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내가 원하는 토마토·상추 '레시피'가 쏙~KIST 강릉 '식물공장' 가보니

강민구 입력 2021. 6. 13. 12:00 수정 2021. 6. 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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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수직농장·주크박스서 최적 생육조건 찾아
버려지던 대마까지 재활용..이로운 성분만 남겨
장준연 분원장 "탁상 스마트팜 구현도 가능"
현재 제작비 대당 200만원, 내후년 상용화 목표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가족들과의 ‘삼겹살 파티’에 엄마가 소형 냉장고처럼 생긴 ‘푸드주크박스’에서 영양성분을 늘린 붉은색 상추를 꺼낸다. 한켠에는 수험생의 인지능력 향상에 좋다는 결명자가 자라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진이 개발한 푸드주크박스.(사진=강민구 기자)
버려지던 대마에서 ‘환각’ 성분은 버리고, 소아 뇌전증에 좋은 성분만 뽑아내 병원에서 환자 치료를 돕기도 한다. 아직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수 있는 모습이다.

11일 찾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에서는 수직농장(실내농장), 실증농장, 주크박스에 과학기술을 접목해 식물에서 특정 성분을 늘리거나, 최적의 재배환경을 제어해 내가 원하는 ‘요리법(레시피)’에 따라 식물을 얻기 위한 연구에 한창이다.

연구팀은 작년부터 내년까지 ‘푸드주크박스’에 매년 10억원씩 총 30억원을 투입해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보급해 데이터를 모을 계획이다. 내후년부터는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학교에 교육용 목적으로 장비를 보급할 예정이다. 현재 제작비는 대당 200만원 수준이지만, 앞으로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가격을 낮추고, 가정용으로도 쓸 수 있다.

김형석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장은 “해외에서 볼 수 있는 주크박스(동전을 넣으면 노래를 틀어주는 기계)처럼 내가 원하는 식물을 제때 내가 원하는 성분을 늘려 쓰도록 연구를 하고 있다”며 “유무선 통신기술, 센서를 활용해 식물생육 데이터를 모을 시스템을 만들어 농업계고등학교 등에 기기를 보급했고, 앞으로 데이터를 구축해 인공지능으로 분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푸드 주크박스’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온실엔 토마토가 ‘주렁주렁’…‘수직농장’엔 기능성 식물이 ‘쑥쑥’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 속에 온실 속에는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환경요인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다. 사람의 체온을 재는 것처럼 열화상 센서가 장착돼 잎 표면 온도, 주변 대기 온도와의 차이 등을 분석해 광합성을 잘하도록 감시하고, 온·습도를 늘린다. 영양액을 공급하기 위해 노즐이 장착되어 있고, 전자저울이 함께 있어 날씨에 따라 필요한 물 공급량도 파악한다.

김형석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장이 푸드 주크박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최적의 조건으로 자란 토마토는 맛도 좋다. 연구용 목적이기 때문에 별도 판매나 공급은 하지 않고, 인근의 학교, 병원 등에 무료로 나눠준다.

연구용 목적이기 때문에 시설 구축은 평당 100만원 수준이지만 앞으로 각종 기술 발전에 따라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

온실과 달리 햇빛, 온도, 습도 등 모든 재배환경을 제어하는 곳도 있다. 더운 온실에서 벗어나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수직농장(실내농장)’이 나온다. 코로나19에 따라 아프리카지역에서 의약품 원료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한 기업과 협업해 원료에 대한 유전적·환경적 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여러층(다단식)에서 배초향, 병풀 등 다양한 식물을 인공적인 빛을 쏘아 자라게 한다. 모든 조건을 통제하기 때문에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량을 계획해 찍어내거나 특정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버려지던 대마까지 연구…식물재배 환경 구축

최근 연구진은 국내 대학, 기업들과 함께 저마약성 대마인 산업용 헴프의 주성분인 칸나비디올(CBD)을 활용한 원료 의약품 수출과 소아 뇌전증 치료제 국산화 연구에도 착수했다. 헴프는 마약으로 알려진 마리화나와 달리 환각 성분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함량이 0.3% 미만으로 낮다. 하지만 뇌전증, 치매, 신경질환 등 특정질환 치료 원료의약품인 ‘CBD(칸나비디올)’을 함유해 활용가치가 높다.

연구진은 의료용 헴프의 CBD 고함량 국산 품종을 개발해 산업화 가능성도 찾을 계획이다. 이달부터 원내에 보유했던 대마 가공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 기업도 등장했다. 그동안 안동 등에서 헴프를 재배면서 대부분 버려왔는데 사람에게 이로운 성분만을 100% 잘라내 특정 성분을 늘리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할 길을 찾고 있는 셈이다.

장준연 분원장은 “그동안 헴프는 마약으로 인식돼 약용 성분을 무시해왔는데 환각을 나타내는 ‘악마’ 성분은 버리고, ‘천사’ 성분의 생육조건을 조절할 ‘레시피’를 구현할 계획”이라면서 “미래에는 의료용 헴프를 비롯해 다양한 식물의 생육조건을 조절해 탁상 스마트팜 구현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이 헴프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사진=한국과학기술연구원)

강민구 (science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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