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맨날 아는 사람만 만나는 거, 나만 그래?

이마루 입력 2021. 6. 13. 00:01 수정 2022. 11. 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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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전하는 안부들. 버블 바깥의 지인이었던 당신들에 대해
「 버블 안에서 만나요 」

누군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이름도 외울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생겨난 데이팅 앱 중, 상대의 가치관을 먼저 볼 수 있는 앱을 통해서 연인을 만났다고 했다. 가치관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21세기에 연애 상대를 앱으로 만나는 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내가 놀란 부분은 다른 데 있었다. “이런 시대에 동선을 모르는 사람이랑 연애할 수 있어?”

코로나19의 그늘 아래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은 모험보다 위험에 가까운 일로 느껴진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 그 자체에 내재한 위험에 감염의 가능성이 더해진 탓이다. 이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간다면 ‘감염 경로 미확인’ 상태의 확진자가 될 가능성은 높아만 갈 것이다. 나는 열심히 거리 두기를 지키고, 동선을 모르는 사람을 만날 위험은 되도록 감수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동선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한 사람이 있는 이 버블은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너무나 비좁아서 가끔 방울을 터뜨려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충동을 참아내면서 1년 하고도 절반의 시간을 보냈다.

이 버블은 ‘소셜 버블’이라고 부른다. 뉴질랜드를 포함한 일부 국가의 거리 두기 방식으로, 가족과 친구, 연인 중 동선을 공유할 수 있고, 나를 위험에 덜 노출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골라 그 사람들만 만나는 형태로 이뤄진다. 보통 가족과 직장 동료처럼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의 연인, 소수의 친구를 포함한다. 만나는 인원을 최소화하되 친밀한 관계는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팬데믹 시대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낮추려는 시도라고 한다. 한국은 소셜 버블 격리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비슷한 방식으로 일상의 만남을 관리해 왔다. 5인 이상의 사적 모임이 금지되는 기간이 이어지면서 이런 만남의 형태는 더욱더 익숙해졌다.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전에 몰랐던 사람을 만난 일이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지난해부터 일 때문에 만난 몇몇 사람은 마스크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 인사하며 한참 소개하고 난 뒤에야 이전에 만났던 사람인 걸 깨달았다. 한껏 반가움을 표현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마스크 바깥쪽 얼굴이 절반의 감정이라도 전달해 줬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나니 버블 바깥의 관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버블 안에 갇혀도 될 만큼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한 버블 바깥의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멀어져만 갔다. 이제 어디까지를 지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나에게 그런 관계가 있긴 했는지 의심이 든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최선의 다정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이들과는 다른 방식의 수고를 들여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과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방법을 잊어버렸다. 이 망각과 상실이 나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조차 못하겠다.

지난해 가장 강도 높은 거리 두기가 시행됐을 때 질병관리본부의 요청은 ‘불요불급이 아니라면’으로 요약된다. 나는 요새도 어떤 일을 할 때,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 ‘꼭 필요하고 시급한가?’를 묻곤 한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좁아진 세상이 언제 넓어질 수 있을지, 넓어지기는 할지 막막한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우리는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친밀한 관계와 완전한 타인 사이, 복잡하고 다양한 거리를 둔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마음과 감정의 간격을 좁혀가는 노력을 쌓아 올릴 기회가 찾아올까? 누군가 내 동선에 들어오는 일을 기꺼이 감당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가까워지고, 멀어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쏟아지는 밤이면 나는 상상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비눗방울이 조금씩 커지는 장면을 그려보는 것이다. 내 비눗방울이 친구의 비눗방울과 만나자, 두 방울은 터지지 않고 맞닿은 면이 자연스럽게 녹아 연결된다. 이제 하나가 된 비눗방울은 두 사람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크다. 그런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커지다 수많은 사람을 담아낸 비눗방울은 마침내 지구를 담을 수 있는 크기가 된다. 이제 우리는 모두 하나의 버블 안에 있고, 안전하다.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얼굴을 알아보고, 표정을 확인할 수 있다. 원한다면 아주 멀리 떠날 수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 새로운 관계로 연결될 수도 있다. 당연했던 일을 상상해야 하는 세계에 사는 일은 때로는 서글프지만, 이전의 세계 역시 상상하고 꿈꾸는 대로 넓어졌음을 먼저 기억하려 한다. 방울은 풍선이 아니라 언젠가는 터질 것이니, 얇은 막도 마스크도 없이 타인을 마주 볼 수 있을 그때는 상대의 동선보다 안부를 먼저 묻고 싶다.

윤이나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랑〉을 썼고, 〈라면: 물 올리러 갑니다〉 외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여성이 만드는 여성의 이야기’의 ‘여성’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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