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건 운명이야..무대 위에선 도망갈 수 없거든요

한겨레 입력 2021. 6. 19. 11:26 수정 2021. 8. 3. 17: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이충걸의 인터+뷰][토요판] 이충걸의 인터+뷰
연극배우 박정자
한국 연극사에 '대체 불가 지배력'
최근 '해롤드와 모드' 마지막 공연
나는 누구이고 사랑은 무엇인지 전해
"80까지 해야 할 숙제 마친 듯 홀가분"
연극인 박정자가 1일 오후 서울 충무로 한 레스토랑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23일, 생애 일곱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연극 <해롤드와 모드>를 공연했다. “이 작품을 계속 무대에 올릴 거야. 그리고 여든에 그만둘 거야”라고 했던 약속을 지켰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03년, <19 그리고 80>을 준비하던 박정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에 나는 아무런 꿈이 없었어. 되고 싶은 것도 없었어. 그런데 <19 그리고 80>을 연습하면서 꿈이 생겼어.”

그리고 약속했다.

“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릴 거야. 그리고 여든살에 그만둘 거야.”

그 말은 ‘운명적인’이라는 말을 감상성 없이 꺼낼 만한 침투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박정자는 예순두살이었고, 그의 여든살은 우주 밖의 막막한 미래로 느껴졌다. 그리고 2021년 5월23일, 상상마당 대치 아트홀에서 원제대로 공연했던 일곱번째 <해롤드와 모드>는 18년 전의 약속대로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이 연극은 가족과 학교로부터 도외시되어 비뚤어진, 그러나 마음속에 ‘성장’이 꿈틀거리는 19살 소년 해롤드가 세속의 관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80살 모드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 성장기를 담았다. 이번 공연 연출은 윤석화가 맡음으로써 오래전 서로 약속했던 그대로,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대미를 완성했다. ‘마지막’이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은 박정자가 은퇴한다고 더러 오해하였으나.)

여전히 대사 못 외우는 악몽을 꿔요
아니 왜 지금까지 이런 꿈을 꿔야 해?
막 오르면 그냥 나가자, 그거밖에 없어
무대에선 뒷걸음질 칠 수가 없으니까요

오늘 이 시간을 위해 준비했는데

그로부터 9일 뒤의 인터뷰는 황금의 순간을 떠나보낸 배우의 허심탄회한 포즈라고 믿었다. 여든살 배우의 늙지 않는 생각을 마중 나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토네이도처럼 으르렁거리며 나타났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호텔을 택시가, 그것도 모범택시가 제대로 못 찾고 헤매는 통에 한참 떨어진 데서 내렸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이 시간을 위해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그렇게 오래 준비했는데, 미장원에도 가고 메이크업 다 하고 오느라 몇 시간이나 걸렸는데, 택시 기사는 길도 못 찾고…. 그런 거 하나 제대로 못 맞춰준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기예요?”

한국 연극에 대체 불가의 지배력을 가진 여배우는 한순간 생활의 순진한 분노를 내뿜는 소녀가 되었다. 그때부터 우주는 그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긴 블랙 카디건에 검은 이너 톱, 까만 롱스커트와 굽 없는 검정 운동화를 신은 섹시한 장교 같은 소녀를, 쇼트커트로 자른 머리가 철사처럼 곧추선 여자애를.

구소련의 레스토랑처럼 넓은 홀에 둥근 테이블이 연잎처럼 배치된 충무로 경양식 집에서 그는 들리는 줄도 몰랐던 음악이 조금 크다고 말했다. 잠시 후 음률이 소거된 룸은 성냥 떨어지는 음향도 들릴 만큼 적막한 공간으로 변했다. 이제 남은 공간을 악령이 입안에서 꿈틀대는 것 같은 목소리가 채울 것이다.

“오늘 메이크업할 때 내 주문은 이거 하나였어요. ‘결혼식날 신부 어머니처럼은 하지 마.’ 그랬더니 ‘사모님, 피부가 너무 좋으세요’ 그러는 거예요. 사모님? 내 나이도, 내가 연극배운지 뭔지도 모르고!”

