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공론화 18년 됐는데..아직도 "사회적 논의 부족하다"는 이준석

김미경 2021. 6. 1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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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2003년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 구성
2006년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이준석 대표 "차별금지법 시기상조, 사회적 논의 부족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취임 인사차 17일 국회 본관 정의당 당대표실을 방문해 여영국 정의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별금지법이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21대 국회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뒤 1년 만인 올해 6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달라는 청원이 10만명을 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곧바로 '평등에 관한 법'을 발의하면서 논의에 열기를 더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불붙은 차별금지법에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대표가 '찬물'을 끼얹었다. 이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시기상조"라며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반대를 표명했다. 정의당과 기본소득당 등은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로 바뀌었다"면서 이 대표에게 날을 세웠다.

18일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법'을 살펴보면 △평등법의 목적 △ 차별의 기준과 용어의 정의 △차별에 해당하지않는 기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 기반의 영역 적용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수립 및 실행 등 책무와 국가 및 지방자치 단체의 차별시정 의무 △차별의 시정권고 △차별의 손해배상, 입증책임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평등법 2조에서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평등권을 갖고 있음을 선언하고, 4조 차별금지와 개념 조항에서는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 이용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어떠한 사유로도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정의했다.

단서조항으로는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개정 및 정책의 수립·집행 △다른 법률의 규정에 따라 차별로 보지 아니하는 경우는 차별로 보지않되, 그 행위가 사회상규에 반해서는 안되는 조항을 덧붙였다.

이 의원은 "평등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와 의지가 매우 강력하다"며 "일부 종교계를 중심으로 완강한 반대도 있지만 치열한 사회적 공론화를 거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종교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평등법 등 차별금지법이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동성애를 부추긴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이미 당연히 제정되어야 할 평등법이 일부 반대에 의해 법안 심의는 물론 발의 조차 방해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평등법의 제정이 하루빨리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평등의 원칙은 우리 헌법상 근본 가치규범으로 곳곳에 있는 차별적 부분을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이 구현됨으로써 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평등권이 작동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평등법의 제정은 필수적이라 보고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말했다.

장 의원의 차별금지법도 비슷하다. 장 의원은 법안에서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다.

이 대표는 원래 차별금지법 논의에 긍정적인 의향을 비쳤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숙성된 논의가 있었다. 범위가 포괄적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면서 "다만 제도화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하나하나가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다. 개인의 고유한, 예를 들어 성적 자기 정체성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 차별금지법 논의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런데 불과 3일 만에 이 대표의 입장에 변화가 감지됐다. 이 대표는 17일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질문이 나오자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제가 미국에서 보면 동성애와 동성혼 같은 것도 상당히 구분돼서 다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혼재되고 있다"며 "아직 입법의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시기상조 발언이 논란이 되자 수습에 나섰지만 좀처럼 진화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이날 여영국 정의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의힘의 당론이 매번 확정되지 않았던 것은 논의 자체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며 "차별금지법에서 (논란이 된) 일부 조항을 빼는 것보다는 그 자체로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저의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이 대표에게 "'사회적 합의' 뒤에 숨지 말고 떳떳하게 정견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오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대표가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해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을 바꿨다"면서 "젊은 당 대표로서 변화한 시대정신을 대변할 것이라 믿었는데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라는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 대변인은 이어 "이 대표가 차별금지법 입법에 주저하며 밝힌 이유가 솔직히 더 실망스럽다. 한국사회는 2007년부터 줄기차게 차별금지법을 논의해왔으며 여러 차례 설문조사도 했다. 심지어 지난해 국가인권위 설문조사에는 국민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한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면서 "더 이상 어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가. 국민의힘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사회적 합의라는 공허한 말로 이래저래 회피하는 모습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역시 "2007년부터 시작된 차별금지법 논의,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라며 "지난 14년간의 차별금지법 논의 시간을 없던 것으로 돌리는 것은 확장된 국민의 평등 인식 역시 과거로 돌리자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오 대변인과 신 상임대표는 차별금지법 논의의 출발을 2007년 국회 법안 발의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2003년부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부터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차별금지법을 추진했고, 2006년에는 대국민공개 방식으로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차별금지법 인권위 안을 만들어 같은 해 7월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더욱이 인권위가 만든 2006년 법안에도 차별금지 사유에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을 명시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성적지향' 조항도 분명히 포함돼 있다. 오 대변인은 이와 관련 "18년이면 강산이 거의 2번 바뀔 만한 시간"이라며 "더 이상 얼마나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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