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백신 거부자’들을 설득하라

이위재 사회정책부 차장 입력 2021. 6. 18. 03:02 수정 2024. 1. 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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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률 높아지지만 여전히 백신 공포증 남아 있어
11월 집단면역 달성하려면 소통하고 설득하는 전략 필요

우리나라 코로나 백신 접종이 궤도에 올라서고 있다. 6월 1일 12%에 머물던 접종률(1차 기준)이 보름 만에 2배(전국민의 25%)를 넘었다. 접종자도 1400만명을 넘었다. 집단면역(3600만명·접종률 70%)을 달성하기 위한 3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17일 오후 대전 유성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접종을 마친 어르신에게 백신 접종 인증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유성구는 접종 배지는 접종자에 대한 격려와 예우 목적으로 제작됐으며 접종을 직접적으로 증빙하는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으나, 7월부터 야외활동 마스크 의무화 해제 시 간접 증빙용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신현종 기자

여전히 인터넷에는 백신을 둘러싼 별별 정보가 떠다닌다. “예방 효과가 없다” “살인 백신이다” “거대 제약 회사들이 인류를 상대로 임상시험하는 음모다”…. 물론 코로나 백신이 의학적으로 누구에게나 안전한지 장담할 순 없다. 개발 시간이 짧아서 충분한 실험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백신이 코로나 전쟁을 끝낼 유일한 해결사고, 백신을 맞는 게 이득이 더 크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훨씬 많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 개발 과정은 전 세계 과학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기탄 없이 협업한 희귀한 사례라고 한다. 그들을 믿는다.

임상 정보가 부족한 건 아쉽지만 지금 완벽한 백신을 하염없이 기다릴 시간이 없다. 지난해 이후 전 세계에서 384만명이 코로나로 숨졌고,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매일 1만명 이상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백신 접종이 빠르게 이뤄질수록 이런 피해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전 국민 중 62%가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영국은 하루 코로나 사망자가 2000명에 육박하다 0명까지 줄기도 했다. 백신 효과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 필자도 얼마 전 아스트라제네카 잔여 백신을 기꺼이 맞았다. 접종 부위가 약간 뻐근하긴 했지만 다른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백신 거부(vaccine hesitancy)’ 정서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가파르게 상승하던 미국 백신 접종률은 지난 15일 현재 53.2%. 6월 들어 1.9%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백신 접종을 꺼리는 사람들은 주로 야당(공화당) 지지자들이다. 우리도 비슷하다. 지역과 지지 정당에 따라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비율은 2배까지 차이가 났다. 지난 5월말 여론 조사에서 백신을 안 맞겠다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자가 33%나 됐다. 이미 접종한 사람을 제외하고 앞으로 맞아야 하는 사람들만 계산하면 대상자 10명 중 4명이 백신을 거부하고 있었다. 야당(국민의 힘) 지지자들은 더 심하다. ‘맞겠다’와 ‘맞기 싫다’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이런 ‘백신 거부자(Anti Vaxxers)’들을 설득하는 노력이다. 사람들은 좋다고 다 따르지 않는다. 분명한 이득이 있어도 잘 움직이지 않기도 한다.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과 어떻게 확산하고 전파시킬까는 다른 차원이란 얘기다. 이 화두를 40년간 연구한 에버렛 로저스 전 뉴멕시코대 교수는 개혁·혁신(innovation)을 확산(diffusion)시키는 데 중요한 건 소통(communication)이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는 ‘백신 거부자’들은 어찌 보면 소통에 둔감했던 정부 업보일지 모른다. 과학을 무시하고 신념으로 밀어붙인 에너지 정책, 결승선은 멀었는데 우승 소감부터 늘어놓은 K방역, 봉쇄와 해제를 오락가락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는 불친절. 소통에 실패한 흔적은 많다. 백신 불신 증세가 이런 불통(不通)의 후유증이라 해도 할 말 없을 것이다.

집단면역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더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도록 소통하고 설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때 미국에선 MMR(홍역·볼거리·풍진) 백신을 맞으면 아이들이 자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퍼졌다. 외국 유명 저널에 관련 논문이 실렸던 탓인데 나중에 허위로 판명났고 해당 저자는 의사 자격을 박탈당했는데도 불안해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이 ‘가짜 뉴스’를 사실인 양 언급하면서 혼란을 부추겼다. 그 결과 MMR 백신 접종을 아이들이 꺼리면서 난데없이 홍역이 창궐했다.

이를 극복한 건 과학보다 소통이었다. 보건 당국은 “아이가 건강하길 원하지 않느냐. 백신을 맞으면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면서 부모들 마음을 움직였다. 이런 세심한 노력이 중요하다. 신경심리학자인 탈리 샤롯 런던대 교수는 “뭔가 오해하고 있는 상대를 설득하려 할 때 틀렸다는 걸 입증하기보다 공통점을 거론하고 우회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효과적”이라고 충고한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부작용이 일어나면 정부가 다 책임지겠다고 안심시키고, 백신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위한 것이라고 호소해야 한다. 백신이 싫다고 안 맞다가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면 애먼 피해가 가족들에게 갈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백신 인센티브도 더 다양하게 확대해야 한다.

영국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과학의 공로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설득시킨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방역의 마지막은 정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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