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애들이랑 같아지고 싶어요"

최민지 기자 입력 2021. 6. 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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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법' 개정안 논란..외국인 영주권자들 목소리

[경향신문]

국내 출생 자녀 대상으로
국적 획득 절차 간소화에
“중한민국” 등 혐오 쏟아져
“한국에서 나고 자랐어요”
“경찰 꿈꾸는 고려인 아이
도전조차 할 수 없는 현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A양(11)은 등교하면 종종 속상한 마음이 든다. 모둠활동을 할 때 같은 조 친구들이 자기들끼리만 의견을 주고받아서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차마 이유를 묻지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A양은 겉보기엔 영락없는 한국 어린이다. 그러나 실상은 중국 동포인 부모의 국적을 따른 중국인이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그는 2년 전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A양은 “(한국인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나도 다른 애들이랑 같아지니까”라고 말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국적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법무부가 공개한 개정안은 외국인 영주권자의 국내 출생 자녀가 보다 쉽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대에 걸쳐 국내에서 출생하거나 혈통적 유대가 있는 재외동포의 미성년자 자녀 등이 대상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A양은 간단한 신청만으로 한국 국적을 획득할 수 있다.

13일 경향신문은 개정안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에게 이번 논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들은 국적법 개정안은 “아동인권의 문제”라며 국내에서 일부 일고 있는 외국인 특히 중국인 혐오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자각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네 살배기 딸을 둔 중국 동포 B씨(38)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 한국 국적을 얻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 아이들과 차이가 없다”며 “하지만 외국인이라 (공식서류에는) 이름이 영문으로 돼 있어 학교에서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A양 사례처럼 학급 구성원 중 누군가가 외국 국적이라는 사실은 어떻게든 알려지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은근히 따돌림당하거나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현실은 외면한 채 “중한민국” “중국 사대정권” 등 혐오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당사자들은 이 같은 발언이야말로 한국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중국 동포 C씨는 “(국적 취득자) 몇 천명 정도로 중국에 예속된다는 것은 한국을 비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라 한국 국적 취득 대상이 되는 만 19세 이하 외국인은 약 8000여명에 불과하다.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나 ‘한족’은 각각 3725명과 3852명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4세 D씨(34)는 “우즈벡에 살았지만 우즈벡 사람이 아니었다. 외모가 달라 어딜 가도 주목을 받았다”면서 “나의 아들이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체성 외에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공무원 등 한국 국적이 필수인 일은 도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고려인 지원단체 ‘너머’의 김영숙 센터장은 “경찰이 꿈인 고려인 아이에게 ‘너는 국민이 아니라 어렵다’고 얘기할 때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저서 <화교가 없는 나라>를 통해 국내 화교 차별 실태를 짚은 이정희 인천대 교수는 “아이들은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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