국보법 위반이든 말이 되지. 기가 막힌 노릇이다.” 김 대표는 수사기관의 공안적 발상을 비판하며 국보법 폐지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할 권리, 알 권리는 인간이라면 의당 가져야 할 기본권인데 정부는 언제까지 이걸 침해할 겁니까? 정부는 마치 침해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백성들 괴롭히는 거 아닙니까. 이거를 73년이나 유지하고 있어요. 얼른 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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