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소파 방정환의 빙수예찬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입력 2021. 6. 20. 06:01 수정 2023. 9. 1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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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딸기빙수 즐겨...’날달걀 깨트려 먹으라’ 제안도
소파 방정환은 빙수를 사랑한 애호가였다. 그는 빙수의 맛을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같은 맛'에 비유할 만큼, 생생한 필치를 선보였다.

‘방정환씨는 빙수를 어찌 좋아하는지 여름에 빙수점에서 파는 빙수 같은 것은 보통 대여섯그릇은 범 본 사람이 창구녕감추듯 하고...’ 월간지 ‘별건곤’(1931년4월호)에 난 기사다.

소파 방정환(1899~1931)은 소문난 빙수광이었다. 잡지 ‘어린이’를 내던 개벽사에서 함께 낸 월간지 ‘별건곤’에 ‘빙수’라는 제목으로 두차례나 글을 남겼을 정도다.

‘사알ㅡ사알 갈아서 참말로 눈같이 간 고운 얼음을 사뿐 떠서 혓바닥위에 가져다놓기만 하면 씹을 것도 없이 깨물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혀도 움직일 새 없이 스르르 녹아버리면서 달콤한 향긋한 찬 기운데 혀끝이 환ㅡ해지고 입속이 환ㅡ해지고 머리속이 환ㅡ해지면서 가슴속 뱃속 등덜미까지 찬기운이 돈다.’(1928년 7월호)

파리바케트가 최근 내놓았던 딸기빙수. 소파 방정환은 눈처럼 곱게 간 얼음에 빨간 딸기물이 흐르는 딸기빙수를 사랑했다.

수다스럽게까지 보이는 소파의 빙수예찬이다. ‘빙수는 혀끝에 놓고 녹이거나, 빙수물에 혀끝을 담그고 시원한 맛에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기뻐하는 유치원 아기들같이 어리광피우며 먹어야 참맛을 아는 것이다’라는 묘사에서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소파의 성정이 느껴진다. 소파는 이글에서 ‘한 그릇먹고는 반드시 또 한 그릇을 계속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면서 ‘몇 그릇이든지 자꾸 이어 먹을것같다’고 아쉬워한다.

궁중·고관만 즐기던 얼음

‘여름에 얼음을 먹는다는 것은 지금 와서 퍽 평범한 이야기지오만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우리 인류가 여러 천년 동안 여러 가지의 격난을 걲어온 것이랍니다.’ 빙수가 유행하던 1930년대엔 ‘빙수의 내력’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1936년7월10일 ‘빙수의 내력을 들어보소!’)

조선에서도 서빙고가 있었지만, ‘한껏해야 궁중 즉 대궐안에서나 자시었고, 좀 더 내려와야 높은 벼슬아치들이나 자시었지 지금처럼 누구나 먹게 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이 기사는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리를 구분하고 있다. ‘아이스크리’는 마구 만들어 싸게 파는 것(아이스케키?)이고 ‘아이스크림’은 고급 양식점에서 모양있게 만든 것이란다.

빙수의 내력을 소개한 조선일보 1936년7월10일자 기사. 시원한 빙수 사진과 함께 실렸다.

'빙수黨' 방정환, 딸기빙수즐겨

소파는 ‘딸기빙수’파였다. ‘빙수에는 바나나물이나 오렌지물을 쳐먹는 이가 있지만은 얼음맛을 정말 고맙게 해주는 것은 새빨간 딸기물’ (별건곤 1929년 8월호)이라고 썼다.

‘눈이 부시게 하얀 얼음 위에 유리같이 맑게 붉은 딸기 물이 국물을 지을 것처럼 젖어있는 놈을 어느때까지던지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시원할 것같은데 그 새빨간데를 한술 떠서 혀 위에 살짝 올려놓아보라. 달콤한 찬 전기가 혀끝을 통하야 금시에 등덜미로 또르르르 달음질해 퍼져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분명히 알 것이다.’

소파가 온 몸으로 빙수의 맛을 느끼며 쓴 ‘딸기 빙수’ 리뷰다. ‘써억써억 소리를 내면서 눈발 같은 얼음이 흩어져나리는 것을 보기만 하여도 이마의 땀쯤은 사라진다.’

빙수에 날달걀 깨어서 먹어라

소파는 광충교 옆 환대(丸大)상점을 경성 제일의 빙수집으로 추천한다. ‘얼음을 곱게 갈고 딸기물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이 집이 제일이다.’ 빙수가게에서 ‘밥풀과자’같은 군것질을 곁들이는 건 ‘얼음맛’을 모르는 소학생이거나 시골서 처음 온 학생으로 간주했다.

얼음만 먹기 심심하면 ‘빙수위에 닭알 한 개를 깨어서 저어먹으면 족하다’면서도 딸기맛이 덜해지니까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곁들였다. 쌍화차나 커피에 날계란 풀어먹는 게 100년 전 빙수에도 해당됐던 모양이다.

빙수마니아 시인 이하윤은 ‘빙수당(黨)’으로 소문난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과 빙수먹기 시합을 벌이고 싶었다고 고백한 적있다. ‘개벽사의 소파가 빙수당으로 명성이 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어느 기회에 정식으로 시합을 걸어볼 작정이었으나 드디어 실현되지 못하고 그는 그해 여름 빙수 흔한 세상을 남겨놓고 마침내 고인이 되고 말았다.’ (조선일보 1939년 8월3일자 ‘빙수’) 이하윤이 중외일보 학예부(1930년9월~1932년5월)기자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빙수와 에로티시즘 연결시킨 섬세한 취향

방정환은 앞의 딸기빙수 예찬에서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맛을 얼음에 채운 맛! 옳다, 그 맛이다. 그냥 전신이 녹아 아스러지는 것같이 상긋하고도 보드랍고도 달콤한 맛...’라고도 썼다. 김동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는 ‘빙수와 에로티시즘을 연결지을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격렬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방정환을 평가했다.

덧붙이자면, 앞의 월간지 ‘별건곤’은 소파가 설탕도 무척 좋아했다고 소개했다. ’15전짜리 냉면에 10전짜리 설탕 한 봉을 넣지 않고는 잘 못자신다.’ 한때 어린이나 젊은이중에도 우유나 콜라에 밥말아먹는 기호를 가진 것처럼, 소파는 냉면에 설탕을 봉지째 넣어먹는 독특한 취미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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