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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가다 광주 사고 67세 "버스 뒷자리로 간 친구는.."

김지혜 입력 2021. 06. 14. 00:03 수정 2021. 06. 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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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건물 덮친 버스서 구사일생
뒷좌석에 탔던 친구 한 명은 숨져
"사고 이후 상황 아무 기억도 안나
딸이 가로수 덕분에 살았다고 말해"

지난 9일 오후 4시 20분쯤 광주광역시 학동 전남대병원 앞 버스정류장. 54번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A(67·여)씨와 B(73·여)씨가 버스에 탑승한 70대 남성에게 인사를 했다. 함께 무등산 증심사까지 등산하기로 한 C(75)씨였다. C씨는 이들에게 아는 척을 한 뒤 좀 더 한산했던 버스 뒤편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C씨가 차량에 오른 지 2~3분도 되지 않아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버스가 철거 중이던 건물에 깔렸다. A씨는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C씨가 버스 뒤편으로 간 뒤 곧바로 기절한 것 같다”며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는데 며칠이 지났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13일 광주 철거건물 붕괴사고 현장 인근에 꽃다발과 손편지가 놓여있다. 이날까지 희생자 9명 중 7명의 발인이 이뤄졌고, 오늘(14일) 마지막 2명의 발인이 진행된다. [연합뉴스]

A씨는 한 모임에서 B씨를 알게 된 뒤 이내 친해졌다. C씨를 A씨에게 소개해준 것도 B씨였다. 평소에는 이른 점심을 먹은 뒤 만났지만, 그날은 날씨가 후텁지근했던 탓에 더위가 한풀 꺾이길 기다렸다가 집을 나섰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선 북구와 동구를 관통하는 54번 시내버스를 타야 했다. 근처에 사는 B씨와 함께 광주 북부경찰서 앞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른 A씨는 버스기사 뒤쪽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B씨는 A씨 건너편에 앉았다.

되짚어보니 천운이었다. 버스 앞쪽에 탑승했던 두 사람은 다행히 목숨을 건진 반면 뒤쪽에 탔던 C씨는 숨졌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9명은 대부분 뒤쪽에 있던 승객들이었고, A씨와 B씨처럼 앞쪽에 있었던 8명은 다행히도 부상자 명단에만 이름을 올렸다.

A씨는 지인들의 부상·부고 소식을 12일에야 접했다고 한다. 보호자인 딸이 A씨가 충격을 받을까 봐 이 사실을 숨겨와서다. 광주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인A씨는 “살아있는 게 천운”이라고 말했다. C씨에 대해서는 “좋은 사람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버스를 타고 가던 것까진 생각나는데 그 뒤론 아무 기억이 없다”며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버스 안 상황은 어땠는지, 어떻게 병원에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후)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남동생이 앉아 있었다”며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딸이 빨리 올 수 없으니 광주에 사는 삼촌한테 연락한 거로 안다”고 말했다.

A씨는 “딸이 나무 때문에 살았다고 하더라. 가로수가 충격을 흡수해 건물이 무너져도 버스 앞쪽 자리는 공간이 남았나 보다”라고 했다. 소방당국도 “건물 콘크리트 잔해물이 시내버스를 덮칠 당시 인도에 심어진 아름드리나무가 완충 작용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A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고통을 호소했다. 이번 사고로 허리와 손목 등을 크게 다쳐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힘겹게 입을 떼며 “처음에는 말도 못했다. 이제야 목소리가 조금씩 나온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아프지만 이런 아픔과 괴로움마저 살아남은 이와 가족들에게는 감사한 일인 것 같다”고 했다.

B씨에 대해서는 “(딸이) B씨 아들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B씨가)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더라. 빨리 보고 싶고, 얼른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C씨가 생각난 듯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광주광역시=김지혜·이가람·최종권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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