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꿈의 세계가 가까이 왔나

김태훈 기자 입력 2021. 6. 1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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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이란 새로운 화두가 일상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지난 5월 건국대에서는 첫 ‘메타버스’ 대학 축제가 열렸다. 가상세계 속에서 만난 학생들은 자신의 아바타에 ‘과잠(학과 점퍼)’ 같은 다양한 옷을 입히고, 킥보드를 타며 가상공간 위에 펼쳐진 캠퍼스를 누볐다. 학교의 명물인 고양이나 자라 같은 동물들을 발견해 인증샷을 찍는 이벤트나 퀴즈를 풀고 방탈출게임을 진행하는 등의 다양한 행사 역시 모두 ‘건국 유니버스’라는 이름의 가상공간 위에서 벌어졌다. 가상 캠퍼스 속 노천극장에서는 동아리 공연이 펼쳐져 누구나 실제 캠퍼스에 가지 않아도 랜선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코로나19 탓에 학생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바로 이 메타버스 공간에서라도 축제를 즐기게 해보려는 취지에서 기획된 축제 행사는 정교하게 구현된 가상공간 덕에 첫 시도부터 호평을 받고 해당 대학을 넘어 외부에서도 주목을 끌 정도였다.

건국대 축제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해 구현한 가상 캠퍼스인 ‘건국 유니버스’ 구동 화면 / 플레이파크


메타버스(Metaverse)는 이와 같은 변화를 총칭하는 키워드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가상’ 또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이 용어는 점차 개념의 범위가 넓어지며 보다 다양한 영역의 현실과 접목되고 있다.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닐 스티븐슨이 1992년 <스노 크래시>에서 ‘아바타’와 함께 처음 사용한 이래, 그동안 주로 쓰이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말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진보한 의미로 정착하는 중이다. 기술의 발달로 현실과의 접점이 늘어난 이 가상세계는 더 이상 현실과 상반된 또 다른 공간이 아니라 현실과 융합된 또 다른 현실의 연장선상에 만들어지는 신세계다.

■코로나19 비대면 흐름 속 메타버스 부상

메타버스가 그저 일회적이거나 단편적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기업의 업무공간까지 대체하고 있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올해 네이버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경기 성남시에 있는 회사 사옥으로 출근하는 대신 자사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로 출근해 업무를 시작했다. 제페토에 마련된 가상 사옥을 둘러보고 신입사원들에게 주어진 임무과제도 수행하는 등 10일 동안의 신입 연수기간을 전부 메타버스 안에서 보냈다. 연수 후 이어진 재택근무 역시 네이버가 서비스하는 메신저나 커뮤니케이션 앱 등을 활용해 원격으로 이뤄진다. 비단 네이버뿐 아니다. 부동산 정보 서비스 기업 직방은 아예 현실의 사무실 공간을 대폭 축소하고 메타버스 사무실 위에서 직원들끼리 업무를 하도록 했다. 이처럼 국내 여러 업체에서 메타버스 근무문화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메타버스를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논의에 적극 활용한 사례는 시민사회단체 가운데서도 나타났다. 정보 분야 시민사회단체인 진보넷은 지난 2월 정기총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활용한 플랫폼은 기업이나 대학 등 다양한 조직에서 사용하는 ‘개더타운’이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저마다 자신의 아바타를 게임 캐릭터처럼 귀엽게 꾸밀 수 있는 픽셀아트 기반의 개더타운 위에 총회장을 만든 뒤 서로 소통하고 싶은 회원의 아바타를 찾으면 가까이 이동시켜 말을 건넬 수 있다. 단지 아바타 간의 문자 채팅만 지원하는 것을 넘어 각자의 카메라를 통해 비춰지는 실제 얼굴도 함께 보며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진보넷 측은 총회 전부터 가상 총회장 장소도 꾸며놓고 새로운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는 법을 안내해 자칫 온라인으로 열리는 회의 과정에서 실시간 논의에 장벽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을 예방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2’를 산업현장에서 활용하는 모습 /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등 콘텐츠 분야에서 빠른 확장세

회의를 하거나 강의를 듣고 게임을 하는 등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메타버스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그럼에도 바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이 메타버스라는 개념에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메타버스의 파급력이 기업활동이나 투자 등 경제적 영역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쏟아지지만, 막상 접해보려고 하면 쉽게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관련 분야가 방대한 탓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간 꾸준히 소개된 여러 종류의 증강·가상현실 기술이 서로 접합하면서 만들어진 세계가 메타버스이기에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는 사실 역시 확인할 수 있다.

