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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섭 칼럼] 원전, 누가 시계추 거꾸로 돌렸나

최경섭 입력 2021. 06. 13. 19:28 수정 2021. 06. 1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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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섭 ICT과학부장
최경섭 ICT과학부장

"우리에게는 선진국처럼 100년 이상을 기다리면서 경험을 축적해나갈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중국과 같은 거대한 내수시장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제3의 길이 있을까?"

몇해 전, 서울대 공대 석학 26명이 한국 산업의 위기와 미래를 진단한 '축적의 시간'이란 책이 출간돼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며 과학계는 물론 산업계, 정치권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석학들은 단기간의 빠른 성장과 결실을 위해 추격과 모방의 체질에서 익숙해진 대한민국이, 과거와 같은 체질로는 선진국을 따라 잡을 수도, 또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따돌리기도 벅찰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수백년의 경험을 축적해 온 선진국과 양적인 경험을 축적해 온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차별화된 '축적의 시간'을 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모방과 추격 보다는 한발 앞서서 도전하고, 창조하는 가치를 더 중요시 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계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권자인 정부의 변화도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정부도 짧은 시간에 목표를 조기에 초과 달성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우리가 꼭 해야하고, 잘할 수 있는 산업과 기술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축적의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계속해야 된다고 말이다.

대한민국이 산업화에 나서기 시작한지 60여년 동안, 소위 '한강의 기적'은 단기간에 축적의 성공방정식을 극대화한 덕분이다. 산업기반이 전무한 황무지에서도, 정부와 기업 모두 미래를 내다보고 과학기술과 신산업 개척을 게을리 않았다. 대한민국의 대표산업인 반도체를 필두로, 자동차·조선 등에서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세계 톱 브랜드로 성장한 산업분야 모두가 '과학기술-산업발전'이라는 축적의 성공방정식을 잘 이어온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여기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축적하고도 생태계 전체가 황폐화되고 붕괴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원자력 발전부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원전은 위험하고 불안한 에너지로 낙인찍히면서 4년 넘게 '탈(脫) 원전'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 70년대 후반부터 정부, 과학계, 산업계가 40년 넘게 힘들게 쌓아온 축적의 결과물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 과학계는 탈 원전 정책 기조에 맞춰, 원전기술의 핵심인 안전성 연구 대신 원전 해체기술로 방향을 선회했고, 과거 정부에서 대규모 수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산업계는 점차 국제무대에서 뒷방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정부는 해외 원전수출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어느 나라가 탈원전 국가에 앞으로 50년 이상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할 국책 프로젝트를 맡길지 궁금할 뿐이다.

원전 조기 폐쇄 및 백지화 정책으로 인한 추가 비용도 결국 국민들의 부담이 됐다. 정부는 최근 매달 전 국민이 내는 전기사용료에서 부담하는 전력기금에서 이를 충당키로 했다. 문 정부는 정권 초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이 추가로 전기료 부담을 불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그 약속은 이미 파기된 지 오래다.

세계는 '탄소 중립' 시대를 맞아 다시 원전에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원전의 해외 수출을 위해 미국과 협력키로 한데 이어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등 미래형 원전 기술분야에 대한 청사진도 제시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차세대 원전개발, 해외원전 시장 진출을 위한 지원은 하겠다면서도, 여전히 국내 원전 증설은 안전성이 검증된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게 모토다. 국내에서 수십기의 원전기가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고, 또 우리의 원전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추가적인 검증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반도체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국부 산업은 그동안 수십년간 과학계와 기업, 정부가 힘들게 축적해 온 과학기술과 산업화의 결과물이다. 원전도 그 성공방정식의 결과물이다. 40년 넘게 대한민국이 힘들게 쌓아 온 원전 기술, 원전 산업화의 성공방정식이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철저히 단절되고 훼손되고 있다.

최경섭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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