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무료라더니.." 클라우드 유료화에 열받은 대학들

최인준 기자 입력 2021. 6. 18. 03:05 수정 2021. 6. 1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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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무료 저장' 광고 내세웠던 구글.. 가입 늘자 유료 전환

경희대에서는 최근 교수와 학생들이 학교 구글 계정에 저장된 수업 자료와 개인 이메일을 비우기 시작했다. 연구 데이터와 같은 중요한 자료는 다른 메일 계정을 만들어 옮기고 있다. 학교는 이달 초 졸업생·퇴직 직원을 포함한 구성원 8만3000여명에게 ‘구글 계정에 저장해둔 데이터를 최대한 비워달라’고 안내문을 보냈다.

경희대에서 갑자기 구글에 저장해둔 데이터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구글이 최근 국내 주요 대학들에 무료로 제공하던 무제한 메일 저장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구글은 올 들어 각 대학에 “내년 7월부터 각 대학별 기본 제공 저장 용량을 100테라바이트(1TB는 1024기가바이트)로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추가로 저장 용량을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들은 바뀐 구글의 정책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코로나 이후 비대면 수업 확산으로 수십~수백 기가바이트(GB)에 이르는 고용량의 수업 영상과 자료를 구글에 올렸던 대학들은 별도 서버를 확보해야 할 판이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구글이 사회 공헌 사업인 것처럼 무료 서비스로 대학들을 끌어들인 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유료화한다”고 비판했다. 구글이 순수 교육·연구 목적으로 저장 서비스를 사용하는 대학교를 상대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구글 저장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대학교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경희대·홍익대 등 5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A2면에 계속

구글은 지난 2019년 초부터 국내 대학들을 대상으로 이메일 저장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구글은 각 대학에 “무제한 메일함 용량과 구글 포토·구글 드라이브 등 클라우드(가상 서버)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홍보하며 가입을 유도했다. 서버 운영에 매년 수억~수십억 원을 써야 했던 많은 대학은 자체 운영 서버를 중단하고 구글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전까지 다른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던 대학 교수·학생들도 일제히 구글 서비스에 가입했고, 개인 이메일은 물론이고 연구·교육 데이터도 구글 서버에 올려 보관했다.

그래픽=양인성

◇서비스 2년 만에 유료화 내민 구글

하지만 구글이 2년 만에 무료 저장 정책을 뒤집으면서 대학들엔 비상이 걸렸다. 구글은 이달 초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에 ‘그동안 무제한으로 제공하던 스토리지(저장) 서비스를 내년 7월부터 기본 제공 용량을 100테라바이트로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대학이 기본 제공 용량 이상의 저장 공간을 사용하려면 앞으로 별도의 요금을 구글에 내야 한다.

대학들은 구글이 밝힌 기본 저장 용량인 100TB로는 현재 학교 구성원의 데이터를 제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는 지난 5월 기준 7만4000명(졸업생·퇴직 직원 포함)이 저장 용량 7000TB를 사용하고 있다. 구성원 1인당 100GB를 쓰고 있는데 새 정책이 적용되면 5GB로 줄게 된다. 고려대도 전 구성원의 사용 용량이 6400TB를 넘어 앞으로 저장 공간의 98% 이상을 비워야 한다. 경희대는 이대로 구글 정책이 시행될 경우 구글 계정을 갖고 있는 8만3443명 중 졸업생과 퇴직자 등 4만3000명가량이 계정을 없애야 한다.

학교 구성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학 교육을 위해 무료 서비스인 것처럼 홍보하다가 이제 와서 돈을 요구하느냐’는 비판이다. 특히 용량이 큰 과학 연구 데이터와 논문 등을 구글 클라우드에 보관해온 이공계 교수·학생들은 패닉 상태다. 경희대 이공계의 한 교수는 “국제 학회를 비롯한 모든 업무용 계정을 구글과 연동해놓은 상태”라며 “구글이 별도의 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수만 통에 이르는 메일을 개인 계정으로 일일이 전송하면서 옮기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인문계의 한 교수는 “학생들 요청에 한 학기 동안 구글에 올려둔 수업 영상만 100기가바이트가 넘는다”며 “앞으로 데이터가 더 많아질 텐데 이들을 어디로 옮길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수·학생 “수업 영상·메일 어디로 옮기나” 불만

현재 각 대학은 내부적으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서울 소재 사립대는 교수·학생에게 ‘개인 자료는 가급적 다른 서비스를 사용할 것’ ‘졸업생과 퇴직 교직원 계정 삭제’ 등의 조치를 공지했다. 일부 대학은 구글에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 사진·영상은 올리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처음 서비스 도입 당시 구글 측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장 정책 변경에 대해 구글에 항의하거나 별도 협상을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돈을 내고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려 해도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구글 저장 서비스를 이용한 대학들은 구글 메일과 학교 메일 간 연동에 필요한 비용으로 연간 수백만 원 정도를 구글에 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유료화 이후에는 이전처럼 자체 서버를 운영하거나 구글에 유료 결제를 하는 데 대학마다 연간 10억~15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우성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는 “구글의 유료화 전환을 시작으로 다른 글로벌 기업의 대학교 대상 IT 서비스까지 유료 전환이 될 우려가 있다”며 “구글 클라우드 유료 전환은 구글 서비스 이용률이 높은 미국 대학의 타격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주요 대학과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글 측은 “향후 각 대학에 연구·학업 외 개인 목적으로 올린 데이터를 탐지하는 기술을 제공하고, 구성원이 2만명이 넘는 대학에 대해서는 추가 용량 지급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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