메타버스는 크게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초점을 맞추는 대상이 이용자의 사적인 영역인지 아니면 이용자들이 공유하는 외부세계인지에 따라 구분되는 한편, 실제 접하는 물리적 현실에 바탕을 두고 좀더 확장하느냐 아니면 보다 가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느냐 하는 기준에 따라서도 구분된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처럼 이용자 개인의 기록을 디지털 세계에 저장하는 ‘라이프로깅’ 유형, 포켓몬고 게임이나 구글 글래스처럼 현실세계와 결합한 정보를 보여주는 ‘증강현실’ 유형, 줌(Zoom)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이나 현실의 지리적 정보를 시뮬레이션해 보여주는 디지털 트윈 같은 ‘거울세계’ 유형,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또 다른 공간을 구현하는 ‘가상세계’ 유형까지 모두 메타버스에 포함된다. 최근의 메타버스 열풍은 이 각각의 유형들이 서로 간의 경계는 물론 현실과의 경계도 쉽게 넘어설 수 있게 되면서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경계가 무너지는 기술적 진보의 단면을 보여주는 서비스가 바로 미국의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다. 미국의 MZ세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메타버스에선 이용자들이 게임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다른 이용자들과 소통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일 수 있다. 메타버스인 로블록스 안에서 개발한 게임으로 돈을 버는 경우도 흔하다. 5000만개가 넘는 게임이 올라와 있고 거래는 가상화폐로 이뤄진다. 현실 주식시장에서도 로블록스는 이용자와 매출액이 늘어나면서 지난 3월 뉴욕증시 상장 이후 기준가 45달러였던 주가가 두 배 이상 올라 시가총액이 6월 10일 기준 518억달러(약 57조원)에 달했다.

미국 10대들 사이에선 로블록스 이용시간이 유튜브의 2배 이상일 정도로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모습은 두드러진다. 국내의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인 네이버제트의 제페토 역시 가입자 2억명 중 90%가량이 국외 이용자로, 연령별로는 10대 이용자가 80%에 달한다. 코로나19로 학교를 벗어나 비대면 활동시간이 늘어난 청소년을 위주로 새로운 공간인 메타버스 활용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가 만드는 가상경제 시대가 온다>를 쓴 최형욱 퓨처디자이너스 대표는 “코로나19로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리만족시켜주고, 바쁜 일상에 지쳐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이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보니 엄청난 인기를 누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게임과 소셜미디어와 결합한 메타버스가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 것처럼 대중문화와 콘텐츠산업 분야 역시 메타버스와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많은 영역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방탄소년단이 신곡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뮤직비디오를 게임 플랫폼 ‘포트나이트’에서 최초 공개했다. 미국의 유명 래퍼 트레비스 스콧은 포트나이트에서 연 가상공연으로 하루 수익만 216억원을 벌어들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방탄소년단이 위버스 플랫폼에서 연 가상 콘서트 역시 동시 접속자 270만명을 기록할 정도였다. 블랙핑크가 제페토에서 연 팬미팅에서는 연인원 3000만명이 몰렸다. 오프라인에서는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전 세계의 팬들과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대중문화산업 분야에서 메타버스는 코로나19 위기상황을 타개할 대안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 회원들이 개더타운을 활용한 온라인총회를 연 뒤 가상공간 속 아바타를 이용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진보네트워크센터

