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그대로 77년 무용인생 지켜와.. 지금도 막 열릴때 죽을 것처럼 떨려"

박성준 2021. 6. 2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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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엔젤스 배정혜 예술감독
열두살 때 첫 개인 발표회 연 무용 천재
국립무용단 등 국내 대표 무용단 이끌어
2018년 리틀엔젤스 감독직 수락 새 도전
26일 기획공연 '천사들의 비상' 선보여
순수한 아이들, 가르치는 대로 흡수해
작품 하나 하려면 안무 등 일년쯤 걸려
무용 훈련법 '바기본' 아이들에 큰 도움
새 작품들 오랜시간 역사에 새겨지길
신작 ‘설날아침’을 6월 26일 기획공연 ‘천사들의 비상’에서 선보이는 리틀엔젤스 배정혜 예술감독. 1986년 국립국악원부터 2011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까지 총 25년간 국·공립 무용단체를 이끌었던 한국춤의 살아 있는 역사다. 하상윤 기자
다섯 살 때 무용을 시작하고 열두 살 때 첫 개인 발표회를 연 무용 천재. 국립국악원 무용단, 국립무용단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단을 수십년 이끌었다. ‘한국 창작무용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수식이 과장이 아닌 무용가 배정혜 최근작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가 열린다. 2018년부터 예술감독을 맡아온 리틀엔젤스예술단 기획공연 ‘천사들의 비상’이다.

77년째를 맞은 무용 인생을 마무리하는 심경으로 신작 한 편을 포함해 리틀엔젤스에서 그간 만들어온 안무 6편을 한데 모아 1부에서 선보인다. 2부에선 내년에 창단 60년을 바라보는 리틀엔젤스 전통의 레퍼토리 ‘장고춤’, ‘처녀총각’, ‘부채춤’, ‘시집가는날’, ‘북춤’ 등이 무대를 지킨다.

배정혜 예술감독은 지난 15일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그간 공연에선 기존 프로그램 중심에 신작을 한두편씩 소개했는데 이번 공연에선 리틀엔젤스에 와서 만든 ‘궁’, ‘바라다’, ‘설날아침’, ‘미얄’, ‘진쇠놀이’, ‘화검’을 1부에서 한꺼번에 선보인다”며 “그중 신작인 ‘설날아침’은 정초에 아이들이 세뱃돈 받고 기뻐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리틀엔젤스에 온 지 3년차인데 인생에서 예술작업을 마무리해야 할 때 영입 제안을 받았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30대에 선화예고 무용부장을 10년쯤 하면서 제 무용의 사회적 입지도 만들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선화예고의 근원이 리틀엔젤스일 텐데 선화예고에서 시작한 제 춤 세계를 리틀엔젤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리틀엔젤스에 인생 마지막으로 새로운 안무를 심기 위해 귀환한 거죠.”

천재 무용소녀로 시작한 배 예술감독 춤 인생은 그의 말대로 1974년부터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양성한 제자들과 함께 창단한 ‘리을무용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1986년 국립국악원부터 2011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까지 총 25년간 국·공립 무용단체를 이끌어왔다. 우리나라 무용계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 서울시립무용단, 국립무용단 3개 단체 수장을 돌아가며 맡은 경우는 전무하다.

“여러 무대를 만들었지만 나 스스로 어릴 때 무용을 시작했는데 다시 늙어서 어린 무용단을 맡아서 어린 무용수를 위한 작품을 만든다는 게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흥을 주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성인 무용단을 이끌다 리틀엔젤스를 맡게 되면서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은 순수함이라고 한다. 배 예술감독은 “아이들이 순수하다. 그리고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3∼6학년인 작은반, 중학생으로 이뤄진 큰반 등 어린 학생으로만 구성된 리틀엔젤스라서 생기는 어려움도 많다.
“작품을 하나 하려면 훈련과 안무에 일 년쯤 걸려요. 난관이 뭐냐면 아이들은 자꾸 커서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어서 가르쳐서 할 만하면 졸업해 새 아이를 가르쳐야 하죠. 새로운 작품을 많이 심을 수 없는 조건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여건인데도 리틀엔젤스가 60년을 이어왔다는 건 그만큼 재단이 애착을 갖고 지원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무대를 준비하면서도 배 예술감독은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신작으로 두 작품을 준비했는데 하나는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오지 않아 포기했다. “직업무용단에서 안무를 짤 때는 한 달이면 끝냈는데 여기선 두 달이 지나도 그렇게 안 됐어요. 그만큼 아이들에게 맞는 작품 만든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쓴맛을 뒤늦게 단단히 봤어요. 하하하.”

사실 이번 무대는 내년에 열릴 리틀엔젤스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한 전초전 성격이 크다. ‘친선과 우정의 외교사절’로서 오랜 역사를 쌓아 온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100년을 바라보는 미래를 한데 담은 큰 무대를 세종문화회관에서 보여줄 계획이다. 이를 위해 리틀엔젤스 출신이기도 한 사물놀이 김덕수 명인 지도로 작은 반 아이 30∼40명이 앉아서 장구치는 춤을 이미 맹훈련 중이다.

배 예술감독은 “리틀엔젤스가 쌓은 역사가 오랜 만큼 변해야 한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현존 레퍼토리가 오랜 세월을 이겨낸 잘된 작품이 남은 것처럼 새 작품도 리틀엔젤스 역사에 새겨질 수 있을지는 세월이 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배 예술감독이 한국 무용에 남긴 큰 자산은 무용 훈련법인 ‘바(Bar)기본’이다. 리을무용단에서 1975년 확립한 독자적 무용 방법론과 전통춤 호흡인데 한국춤의 체계를 만들고 현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리틀엔젤스 단원들도 이제 바기본을 익히고 있다. 배 예술감독은 “큰반에 바기본을 가르쳐서인지 춤이 엄청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친구들이 어른되어 ‘내가 중학생 때 배정혜에게 바기본을 배웠다’고 그런 추억담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무대 막이 열릴 때 죽을 것처럼 떨리고, 공연 전에는 밥도 못 먹겠어요. 항상 초심인데 이런 떨림 속에 일생을 마칠 것 같아요. 내 또래 다른 이들은 안 그런데 나만 유독 그러네요. 지금까지 쌓은 게 필요가 없어요. 항상 처음인 듯 70여년을 이렇게 해왔네요.”

리틀엔젤스예술단 기획공연 ‘천사들의 비상’,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6월 26일 오후 2시, 6시.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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