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근무수당이 뭐길래..전주시 발칵 뒤집은 '공익의 폭로'

박태우 2021. 6.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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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수당' 지급내역 정보공개 청구에 갈등 격화
공익 폭로 뒤, 동장 '무고' 고소했지만 '무혐의'
전주시, 수당 부정수령 등 확인..2명에 징계요구
ㅇ씨가 지난해 6월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글 갈무리.

지난해 6월 전북 전주시를 발칵 뒤집어놨던 사회복무요원(공익)의 ‘폭로’ 사건이 검찰 수사와 전주시의 감사를 통해 일단락됐다. 여의동주민센터에서 근무하던 사회복무요원 ㅇ씨가 공무원들의 비위를 감사해달라며 국민청원을 올려 시작된 이번 사건은 검찰 수사와 감사로 이어져 시는 큰 내홍을 겪었다.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 극한대립을 하게 된 배경에는 공무원들의 초과근무수당과 출장여비 부정수령 의혹이 있었다.

‘공익’ 폭로에 검찰수사·감사까지

지난해 6월 공익 ㅇ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 주민센터 직원들의 비위를 올렸다. ‘코로나19 방역용 마스크와 손소독제 빼돌리기’ ‘기부물품 부실 관리’ ‘근무시간 중 회식’ ‘수유실에서 취침’ 등 15가지에 이르렀다. 한중희 여의동장은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무고를 주장하며 ㅇ씨를 무고·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주시지부는 한 동장에게 변호사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지난달 전주지검은 ㅇ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불기소이유서에서 “신고 내용이 그 정황을 다소 과장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뒤이어 전주시는 최근 징계위원회를 열어 검찰 수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당시 여의동주민센터에서 근무한 공무원 2명에 대해서는 경징계를 요구하고, 직원 4명은 ‘주의’, 또 다른 직원 4명은 ‘훈계’하도록 했다.

전주시는 누구에게 어떤 혐의로 이런 조처를 내렸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ㅇ씨가 제기한 문제들 가운데 △초과근무수당 부정수령 △사회복무요원에게 금지된 개인정보 관련 업무와 현금 출납 관련 업무지시 △업무목적 외 관용차 사용 등이 징계사유로 인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초과근무수당 정보공개 청구에 왕따?

꼬박 1년 동안 이어진 공방은 폭로 두달 전인 지난해 4월 ㅇ씨가 한 주민센터 직원의 초과근무수당·출장여비 지급내역의 정보공개를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지난달 19일 <한겨레>와 만난 ㅇ씨는 “주민센터 직원들이 관내 출장을 신청하고 산책하러 나가거나, 저녁을 먹고 와서 퇴근 지문인증을 하는 등의 사례를 보고, 실제로 출장이나 야근 때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ㅇ씨의 정보공개 청구를 접수한 전주시 덕진구청 행정지원과 직원들은 ㅇ씨에게 전화해 청구 취하를 종용했다고 한다. ㅇ씨는 “구청 직원들이 ‘시장님께도 알려진다’, ‘동장님이 징계를 받아 강등당할 수도 있다’, ‘9급 시보들이 정식 임용이 안 될 수 있다’며 청구를 취하하라고 했다. 진짜로 그렇게 될까 봐 겁나서 청구를 취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보공개 청구지만, 주민센터 직원들은 정보공개 청구를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한 동장은 ㅇ씨 부모와 병무청 직원까지 불러 면담해 ㅇ씨와 “다시는 정보공개 청구를 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ㅇ씨는 “그 뒤로 직원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떤 분은 ‘직원 뒷조사하는 공익이랑 같이 근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고, 인사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다 같이 음식을 먹을 때도 나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ㅇ씨는 지난해 6월 덕진구청과 전주시청을 직접 찾아가 자신이 생각하는 주민센터 직원들의 문제점을 전달하며 감사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시 정보공개청구하고 청와대 국민청원과 온라인커뮤니티에 폭로글을 올렸다.

실제 지급내역 살펴보니

공무원들이 정보공개 청구에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에는, 공무원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는 초과근무수당과 출장여비 부정수령 관행이 있었다.

ㅇ씨가 지난해 6월 정보공개 청구를 해 받아낸 2019년 6월~2020년 5월 여의동주민센터 직원 초과근무수당·출장여비 지급내역을 보면, 대부분의 직원이 동일한 액수(2020년 기준, 직급별 월 43만~60만여원)의 초과근무수당 상한액을 받아 갔다. 전주시 감사담당관은 “부정수급액은 환수할 것”이라면서도 <한겨레>의 부정수급 액수와 인원 확인 요청은 거부했다.

출장여비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상시출장 공무원’에 해당해 월 15번 이상 출장을 다녀오면 최대 15만원을 받는데, 지난해 1~4월 직원 16명은 월평균 16회 관내출장을 다녀왔다.

목적이 모호한 출장도 많았다. 지난해 1~6월 직원들의 관내출장 1489번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576건은 ‘당면업무’ ‘현안업무’ ‘현장업무’ 등으로만 기재돼 있었다. 한 직원은 ‘당면업무 추진’ 목적만으로 6개월 동안 82차례 출장을 다녀왔고, 다른 직원은 79번 출장 가운데 ‘현장점검 등’이 76차례에 달했다. 또 다른 직원은 주민센터 건물 안에 있는 ‘무인민원발급기 관리’를 명목으로 관내출장을 63차례 다녀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출장들이 많았지만, 징계요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 감사담당관은 “상시출장 공무원은 잠깐만 나갔다 와도 출장으로 인정되는데, 실제로 출장을 다녀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한겨레>와 만난 한 동장은 “주민센터에 업무가 많아 출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ㅇ씨를 무고·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도, ㅇ씨가 폭로한 내용 가운데 초과근무수당·출장여비 관련 내용은 고소 내용에서 뺐다.

ㅇ씨는 “주민센터에서 온종일 민원서류를 떼주는 직원들이 그렇게 많이 출장을 갔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고 했다.

초과근무수당, 재수없어 걸렸다?

초과근무수당·출장여비 부정수령 의혹 등을 제기한 ㅇ씨는 전체 복무기간의 절반이 넘는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고, 부모님이 사는 전주를 떠나 서울로 근무지를 옮겼다. “지나가다 우연히 주민센터 직원과 마주쳤는데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서”였다고 한다.

엄연한 불법인 초과근무수당 부정수령에 동참했다가 공무원 2명이 징계를 받게 됐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잘못이라기보다는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한 전주시의원은 “초과근무수당 부정수령이 만연해 있다 보니, 공무원들은 문제제기 자체를 굉장히 민감해한다”며 “이번 조사 자체도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만 감사를 했을 뿐,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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