산업현장에서도 메타버스 활용 늘어

게임이나 공연 감상 등 문화콘텐츠를 향유하는 개인 차원에서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다채로운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기업 등 조직 차원에서는 생산성과 매출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 최대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는 ‘미라(MiRA)’라는 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증강현실 시스템을 도입했다. 에어버스는 생산하는 항공기에 관해 개발·연구·생산 전 영역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에 가깝게 제공하기 위해 3차원으로 구현한 정보를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글라스를 착용하고 태블릿을 활용해 제조과정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한 세부정보나 조립도면, 재고 현황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기종의 부품을 검수하는 기간이 3주에서 3일로 단축될 정도로 효과가 나타났다. 완성차 제조업체인 도요타나 재규어랜드로버 등도 비슷한 메타버스 기반 생산지원 서비스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화장품·생활용품을 제조하는 로레알 역시 생산공정에서 문제가 생긴 설비에 관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홀로그램을 구현하는 장비를 사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2’가 이들 사업장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증강현실 기기다. 머리에 뒤집어쓰고 눈앞에 화면을 보여주는 안경형 기기인 이 홀로렌즈2는 그 자체로 CPU를 탑재한 소형 컴퓨터이자 고해상도로 증강현실 화면을 보여주는 출력기기 역할을 한다. 현재로선 산업용 외에도 미군이 이 기기를 활용해 ‘통합 시각 증강 시스템(IVAS)’을 구축하는 등 메타버스의 활용영역은 더욱 넓어진 상태다. 적외선 카메라를 함께 내장해 야간투시경 기능까지 갖춘데다 주변 지역의 지리적 정보와 배치된 병력 상황도 알려주고 총기의 조준경과 연동할 수도 있어 미래 전장에 대비한 장비로 도입되고 있다.

신산업동력으로 주목받는 메타버스의 영향력에 주목해 정부에서도 관련 분야 기업 및 기관들과 민관 협력체계를 갖추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내 기업 17곳 및 유관기관, 협회 등과 ‘메타버스 얼라이언스’를 출범하며 메타버스 6대 주력산업으로 제조, 의료, 건설, 교육, 유통, 국방산업을 지정했다. 콘텐츠산업 분야에서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디지털 전환의 주요과제로 메타버스 육성을 표방하며 산업구조 전환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양환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본부장은 6월 8일 열린 ‘2021 콘텐츠 산업포럼’에서 “콘텐츠 산업에서 디지털 전환은 MZ 세대가 중심이 되는 온라인 가상세계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메타버스 관련 시장의 규모는 지금까지보다 향후 10년 내에 더 급속히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전망에 따르면 메타버스 시장은 2030년에 이르면 최대 1조5429억달러(약 1741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어느 한 산업의 변화가 다른 산업에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에 대해서도 더욱 대비해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게임업체인 유니티코리아의 김범주 본부장은 “메타버스를 통해 게임산업의 벽이 허물어지고 미디어, 자동차산업, 전자상거래 분야 등 더 많은 산업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메타버스는 지속해서 운영해야 하는 생태계이므로 데이터 분석과 업데이트, 수익화 모델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과 그에 따라 확대되는 시장 및 산업 규모로 인해 나타날 부작용과 해결 과제 또한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국내의 상황만 봐도 산업 측면에서는 기술 전문성이 뒤떨어지고, 메타버스 적용 분야 역시 일부분에 국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관계 부처들이 합동으로 작성한 ‘가상융합경제발전전략’을 보면 “현재 국내의 메타버스 기술 활용 수준은 초기단계로, 문화체험에 집중돼 있다”는 점과 “산업의 고성장을 견인할 주체인 핵심기업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빠른 시장 확대 속 우려할 지점도

일반적인 개인 이용자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지점에서도 우려되는 부분은 나타나고 있다. 가상부동산 거래 플랫폼인 ‘어스2’는 게임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게임에서 구현한 전 세계의 도시 속 부동산이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인식되며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지구상의 지표면적을 10㎡ 단위로 나눠 만든 메타버스 속 부동산은 ‘타일’로 지칭되는데, 거래할 때도 현실처럼 경제적 대가가 오가기 때문에 자칫하면 투기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 타일 단위면적당 0.1달러로 책정된 땅값은 대륙과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급등세를 보여왔다. 한국은 타일 하나에 평균 28달러선까지 가격이 올랐고, 가장 비싼 지역에 해당하는 미국은 평균 59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일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나타나는 투기 현상과는 별개로, 메타버스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 역시 대비책을 마련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도 현실세계의 법과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연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시선이나 뇌파, 생체신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 수집의 범위가 확장되고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개인정보에 대한 확인이 어려워지면서 개인정보 수집·활용 및 보호에 대한 법적·윤리적 이슈가 부상할 수 있다”며 “메타버스 내에서 아이템 제작·판매, 가상 부동산 투자·거래 등 새로운 유형의 노동이 생겨나 노동권의 보장과 납세의 의무와 같은 노동현안도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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