노화의 단계에서 그 나이 그룹으로부터 빠져나온 피부는 모공이 없어서 어떻게 숨을 쉴까, 걱정될 만큼 치밀하고 광택이 돌았다.

“사실 시간이 있으면 내가 하려고 했거든요. 화장은 잘 못하지만, 배우 같은 메이크업을 좋아해요. 조금 과장되게, 눈은 진하게. 오늘 머리는 작년에 <노래처럼 말해줘>를 할 때처럼 은발이면 좋겠지만. 두달 전에도 이렇게 짧게 잘랐는데 기념으로 다시 잘랐어요. 가벼우니까. 머리칼 자르는 것도 가벼워지는 방법이니까. 그러면서 어저께 또 하나 옷을 샀어요. 셔츠하고 바지. 그리고 운동화. 그러면서 웃었어요. 이병복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여자는 쇼핑에 관심이 없으면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고. 나는 운동화를 더 넣을 신발장도 없고, 구두가 3천 켤레나 되는 이멜다 마르코스도 아닌데.”

커피는 분노한 마녀의 시퀀스를 서서히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80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80까지 공연할 거야. 80 되기를 기다렸어’ 그렇게 떠벌였던 게 조금 부끄러워요. 그래도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2020년 2월에 (박정자 개인의 자전적 모노드라마) <노래처럼 말해줘>를, 2021년 5월에 <해롤드와 모드>를 끝낸 것이 평생 나에게 제일 신통한 시간이 아니었나. 80까지 해야 할 숙제를 다 마쳤다, 그것도 12월이 아닌 5월에. 그런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건 의례적인 암시가 아닌 진짜 해방감 같았다. 그러나 다른 트릭이 기다리고 있었다.

“엊그제 너무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요. 공연이 끝나서 여럿이 여행 갔는데, 무슨 역사 같은 데일까. 사람은 하나도 없고 넝마 조각이 먼지처럼 풀풀 날리는데, 허접한 가방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요. 거기에 내가 버려져 있더라고. 꿈속에서도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해?’ 너무 괴로웠어요. ‘내가 더 바라는 게 있었나? 내려놓지 못한 뭔가가 있을까?’ 난 그렇게밖에 달리 해석할 수가 없어요.”

박정자의 일곱번째 모드는 풍부한 동작의 범주를 정교하게 다듬고 극적으로 파고들 때조차 수증기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모드의 자극과 박정자의 자아가 충돌하며 객석에 결박된 관객에게 나는 누구이고 사랑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아니, 변하도록 허락한다. 여든살 생일에 약을 먹은 모드가 샴페인 잔을 떨어뜨리는 마지막 신에는 오페라 같은 에네르기가 휘몰아친다. 배우가 신체에 어떤 확신이 있으면 제한된 동선만으로 그렇게 무대를 채울까.

어떤 사람들은 박정자와 모드를 동일시한다. 배우의 삶이 무서운 건 타인의 환상에 갇히고 다시 그 환상이 되는 것. 그는 물잔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모드는 나보다 훨씬 지혜롭고, 더 사랑스럽고, 보다 인간적이에요. 제일 부러운 건 여든살 생일에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거. 나는 그럴 용기가 없으니까. 모드는 그야말로 나의 첫번째 롤모델이에요. 근데 오늘 내가 여기 인터뷰하러 오면서 모범택시 때문에 버럭버럭 열받고 그럴 때, 모드는 어땠을까 생각해요. 결국 모드는 여전히 작품 속의 인물이더라고.”

그런데 박정자는 언제나 무대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큰 복을 신이 나한테 주실까? 물론 무대 위에서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었던 적은 몇번 있어요. 그때 든 생각은, 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대는 예배당이며, 무대에서 죽을 거라는 고전적인 레토릭은 그 자신이 만든 외적 인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발랄한 찬송가만 부른 것도 아니고. 처형의 계단을 올라 맞는 결말은 진심으로 박정자식 연극에 부합할 것이다. 심지어 하나의 승리로 보인다.

