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태권도장서 사지마비된 소년.."책임지겠단 관장 말바꿔"

정희윤 2021. 6.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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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이 지난해 입학했어야 할 중학교의 교복은 아직도 옷장 앞에 그대로 걸려있다. 오른쪽은 박군이 다치기 전 교복을 입은 모습. 가족 제공

“초등학교 졸업식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교복을 맞춰놓고 새로운 학교생활과 친구들을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는 이제 엄마 없이는 혼자서 앉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지난해 2월 태권도장에서 낙법 교육을 받다 일어난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박모군(14)의 아버지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 중 일부다. 박씨는 “주의 의무와 안전 관리의 책임을 다해야 할 관장이 초기에는 책임을 지겠다 했지만 나중에 관장을 만난 보험사 직원에게서 돌아온 말은 관장 측이 보험 합의를 해줄 수 없으니 소송을 통해서 보험금을 청구해야 하고, 관장 본인은 잘못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었다”고 주장했다.

박군은 사고로 경추 1번과 5번이 골절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박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이의 키가 160cm 정도인데 관장이 자신의 허리를 숙인 자세, 그러니까 아이의 가슴 높이인 115cm~120cm에서 낙법을 시켜 사고가 난 것”이라며 “아이가 기억하는 사고 당시의 상황은 계속 일관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는 그 높이가 그날 처음 시도하는 높이여서 좀 두렵고 무서웠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사고 후 개명, 도복 입은 사진 삭제

사고가 난 지난해 2월 이후 박군은 사지가 마비돼 계속 병상에 누워있다. 가슴 밑으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가족 제공

사고 이후 박군의 가정은 무너졌다. 박군의 어머니는 직장을 그만뒀다. 박씨는 “아이를 종일 돌봐야 해서 아내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며 “1살 터울의 둘째 아들이 엄마 보살핌을 못 받다 보니 저와 2~3주에 한 번씩 교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군은 이름을 바꿨다. 박씨는 “아들이 사고 당시의 이름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개명했다”고 설명했다. 가족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년간 태권도를 배운 박군이 여태까지 태권도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고 한다. 박씨는 “아이가 도복 입은 사진을 볼 때마다 너무 괴로워서 전부 삭제했다”며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기막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장에 CCTV 없어…“피해자가 모든 걸 입증해야 했다”

지난 10일 박씨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박씨는 도장 내에 CCTV가 없었던 사실을 지적했다. 박씨는 “CCTV만 있었어도 그날의 상황을 명백히 알 수 있을 텐데 피해자인 아이가 모든 걸 입증해야 해서 너무 어려웠다”며 “아이의 진술이 맞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정말 노력했고 정신과 약도 먹었다”고 호소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범죄의 예방 및 수사 등의 다른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예외적으로만 개인정보보호법에서 허용한 목적으로 CCTV를 설치ㆍ운영할 수 있다. 태권도장 등 체육시설에 CCTV를 설치해야 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지난 4월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 운동부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 체육 시설 주요 지점에 CCTV를 설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학교체육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심의ㆍ의결된 바 있다.

박씨는 경찰의 늑장대응도 지적했다. 박씨는 “지난해 4월에 사건을 접수하고 형사가 배정됐는데 10월 초에 처음으로 아이 진술을 들으러 왔다”며 “아이가 기억이 점점 옅어지니까 사고 당시 상황만 정확히 기억하고 전반적인 다른 상황을 기억하지는 못한 것도 영향이 있을 것”고 말했다.


“두 번이나 무혐의” vs “증거 조작”

박씨는 해당 태권도장 관장을 업무상과실치상으로 형사 고소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관장의 법률 대리인은 “검찰에서 두 번이나 무혐의 판단이 나왔다”며 “피해자 측 항고가 받아들여져서 재수사도 했는데 지난 5월에 최종적으로 혐의가 없다고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험을 신청했다가 취소한 이유는 보험사 약관에 따르면 관장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정이 돼야 보험료가 지급 가능하니 일단 법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거였다”고 덧붙였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20cm 방석 세 개를 깔고 관장이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웅크리고 앉아있었던 상황이고 피해 학생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슴 높이가 아니었다”며 “5cm의 특수매트 2개와 그 위에 안전매트까지 삼중으로 보호 시스템이 있었다”다고 해명했다. 이어 “피해 학생의 사고가 너무 안타깝고 가족들도 답답하신 것을 안다”면서 “관장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등으로 사정이 힘든데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도장 위치가 알려지면서 정신적으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군의 법률 대리인은 “안전 조치를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가 분명 있는데 3중으로 매트를 깔았다는 등의 부분은 조작된 진술일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민사 소송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증명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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