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 숨쉬던 '1920년대 파리'로 돌아간다면? [김셰프의 씨네퀴진]

최현태 2021. 6. 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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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헤밍웨이·피카소 등
당대 예술가 등과 조우
초록색 독주 '압생트'
예술가들의 술로 통해
그 시대로 시간여행 한다면
프랑스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만나고 싶어
그의 생선요리 만들어본다
예술가의 술 압생트. 그 술과 함께했던 예술가들.
1920년대의 프랑스 파리는 예술가들이 모이는 거대한 사교장이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그 예술가들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아간 요리사와
요리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어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한장면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 나잇 인 파리’는 주인공 길 펜더 역을 맡은 오언 윌슨이 과거로 가 1920년의 연인 아드리아나를 연기한 마리옹 코티야르를 만나는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한 영화다. 마치 눈을 감으면 파리의 밤거리가 생각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 내내 나오는 잔잔한 음악들이 파리 거리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비 내리는 파리를 좋아하고 새로운 거리를 걸으며 그 풍경들을 눈에 담는 걸 좋아하는 작가 길은 프랑스 파리에서 낭만을 찾지만 그의 약혼녀 이네즈는 결혼과 현실을 바라보며 서로의 이상이 맞지 않음을 천천히 확인하게 된다. 작은 의견 대립 후 파리의 어두운 밤길 속 빛을 찾아 호기롭게 혼자 거리를 나서지만 이내 방황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주인공 길. 그의 곁으로 멋진 차 한대가 멈춰 서고 그는 이내 1920년의 파리로의 시간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미국인 길이 1920년 파리에서 처음 듣는 음악은 같은 미국인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유 두 섬싱 투 미(you do something to me)’이다. 그 음악을 들으며 길은 지금이 설마 1920년대의 파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는 오언 윌슨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주인공으로서 길의 성격을 잘 표현하는 듯한데 그렇게 그는 그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작가인 길에게 가장 인상 깊은 만남은 지금도 현존하는 100년이 넘은 ‘폴리도르’ 레스토랑에서 만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헤밍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길은 헤밍웨이를 통해 소개받은 비평가인 거트 루트 스타인을 만나 자신의 작품을 검수받기도 하고 피카소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를 만난 그는 이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매일 1920년의 파리로 가는 차를 얻어 탄다.

하지만 영화는 둘의 행복한 결말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1920년대의 낭만과 아드리아나를 그리워한 길과 1890년의 벨에포크 파리를 그리워하는 아드리아나의 갈등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과거의 대한 미지의 동경과 그리움의 욕망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
#헤밍웨이의 독주 압생트

점차 아드리아나의 매력에 빠져드는 길. 하지만 아드리아나는 헤밍웨이와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길은 먹먹한 마음을 가진 채 파리의 강변을 혼자 걷는데 강의 색채가 유독 초록색을 띤다. 헤밍웨이가 애주했다던 독주 ‘압생트’가 떠오르는데 헤밍웨이에 대한 작은 질투를 표현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초록 요정의 술, 예술가의 술, 악마의 술이라고 불렸던 압생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예술가들을 죽음으로도 몰았던 독주였다고 한다. 압생트에는 튜존이라는 독특한 향을 가진 테르펜 성분이 있었는데 환각작용과 더불어 뇌세포를 파괴하는 그야말로 독주 중의 독주였다. 빈센트 반 고흐가 이 독주 때문에 귀를 잘랐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니깐 말이다. 한때는 이 압생트가 판매 금지가 되었지만 지금은 성분을 재조합해 다시 팔고 있다.

압생트에 대해 당시 예술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껴지는 그림이 있는데 바로 1875년 에드가 드가의 ‘압생트 한잔’이다. 그림 속 은은한 초록빛의 술로 가득 찬 잔과 그 허망한 표정을 지은 초점 잃은 얼굴을 한 여인은 압생트의 위험성을 표현하는 듯하다.

#1920년의 파리의 요리사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제일 좋았던 건 무심하게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잔잔한 음악과 종종 등장하는 오래된 레스토랑 들이었다. 음악과 함께 영화를 마주하며 주인공과 1920년대의 예술가들이 찾아가는 식당과 술을 유심히 보며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요리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이 시대의 요리사인 나에게, 1920년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 어떤 음식이 나올까 너무나도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그 점이 내게는 너무 아쉽게 다가왔다. 만약 내가 길처럼 1920년대의 파리를 갈 수 있다면 난 누구를 만날 수 있고 누구를 알아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1920년은 현대의 서양 음식의 체계를 정리한 요리의 제왕 조르주 오귀스트 에스코피에가 프랑스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해이기 때문이다.

내가 1920년의 파리로 간다면 난 거침없이 에스코피에를 찾아갈 것 같다. 그 시대는 예술가들의 활동이 왕성한 만큼 요리 또한 나날이 발전하며 요리와 더불어 요리사의 직위와 위치가 올라가는 시대였는데 에스코피에가 정리하고 개발한 요리는 정말 끝도 없다. 우리가 한국에서 배우는 양식 조리 기능사 같은 기초 조리는 대부분이 에스코피에의 레시피와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요리를 20년 가깝게 해오다 보니 오히려 요즘은 클래식한 요리들이 더 끌리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번역된 원서를 보며 레시피라기보다는 에세이 같은 책의 내용에 한번 더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은 1920년의 그의 생선 요리를 만들어 본다.

오스테리아 주연 김동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에스코피에식 가자미 뫼니에르

<재료>

손질한 가자미 1마리, 우유 100mL, 밀가루 30g, 버터 2큰술, 소금과 백후추 조금, 레몬즙 15mL, 파슬리

<만들기>

① 가자미는 손질 후 우유에 담가 비린 맛을 빼준다. ② 가자미를 건져 우유 수분을 제거하고 소금간을 해준다. ③ 밀가루를 골고루 묻히고 버터를 두른 팬에 노릇하게 익혀준다. ④ 가자미는 접시에 옮겨 담고 팬에 남아있는 버터에 레몬즙과 다진 파슬리, 백후추를 넣어 살짝 끓여 소스를 만들어 준 후 가자미에 끼얹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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