“돌아보면 ‘80까지 공연할 거야. 80 되기를 기다렸어’ 그렇게 떠벌였던 게 조금 부끄러워요. 그래도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2020년 2월에 (박정자 개인의 자전적 모노드라마) <노래처럼 말해줘>를, 2021년 5월에 <해롤드와 모드>를 끝낸 것이 평생 나에게 제일 신통한 시간이 아니었나.”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무대에서 나는 평범을 거부하는 사람
극장 공간에서 맨손으로 못을 주워요
무대에 대한 나의 경외심 같은 거야

여자 이름에 ‘바를 정’자, 거의 없죠

1942년생. 일제강점기에 ‘마사코’라 불리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름. 그가 네살 때 세상을 뜬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이름 가운데 글자를 바를 정(正)으로 지었을까. 고요할 정(靜)이나 빼어날 정(挺)도 있건만.

“여자 이름에 ‘바를 정’ 자를 넣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그러나 나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평생 그 ‘바를 정’ 자가 나를 붙들어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1962년,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부의 <페드라>에서 대사 16마디 하녀 역으로 출발한 이래 시작점부터 곧바로 연속적인 상태로 돌입했다. 그리고 극적인 힘과 상상력으로 휘몰아치는 60년 내내 ‘연극은 박정자’라는 등호를 만들었다. 무대 위를 조수처럼 쓸려갔다가 밀려오는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두가지만 빼고.

첫번째는 되풀이되는 악몽이었다.

“<해롤드와 모드> 마지막 연습 때 또 그 꿈을 꾸었어요. 관객들은 이미 극장 안에 들어와 웅성거리고, 당장 무대에 나가야 하는데 의상도 없고, 대사는 외우지도 못했어요. 조연출이 급히 준 대본은 플라스틱이었는데 글자가 빛에 반사돼 다이얼로그를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아니, 죽음보다 못하지. 아침에 깨서 너무 약이 올랐어요. 신한테 약이 오른 걸까? 내가 도대체 왜 지금까지 이런 꿈을 꿔야 해?”

두번째는 덜어지지 않는 무대 공포증이었다.

“라이브라는 건 참 잔인한 거예요. <노래처럼 말해줘>를 할 땐 무대 위에 혼자 내던져졌어요. 무대 스크린 뒤에서 대기하면서 물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컵에 뱉기도 하고, 사탕을 물기도 하고, 별별 거를 다 해도 공연 30분 전이면 영락없이 목이 말라요. 입에 침이 하나도 돌지를 않아. 등장하자마자 노래해야 하는데 시계를 딱 보면 30분 전. 생체리듬이 머리보다 먼저 긴장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막이 오르면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나가자, 그거밖에 없어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도 않아요. 그냥 아, 이건 운명이야. 무대에선 뒷걸음질 칠 수 없고, 도망갈 데도 없어. 그 이후로는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다른 에너지가 나를 운반하고 책임져주는 거예요.”

그 말은 모르는 장소에서 처음 느끼는 날씨처럼 생경하게 들렸다. 연극이 영화 같은 복제 예술이 아니라곤 해도 정말? 그 관록에 아직도 그렇다고? 그러나 부처라도 정작 무대에 오르면 고요를 잃고 비틀거릴 것이다.

“연극을 시작할 때는 무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나는 출발했을 때 그렸던 것보다 너무 큰 배우가 된 거예요.” 사진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상식적인 역할은 싫어요

조금 뒤 우리는 촬영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건물 외벽 앞에서 그는 골격이 용수철로 연결된 듯, 몸에 축이 심어진 듯 똑바른 자세로 섰다. 돌진하는 렌즈에 반응하는 연극배우의 포즈. 언제나 놀라게 하던 비상식적인 몰입. 그리고 금기를 깨뜨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은 옆얼굴.

