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의 '층간소음'에 아랫집이 전한 편지..그리고 변화가 일어났다 [김기자와 만납시다]

김동환 2021. 6. 2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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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의 층간소음에 아랫집 주민이 보낸 편지 한 장 / 진심이 담긴 편지에 아랫집 배려하는 윗집의 변화
윗집의 층간소음에 이모(52)씨가 이달 중순 이해심을 담아 전달한 편지의 일부. 놀랍게도 이 편지가 전해진 후, 윗집의 층간소음이 많이 줄었다면서, 소음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윗집 이웃이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그는 고마워했다. 이씨 제공
 
통계청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에서 아파트와 연립·다세대 등 공동주택의 비율은 77.2%로 조사됐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이웃과 위·아래층을 맞대고 사는 환경에서 거주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공동주택의 비율이 높은 만큼 층간소음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다 번진 다툼이 경찰이나 법원으로 이어지는 일이 있어서,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편지 한 장으로 층간소음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어느 누리꾼의 사연이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세계일보는 편지를 작성한 이와 연락을 거쳤으며, 동의하에 사연을 기사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지난 20일 세계일보에 보낸 이메일 답변에서 편지 한 장에 소음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윗집 이웃이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편지 쓸 당시에 담긴 진심을 생생하게 전하고자, 원문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아랫집이 윗집에 보내는 편지 “귀댁의 자녀들이 쿵쿵거리며 다녀도…”

아랫집입니다. 사실, 이사 온 첫날부터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놀랐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합니다. 

쿵쿵거리는 소리, 지진인가 혼동했던 세탁기 탈수하는 소리(?), 심지어 화장실에서는 사람 말소리도 들리더군요.

아침에는 아이들과 엄마의 정겨운 고함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요새도 그렇습니다만... ^^;;) 아마 저희보다 먼저 이 집에 살던 사람들도 꽤나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저희는 애가 셋입니다. 이제는 다 커서 뛰어다닐 만한 아이들은 없지만, 애들 어릴 때는 아랫집 눈치 보는 것도 엄청 신경 쓰였죠. 차라리 윗집의 소음을 견디면 견뎠지, 아랫집에 피해 주는 것은 마음이 편치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10여년 동안 1층으로만 힘들게 이사를 다녔죠. 올해에야 겨우 5층으로 올라온 거랍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귀댁의 자녀들이 쿵쿵거리며 다녀도 지금처럼 “그러려니…”하려 합니다.

첫째로는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저희 아이들도 어렸을 때 아랫집에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며, 셋째로는 이런 소음의 근본적인 원인이 건물의 구조적 문제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고, 넷째로는 컴플레인을 한다고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을 뿐 아니라 저희 마음만 상할 것이기 때문이죠.

저는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에 병까지 생긴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려 할 때도, 

“그냥 그러려니… 해. 니들도 어렸을 때 다 그랬어.”

라고 합니다.

애들도 그런 소음에 둔감해져야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라서, 부모가 층간소음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도 은연중에 그걸 배우거든요.

다만,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특히 주말에는 저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가구가 쓰러지는 것 같은 큰 소리가 들리더군요. 혹시라도 아이의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지 않았는지 놀라 귀를 기울였습니다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걷거나 뛰면서 나는 소리 정도는 괜찮은데,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아이들이 조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네요. ^^;

뛰는 소리와 엄마, 아빠의 고함소리로 보아 남자 아이들을 키우시는 것 같은데, 엄마가 특히 고생하실 것 같네요. 

아들들 키우려면 엄마도 전사가 돼야죠. ^^; 그래도 한 5년만 더 고생하시면 편해지실 겁니다. 아무쪼록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어 아이들도 밖에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윗집의 층간소음에 이모(52)씨가 이달 중순 이해심을 담아 전달한 편지의 일부. 놀랍게도 이 편지가 전해진 후, 윗집의 층간소음이 많이 줄었다면서, 소음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윗집 이웃이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그는 고마워했다. 이씨 제공
 
◆“위층도 심리적 위축…결국 아랫집, 윗집 모두 피해자”

대전에 산다고 밝힌 이모(52)씨는 이메일 답변에서 “우리 가족은 소음을 충분히 참고 견딜 의지가 있지만, 내년에 이사 간 후 새로 들어올 주민이 같은 일을 겪는다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고 편지 작성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최소한 윗집에서 자신들이 소음을 만든다는 점은 알아야 할 것 같았다고도 했습니다.

이 편지는 이달 중순에 전달됐습니다.

그는 단순히 말로 생각을 밝히는 것은 감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오해의 소지도 있으므로,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표현을 가다듬은 글로 의견을 전하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편지를 받은 윗집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이씨는 “윗집의 반응은 아직 없지만, 아침에 아이들을 재촉하는 고함도 별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으니, 엄청난 반응이라 할 수 있다”고 고마워했습니다.

그러면서 “편지 한 장에 소음을 많이 줄여주시는 위층 분들도 훌륭한 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씨는 “근본적으로 아파트를 지을 때 층간소음에 취약한 구조로 지을 수 있도록 되어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변에서 강조합니다.

층간소음에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고 마음고생 하는 일이 없으려면,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상황이 그렇지 못하니 국민끼리 다툼만 일어나고 심지어는 폭행 사건, 살인 사건까지 끊이지 않는다고 그는 안타까워했습니다.

법 개정과 이미 지어진 아파트가 철거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층간소음이 없어지기 힘든 환경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도 말합니다.

아랫집의 층간소음 지적이 윗집 입장에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만큼, 이씨는 “위층도 아이들을 뛰지 못하게 단속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등의 피해를 입고 있으니 결국은 아래, 위층 모두가 피해자고, 근본적인 해결 없이 서로를 탓하고 있는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짚었습니다.

직업이 한의사라고 밝힌 이씨는 층간소음에 따른 스트레스로 몸까지 아픈 환자들을 본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가 일어나는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결국 화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이번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로부터 ‘마음 씀씀이가 대단하다’, ‘참을성이 대단하다’ 등 반응을 얻었던 이씨는 이메일 답변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걱정되었던 점은, 위층의 소음에 대해 내가 짜증을 표현하고 예민하게 굴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아이들이 나중에 가정을 꾸렸을 때 층간소음 때문에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둔감하게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너그럽고 관용적인 대처를 보고 아이들, 나아가 그 후대까지 스트레스에 둔감해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교육적인 면으로도 정말 중요한 내용이죠.”

* 세계일보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시고 답변 보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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