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때의 파시즘, 코로나 속 '일상'에서 다시 보다 [김민정의 도쿄 책갈피]

김민정 | 재일 작가 2021. 6. 1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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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떻게 국민을 전쟁에 동원했나

[경향신문]

<생활의 파시즘-전쟁은 ‘새로운 생활양식’의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오쓰카 에이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어떻게 국민들을 전쟁에 동원했는가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 1940년 고노에 후미마루 정권은 ‘신생활체제’ 확립을 주장하며, 국민들의 내면 개조를 다짐하고, 강한 어조로 남성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반면, 부드러운 어조로 여성들을 내조자로 세뇌시킨다.

소유에 의미를 두지 않는 ‘단샤리’의 개념, 즉 미니멀리즘은 현대적 트렌드처럼 보이지만 사실 과거 전쟁 시 더 강조된 개념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물자부족을 정부는 ‘절약정신’으로 메꾸려 했고, 잡지·신문들은 외출복 약 3벌, 평상복 2벌 정도가 있으면 충분하고 남색·흰색 등 심플한 색상을 입도록 장려했다. 절약의 고달픔을 아름답고 멋스럽게 포장하는 일이 유능한 편집자의 조건이었다. 종합여성지, 생활여성지의 이름난 편집자들은 여성들에게 ‘노력’을 강조하며, 과학적·합리적 방식으로 집안일을 해결하는 것이 현명한 신여성이고 인텔리라고 추켜세운다. ‘원하지 않겠습니다, 이기기까지는’ 등의 전쟁 표어를 배출해낸다.

반상회를 결성하고 육아 품앗이 조직을 만들고 운동회에서 남학생들에게 질서 정연한 피라미드 쌓기, 여학생들에게 포크댄스를 추게 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인간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후방의 국민들까지 전쟁을 지지하게 되고 일본은 전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패전이 코앞에 보이지만 ‘노!’를 외칠 명분은 자취를 감춘다.

책 표지는 방독면을 쓴 여학생들이 행진하는 기묘한 사진이다. 방독면이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는 일본이 화학무기 제조를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방공훈련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자, 정부는 화학전에 대비해야 한다며 공포심을 유발해 국민들이 훈련에 적극 참여하도록 교묘하게 이끈다. 조용하고 자발적인 동원은 문학계에서도 이뤄진다.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는 아리아케 시즈라는 여학생의 일기를 단편소설 ‘여학생’으로 집필하면서 그녀의 정치적 사상은 모조리 탈락시키고, 감성적 부분들만 실었다.

저자 오쓰카 에이지는 만화 원작자이자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로도 활발히 활약 중이다. 그는 파시즘이 ‘일상’이란 단어로 다가왔다고 지적하며,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일본을 우려한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건 목숨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목숨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 행위를 정부가 이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고이케 도쿄도지사가 ‘단샤리’ 동영상을 올리고 정부가 의료진을 위해 공중 비행기쇼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과거 전쟁 당시 일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역설한다. 그의 마음은 불안하다. 전쟁을 한번 일으켰던 나라의 국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절제를 요구 중이며, 이런 절제가 전쟁 당시와 거의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불안의 출발점이다. 그처럼 불안을 느끼는 이들은 일본 국내에도 또 한국에도, 한편 전 세계적으로도 적지 않을 것이다. 통제가 복종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에.

김민정 | 재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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