“나는 상식적인 역할이 싫어요. 나를 상식적인 배우로 분류하는 건 더더군다나 싫고. 무대에서 똑같은 박정자의 모습은 관객도 싫어할 거예요. <햄릿>에서도, <신곡>에서도, <에쿠우스>에서도 그랬듯이 늘 낯선 배역을 만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에요.”

기질을 드러내는 룩은 새카만 양갱처럼 윤이 났다. 박정자 표 연극은 그렇게 샐러드를 일회용 접시와 잘 빚은 접시에 담아 먹는 것의 차이를 알게 해주었다. 그 자신의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사상을 투사하면서.

그런데 29년 전, 박정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누가 나의 인터뷰를 쓴다면 ‘그녀는 평범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어”라고.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렇게 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미인이 되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그러나 오늘처럼 사진 찍힐 때 덧칠하고 치장하는 시간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변하는 걸 좋아해요. 무대에서 나는 평범을 거부해요. 관객들은 평범한 사람을 보러 극장까지 갈 이유가 없죠. 그러나 평상시에 무대 밖에선 하염없이 평범한 사람. 내 말이 틀렸나요?”

무대의 비범과 일상의 평범이 만드는 대비. 연극은 정중앙에, 개인적 삶은 위성에 속한 세계. 자기가 생활의 아마추어이며 문명화된 삶의 기본 법칙에서 면제되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난센스 훈장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나이 여든이라는 생물학적 진실을 들추고, 육체적 불리함(최소한 몇몇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는)을 꺼내든 채 엄청난 대사 분량에 혀를 내두른다.

“단순해요. 텍스트를 외울 수 있는 능력은 신이 준 것 같지만 수학 공식이나 역사책 외우듯 반복 훈련일 뿐이에요. 일상에선 돌아서면 방금 전에 본 사람 이름도 금방 잊어버리지만. 밤에 누워서 대본을 떠올려봐요. 그러면 내가 어디에 쉼표를 그리고 어디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었는지, 대사는 어떻게 바꾸었는지 다 스캔이 돼요. 그건 나 자신한테도 놀라는 점이에요. 나는 머리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니까. 그런데 배우는 머리가 안 좋아야 돼요. 그래야 배역이 끼어들 여지가 있죠. 배우한테 천재를 요구하면 안 돼요. 정형화되니까. 배우에겐 폴리스 라인을 넘나드는 여유가 필요해요. 그러나 완벽한 연기란 없어요. 찰리 채플린마저도. 관객들은 완전한 걸 원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느 찰나에 무대에서 슬쩍 내가 나를 볼 때가 있단 말이죠. 박정자가 연기하는 박정자를 보는 그때 ‘아, 이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반하는 순간. 그건 대단한 전율이죠.”

나르시시즘은 예술가의 특권. 스스로를 도취시키지 못하는데 누구를 황홀하게 만들 것인가.

그는 티슈에 커피를 조금 쏟고는 조개 같은 손톱으로 얼룩을 건드렸다. 잎맥 같은 핏줄이 비치는 손, 옥양목처럼 흰 손, 무대에서 대사보다 많은 말을 하던 손은 이야기의 틈새마다 허공에 금을 그으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냈다.

“나는 내 몸 중에서 손을 제일 좋아해요. 손은 배우인 나와 개인인 나, 둘 다에게 가장 중요해요. 나는 동작 하나, 혹은 목소리, 아니면 찰나적인 호흡, 또는 스텝의 문제보다 손가락 하나의 문제에 가장 큰 예민함이 있어요.”

정말이지 들리는 건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이지만, 이야기를 하는 건 그의 손이었다.

점심시간이 진작에 지났다. 손님도 주인도 자리를 뜨고, 터미널 같은 낮의 레스토랑엔 우리만 남았다. 잠깐 이완된 순간, 조명 위치에 따라 문득 그 뺨이 파여 보이고, 그는 신마다 머릿속에 담고 싶은 초보 조감독처럼 차분한 얼굴이 되었다. 어떤 것일까? 지금 단계의 인생에서 적절한 것은 무엇일까? 여전히 티켓 파워의 맹위를 떨치는 여든살의 현역에겐 어떤 아흔살의 절정이 기다릴까?

