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한 마디가 불러온 나비효과

한겨레 2021. 6. 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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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애니멀피플] 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
5회 첫 '방해시위' 우리가 식당으로 간 이유
2019년 6월 디엑스이 서울 활동가들은 각각 육식 식당에서 첫 ‘방해시위’를 하고 이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2년 전 오늘 우리는 첫 ‘방해시위’를 공개했다. 활동가 네 명이 각각 돼지 무한 리필, 물살이(생선) 초밥, 닭 볶음탕, 냉동 돼지를 내세운 식당을 찾아간 영상이었다. 동물을 먹는 식당에 들어가 우리가 외친 구호는 한 마디였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방해시위를 찍은 영상은 순식간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고, 각종 온라인 뉴스와 문화방송(MBC) 등 방송사에서도 우리의 활동을 보도했다. 심지어 일본 위성방송 니혼테레비(닛폰TV)에까지 등장했다.

밥상머리 뒤 흔든 첫 방해시위

고작 종이 한 장을 들고 나타나 동아시아의 밥상머리를 뒤흔든 것이다. 방해시위(Disruption)의 시작이었다. 방해시위는 단순히 폭력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넘어 일상이 된 폭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직접행동이다. 또한 문제가 극적으로 표출된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문제를 알려 논의를 촉진한다.

우리의 목표는 식당에 있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도, 특정 식당만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방해시위의 궁극적 목표는 그 너머에 있다. 동물 수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와 규범을 교란해 새로운 질문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 방해시위의 진정한 목표다.

방해시위를 찍은 영상은 순식간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고, 각종 온라인 뉴스와 문화방송(MBC) 등 방송사에서도 우리의 활동을 보도했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방해시위’는 일본 위성방송 니혼테레비(닛폰TV)에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일본 닛테레 갈무리

당시 언론과 시민사회는 처음 보는 액션에 우왕좌왕했다. 언론들은 우리를 그저 채식주의자라고 이름 붙였고, 과격한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벌인 해프닝으로만 치부했다. 이름 있는 인권운동가들도 인간과 동물을 철저히 구분 지으며 운동 방식에 대해서만 훈수를 두었지, 결코 존엄한 존재에 대한 ‘권리 운동’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더 노골적이었다. 방해시위 영상에는 ‘고기’ 사진과 함께 “폭력 맛있다 냠냠” “폭력 개꿀맛 ㅋㅋ”과 같은 유치한 조롱이 악플로 줄줄이 달렸다. “진짜 폭력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협박 메시지로 수신함이 가득 차기도 했다.

악플·협박·패러디까지…무엇이 그리 불편했나

이들의 반응은 어딘가 필요 이상으로 열광적이기까지 했다. 한 유튜버는 기자를 사칭해 디엑스이 공개회의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왔고, 이를 7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또 다른 유튜버가 우리의 액션 영상을 패러디한 영상까지 내놨다. 이 영상은 우리의 피켓과 구호, 영상 형식까지 철저히 고증하는 정성까지 보였다. 첫 방해시위 영상들 또한 지금까지 백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방해시위 영상에는 ‘고기’ 사진과 함께 유치하지만 동물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드러내는 조롱들이 악플로 줄줄이 달렸다.

무엇이 그렇게 불편했던 것일까? 우리가 건드린 역린이 도대체 뭘까? 우리가 맨 처음 방해시위를 하게 된 계기로 거슬러 가봤다.

당시 활동가들은 매주 비질(Vigil)을 하러 도살장에 방문하고 있었다. 이전 회차에서 소개했듯, 그곳은 고통스러운 표정의 돼지와 겁에 질린 채 주저앉은 소들이 있었다. 배설물이 딱지처럼 앉은 피부, 차멀미로 인한 토사물, 눈알이 뒤집힌 모습까지. 그들은 비참한 상태로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살해되고 있었다.

도살장 앞 트럭 안에서 몸부림 치며 상처 입은 돼지들의 모습. 사진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그곳에서 나는 고통 속에 살려달라고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도 가만히 지켜만 보는 ‘인간 종의 일원’이었다. 계속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들이 살아서 돌아갈 곳이 없었기에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들이 죽어서 향하는 바로 그곳으로.

내가 처음 피켓을 든 방해시위는 대학로에 위치한 닭볶음탕을 파는 식당이었다. 2019년 5월 어린이날 연휴 저녁이었다. 솔직히 심장이 쿵쾅쿵쾅 떨렸다. 얼마 전까지 다른 이들과 똑같이 테이블에 앉아 닭을 먹던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픔 느끼는 존재”

그러나 문 앞에 선 순간 도살장 앞에서 마주한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무고한 눈망울들이 떠올랐고, 비로소 나는 식당 문을 열고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한 마디를 떼는 순간 모든 눈이 나를 향했다. 수저를 내려놓은 채 찌푸린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순식간에 나는 불쾌한 존재, 치워버려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마치 도살장 앞 동물들이 살아 나타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 곳곳에서 불만 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니들이 이렇게 하는 것도 폭력이야!” 이들의 반응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발언을 이어갔다. “우리가 동물이듯, 이들도 기쁨과 슬픔, 아픔을 느끼는 동물입니다. 여러분, 음식으로 보는 것을 멈춰주십시오. 이것은 폭력입니다.”

냉동 돼지를 파는 한 육식 식당에서 은영 활동가가 방해시위를 하고 있다.
나의 첫 방해시위는 닭볶음탕 식당이었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한 마디에 나는 불쾌한 존재, 치워버려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고작해야 1~2분 남짓한 시간, 방해시위는 왜 그토록 뜨거운 거부의 반응을 일으켰을까. 그렇다. 사람들은 사실 폭력을 인지하였지만, 격렬히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도살장을 도시의 외곽 어딘가에 슬쩍 밀어둔 것처럼. 도살장 안이 끔찍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자신이 가해자라는 것을 직면하는 것은 불쾌한 것이다. 더구나 그곳이 식사 자리(폭력의 현장)이라면 더더욱.

사람들은 방해시위를 치기 어린 행동, 잠깐의 소란으로 해석하고 싶어 했다. 그 어떤 실질적인 성과도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회 정의 운동에는 항상 ‘이건 용납될 수 없으며, 우리는 뭔가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비폭력 방해시위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동물권 행동이다. 사진은 미국의 방해시위.
비폭력 방해시위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동물권 행동이다. 사진은 미국의 방해시위. 사진은 멕시코 대형마트에서의 방해시위.

2년이 지난 지금, 방해시위는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일상을 교란하는 방해시위가 어떻게 주의를 끌고 규범을 재구성하며, 궁극적으로 동물을 위한 더 강력한 운동의 발판이 되는지 우리는 알게 됐다.

상식을 뒤엎는 순간…전환이 시작됐다

시민 활동가들은 이제 식당뿐 아니라 대형마트, 패션매장, 푸드 페스티벌, 야구장 등 다양한 곳에서 일상 속의 폭력을 방해하고 있다. 직접행동은 동물과 우리를 철저히 분리한 선을 넘어 끊어버렸다. 동물들의 대학살을 우리만 알고 있지 않도록, 도살장의 비명을 도심 한복판에 옮겨놓은 것이다.

2년이 지난 지금, 방해시위는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첫 방해시위 1주년에 열린 비폭력 직접행동 트레이닝 세미나.

이제 대기업마저도 비건 제품을 출시하며 동물권·기후위기 등 높아진 시민의식에 눈치를 보고 있다. 상식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었다는 말처럼, 우리의 포효는 이 사회를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다.

글·사진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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