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소설]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정..윤대녕 '은어낚시통신'

김석 2021. 6. 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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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를 빛낸 소설을 만나보는 시간.

오늘 만나볼 작품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로 꼽히는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입니다.

회유성 물고기인 은어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듯,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인물들의 여정을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에 담아내 90년대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김석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내가 태어나던 1964년 7월 12일에 아버지는 울진 왕피천에서 은어낚시를 하고 있었다. 나는 속성재배하는 채마처럼 쑥쑥 자라 여름철이 되면 아버지를 따라 은어낚시를 다니곤 했다. 은어가 봄이 되면 바다로부터 돌아와 여름내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나 또한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들을 따라 강으로 회유하곤 했다."]

주인공에게 어느 날 날아든 편지 한 장.

은어 낚시모임에 와달라는 의문의 초대장.

몇 해 전 사귀다 헤어진 여자가 그 모임에 속해 있다는 걸 안 주인공은 그녀를 다시 만나러 어느 지하 카페로 향합니다.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 속에서 다른 삶의 길을 찾으려는 이들이 모이는 자리.

그곳에서 주인공은 마침내 옛 애인과 재회하고, 과거, 자신 때문에 그녀가 깊이 상처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흐느끼는 그녀 앞에서 주인공은 지난 시간을 뼈아프게 되돌아봅니다.

["정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아주 낯선 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삶의 사막에서, 존재의 외곽에서."]

그리고 이제 진정한 나를 찾아, '존재의 시원'을 찾아 떠나기로 합니다.

그 여정을 상징하는 것, 바로 '은어'입니다.

[윤대녕/소설가 : "바다로 나가서 성장한 다음에 다시 모천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고 죽잖아요. 새로운 세대로 순환되는 그런 과정인 거죠. 우리가 한 번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원래 존재의 순수한 어떤 정체성을 회복할 그런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게 아닌가, 90년대라는 게."]

베를린 장벽 붕괴와 구 소련 연방 해체로 이념의 시대가 막을 내린 뒤.

무엇을 써야 할까 고민해야 했던 90년대 초반.

작가는 바깥 세계가 아닌 인간의 '내면'으로 눈을 돌립니다.

[윤대녕/소설가 : "끊임없이 자기를 확인해야 되는 거죠. 내가 누군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그거를 알아야만 다음 선택을 할 수가 있거든요. 계속 살아갈 수가 있는 거고."]

1994년에 발표된 윤대녕의 소설 <은어낚시통신>.

'감수성의 혁명'으로 불릴 만큼 당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남진우/문학평론가·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산문인 소설을 거의 어떤 시적인 이미지를 계속 연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그러한 소설 작법, 그리고 그것을 또 어떤 공들인 미문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능력, 이런 것은 윤대녕 작가의 어떤 득의( 得意)의 영역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소설을 써온 지 어느덧 30년.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해가지만, 글 쓰는 마음가짐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윤대녕/소설가 : "자기 나이에 맞는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면서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면서, 거기에는 또 따라가야 될 게 있어요.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 그 이야기에.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

KBS 뉴스 김석입니다.

촬영기자:조승연 박세준/영상편집:김은주/내레이션:이상협/문자그래픽:이승철

김석 기자 (stone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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