“글쎄요. 그러나 아흔까지는 안 살았으면.” 그는 포르르, 새소리를 내며 웃었다. “물론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릴 테지만,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을 테고…. 이제 남은 시간은 덤일 것 같아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1년 장기 공연할 땐 더 이상 끌어올리고 길어 올릴 게 없었어요. 아무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극장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고, 꽃구경, 단풍 구경은 아예 사치였어요. 분장실에 들어가면 다시 오고 싶지 않았어요.”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카리스마란 말 굉장히 좋아하는 편
누구도 나를 허투루 대하지 않으니
늘 후회하는 순간 있어…비밀이에요

출발 때 그린 것보다 너무 크게 된 배우

그는 고양이처럼 ‘지금’을 살았다. 한장씩 뜯어 백에 넣고 다니던 캘린더엔 하루도 빈칸이 없었다. 그렇게 접시 스무개를 한번에 돌리는 광대처럼 접시가 느려질 때마다 연신 돌렸다. 그러니까 그 말은 선택지가 다 떨어진 이의 푸념이 아니었다. 이미 페달을 밟기 시작했으니까. 그는 8월 말, 막이 오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다시금 빌리의 할머니가 되어 6월 말부터 연습한다고 말했다.

“3년 전에 빌리 할머니를 했을 때보다 무대에서 더 놀고 싶어요.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은 없어졌어요. 이것이 내가 바라던 걸까? <포레스트 검프> 마지막에 깃털이 벤치로 훅 하고 날아가는 순간처럼? 이번 <빌리 엘리어트>는 거의 스태프 200명이 왔다 갔다 해요. 무대에 나오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게, 내가 거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소름 끼치게 아름다워요. 나는 극장 공간에 너무 감사해요. 옛날에 셋업이 끝난 다음에 보면 무대 여기저기에 못이 막 떨어져 있었어요. 그걸 정리할 인력이 없는 거죠. 그때 나는 말없이 맨손으로 못을 주워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에요. 무대에 대한 나의 경외심 같은 거예요. 분장실에서 무대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갈 때, 어느 날 먼지가 싹 날리면 사람들 몰래 뭉쳐진 먼지를 주워요. 그 먼지조차 고마운 거예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수공업적인 연극의 이데올로기 같았다. 연극은 물음표가 붙은 땅. 시공 너머로 가기엔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미래. 영광스러운 가난의 코드.

“연극을 시작할 때는 무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나는 출발했을 때 그렸던 것보다 너무 큰 배우가 된 거예요. 명동예술극장 시절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할 땐 관객이 없어서 무대 위에서 두 다리 뻗고 엉엉 운 적도 있었는데, 아주 조그마한 그림을 그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화폭에 그려진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요.”

그는 연극의 내부를 밖으로 비추는 스크린 같은 존재. 사회는 질문할 것이다. 당신은 연극에 어떤 책무가 있냐고. 답은 단호한 오버랩으로 튀어 올랐다.

“없어요. 한때는 그게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다 헛것 같아요. 세상은 다 그림자일 뿐이에요. 실체가 뭘까요? 진실이 뭐예요? 어떤 사실, 어떤 사람도 영원히 미스터리예요.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오늘까지가 내가 살아온 시간이에요. 살아보지 않았고 느껴보지 못했고 미처 알지 못했던 모든 것은 다 미스터리예요. 누가 코로나를 예견했겠어요? 누가 화성에 갈 생각을 해봤겠어요? 코미디는 동전의 앞뒤처럼 비극과 맞닿아 있어요. 그런데 나는 비극적인 것보다 코미디가 더 맞아요. 온전치 못하니까.”

