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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오마이갓] 유흥식 대주교가 추기경 된다면, '한국 추기경'일까? '로마 추기경'일까?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1. 06. 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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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가 6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금요일이던 6월 11일 저녁, 한국 천주교에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유흥식 대전교구장이 교황청 성직자성(省) 장관에 임명되고 대주교로 승품(昇品)됐다는 뉴스였지요. 이 뉴스가 저녁 7시에 알려진 것은 로마 시각 정오에 맞췄기 때문입니다. 교황청은 주요 사안이 있을 땐 현지 시각 정오에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를 통해 발표하지요. 이번 유 대주교 장관 임명 소식도 그렇게 발표됐습니다. 또한 엠바고(보도시점유예)도 철저히 지켜지는 편이지요. 이 때문에 한국 언론들은 주요 사안 발표 때마다 오후 8시, 혹은 오후 7시(섬머타임 적용 때)에 갑자기 ‘날벼락’(?)을 맞곤 하지요. 특히 조간 신문은 마감이 급하거든요. 지난 11일엔 심지어 엠바고조차 없었습니다.(주교회의 관계자들도 로마발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하네요.)

2014년 8월 성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안내하는 유흥식 대주교. /사진연합취재단

유 대주교님은 임명 사실 발표 후 대전교구 홈페이지에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에게 전하는 서한’이란 글을 통해 장관 임명 과정을 비교적 소상히 털어놓으며 이 사실을 주변에 미리 알리지 못한 송구함을 표현했지요. 유 대주교님이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첫 통보를 받은 것은 지난 4월이었다고 합니다. 유 대주교님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했다”고 했지요. 그리고 교황님이 ‘발표 때까지 보안 유지’를 당부했다고도 전했습니다. 그 서한을 읽으면 교황청의 정보 수집 과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당황하며 ‘아시아의 작은 교구 주교’라며 겸양하는 유 대주교에게 교황은 “내가 다양한 방법으로 주교님에 관한 의견을 듣고 기도 가운데 식별하였습니다”라고 답했답니다. 저는 ‘다양한 방법’이란 표현에 눈길이 가더군요. 알려진 대로 교황청의 정보 수집 능력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각국에 파견된 교황 대사관을 통해 기본 자료를 수집하고 현지의 주교, 사제뿐 아니라 신자들의 여론까지 그야말로 다양하게 청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른바 ‘다면 평가’ ‘평판 조회’의 역사가 깊다는 얘기이지요. 유 대주교에 대해서도 아마도 2014년 아시아청년대회에 직접 참석해서 만난 이후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다양한 방법으로 ‘장관감’인지 평가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여기에 마지막으로 ‘기도 가운데 식별’ 과정을 거쳐 결심하고 낙점했다는 것입니다.

해미성지를 도보순례하던 유흥식 대주교가 바위에 입맞추고 있다. 유 대주교는 대전교구장 취임 후 교구 내 성지를 가꾸고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일에 앞장섰다. /천주교 대전교구

유 대주교님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은 파격입니다. 무엇보다 한국 천주교로서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방식의 파격 발탁인사입니다. 한국 천주교는 지금까지 세 명의 추기경을 배출했습니다.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님이지요. 이분들의 공통점은 주교를 시작으로 대주교(서울대교구장)를 거쳐 추기경에 서임됐다는 점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마산교구장(주교)>서울대교구장(대주교)>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은 청주교구장>서울대교구장>추기경, 염수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서울대교구장>추기경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대전교구는 대교구(大敎區)가 아니기 때문에 유 대주교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대주교’가 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천주교에 대교구는 서울, 대구, 광주 등 세 곳이지요. 그러나 유 대주교님은 교황청 장관에 임명되면서 바로 ‘대주교’로 승품됐습니다. 교황청 장관들이 대부분 추기경이라는 점에서 유 대주교님은 머지않아 추기경으로 서임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천주교 네 번째 추기경이 되는 것이지요. 교구에서 차근차근 승품돼 추기경까지 오르던 것과는 다른 프로세스입니다.

유 대주교님이 교황청에서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추기경에 서임된다면, 우리 천주교로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모습과는 다른 장면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한국 추기경인가? 로마(교황청) 추기경인가?’ 하는 점입니다. 모든 추기경은 서임되는 순간 바티칸 국적을 겸하게 됩니다.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 모두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세 분의 경우는 한국의 교구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명목상 바티칸 국적을 갖는 것이지 한국에 상주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추기경의 역할이 컸지요. 물론 천주교는 철저히 교구 중심이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하는 추기경’이란 표현은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일반적으로는 한국을 대표한다고 받아들이곤 하지요.

그렇지만 유 대주교가 추기경이 되면 사정은 좀 달라집니다. 당장 유 대주교님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서 ‘열외’가 됩니다. 청주교구 출신으로 1980년대부터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장인남 대주교라는 분이 계십니다. 현재 태국·캄보디아·미얀마 교황 대사로 활동하는 이분도 대주교이지만 한국 천주교 주교단 멤버는 아닙니다. 교황청 소속 대주교인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유 대주교님도 장관 취임과 함께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서 열외해 교황청 대주교가 됩니다. 이는 유 대주교님이 추기경에 서임돼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교황청 장관에 취임한 순간 한국을 대표한다기보다는 전세계 천주교 즉 교황청을 대표하는 성직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형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유 대주교는 한국 사람입니다. 유 대주교님은 교황청에 상주하겠지만, 역으로 한국 천주교는 교황청에 든든한 우군(友軍)을 두게 된 셈입니다.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을 지근거리에서 수시로 알현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문제를 설득하고 이해를 높일 기회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교황의 북한 방문 문제도 그렇습니다. 유 대주교님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교황님은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하신다”며 “교황님의 방북을 주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의 방북이 성직자성 장관의 주된 업무는 아니겠지만 교황청 핵심 참모로서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유 대주교님은 2016년부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천주교의 오랜 소망인 순교자들의 시복시성(諡福諡聖) 문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8월이면 성직자성 장관 업무를 시작할 유 대주교님은 서한 마지막에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유 대주교님이 대전교구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황청에서도 소임을 잘 수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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