“배우에겐 폴리스 라인을 넘나드는 여유가 필요해요. 그러나 완벽한 연기란 없어요. 찰리 채플린마저도. 관객들은 완전한 걸 원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느 찰나에 무대에서 슬쩍 내가 나를 볼 때가 있단 말이죠. 박정자가 연기하는 박정자를 보는 그때 ‘아, 이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반하는 순간. 그건 대단한 전율이죠.”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나는 내 몸 중에서 손을 제일 좋아해요. 손은 배우인 나와 개인인 나, 둘 다에게 가장 중요해요. 나는 동작 하나, 혹은 목소리, 아니면 찰나적인 호흡, 또는 스텝의 문제보다 손가락 하나의 문제에 가장 큰 예민함이 있어요.”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세상은 다 그림자일 뿐이에요. 실체가 뭘까요? 진실이 뭐예요? 어떤 사실, 어떤 사람도 영원히 미스터리예요.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오늘까지가 내가 살아온 시간이에요. 살아보지 않았고 느껴보지 못했고 미처 알지 못했던 모든 것은 다 미스터리예요.”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오늘처럼 사진 찍힐 때 덧칠하고 치장하는 시간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변하는 걸 좋아해요. 무대에서 나는 평범을 거부해요. 관객들은 평범한 사람을 보러 극장까지 갈 이유가 없죠. 그러나 평상시에 무대 밖에선 하염없이 평범한 사람. 내 말이 틀렸나요?”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나는 무서운 사람, 없어요

박정자의 코미디는 다른 희극과 구별되는 동시에 비극 몇개를 아우른다. 이렇게 자기가 불행하다고 말할 때처럼.

“이건 나의 불행 맞아요. 나는 지금까지 상대역을 맡은 남자 배우 중 어느 누구도 너무 좋았어, 어떤 작품이든 꼭 같이 연기하고 싶어, 그런 경우는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만화책에서나 보이는 말풍선이 머리 위에서 둥둥 떠다녔다. 에고가 너무 맹렬하고 노골적이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러나 무엇도 감퇴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모서리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빛이 부족한 얼굴로 산울림소극장 분장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1년 장기 공연할 땐 더 이상 끌어올리고 길어 올릴 게 없었어요. 아무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극장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고, 꽃구경, 단풍 구경은 아예 사치였어요. 분장실에 들어가면 다시 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쇠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 분장실은 <위기의 여자> <웬일이세요, 당신> <테레사의 꿈> <백양섬의 욕망>…. 나를 배우로 우뚝 서게 했던 공간이었어요. 지금도 그 지하실이, 너무너무 남루한 지하 감방이 그리워요. 거기서 만났던 관객들과의 접촉이 잊히지 않아요.”

분장실. 연극의 구유. 벌들이 붕붕거리는 숲속. 시간이 멈춘 마을의 연못. 그의 진술에 퍼지는 오래되었으나 힘 있는 파장이 듣는 사람의 배를 통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을 때도 공간을 요동치게 만드는 박정자의 카리스마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카리스마란 결국 자신을 과녁으로 만들어 스스로에게 자상을 입힐 것이다. “나는 카리스마란 말을 굉장히 좋아해요. 내가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그걸 더 취하려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누구도 나를 허투루 대하지 않으니까.” 곧 배후에서 들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나는 무서운 사람, 없어요.”

거리에 유월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 그는 차갑게 말했다.

“나는 늘 후회하는 순간들이 몇가지 있어요.”

“이를테면 어떤 것들인가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이 한번의 숨 안에서 펼쳐지는 장면 같았다. 박정자의 여든살은 재래적 사회에서 해방된 사상의 파시즘. 그는 비밀 하나를 남기고 택시를 탔다. 그리고 내내 말하듯 미스터리인 세상 속으로 뽀얗게 멀어졌다.

녹취 조아라

▶ 이충걸 작가.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에디터를 거쳐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지큐 코리아> 편집장을 맡았다.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와 18년 동안 써온 ‘에디터스 레터’를 모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등을 썼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