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한미워킹그룹' 폐지에 동의했나

강현태 2021. 6. 2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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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비판' 1년 만에 폐지
외교차관 "당연히 北에 시그널"
韓 요청에 美 호응한 듯
美, '韓 과속' 제동장치 이미 확보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접견하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사대의 올가미'라고 비판했던 한미워킹그룹이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는 한국의 독자 대북 드라이브에 우려를 표하며 워킹그룹을 신설했던 만큼, 미국의 동의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22일 외교부는 전날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워킹그룹의 운영 현황을 점검하며 '종료'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여권 주요 인사들은 그간 워킹그룹이 남북관계의 '족쇄'나 다름없다며 폐지를 주장해왔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 역시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워킹그룹이 한미 간 대북정책 전반의 의견조율을 위한 중요한 플랫폼이었다"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의 장애물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여당의 '비판적 인식'에는 김여정 부부장의 강도 높은 비판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김 부부장은 지난해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직후 "북남(남북)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워킹그룹)'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 물고 사사건건 북남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 바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왔다"고 꼬집은 바 있다.


그는 "훌륭했던 북남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 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남북대화 복원에 '올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워킹그룹 폐지는 한국 요청에 미국이 호응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 부부장이 대북전단을 문제 삼은 이후 '전단금지법'이 제정됐고, 김 부부장이 공개 비판한 인사가 교체된 전례까지 있는 만큼, 워킹그룹 폐지 역시 같은 맥락의 조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차관은 우리 정부가 워킹그룹 폐지를 미국 측에 제안했느냐는 질문에 "명확히 확인해 드리기 어렵다"면서도 "양측이 공감대를 가지고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워킹그룹 폐지가 "당연히 북한에 시그널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부부장이 강도 높게 비판한 워킹그룹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북한의 긍정적 반응을 내심 기대하는 모양새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대화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미국이 남북협력에 대한 지지를 거듭 표명하고 있는 데다 '족쇄'로 여겨지던 워킹그룹까지 폐지되는 만큼, 정부 안팎에선 독자 대북구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감지된다.


하지만 한미가 각급 회의체를 가동할 때마다 '완전히 조율된 대북정책 추진'과 '대북제재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하고 있어 미국이 한국 '과속'에 제동을 걸 장치는 충분히 마련돼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이날 한미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실무 협의 당시 금강산 관광 등 남북사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면제 요구를 거부했다고 한다.


신문은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양국 공동성명에 '대북 접근법을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해나가기로 합의했다'는 문구가 담긴 것은 한국이 독자 대북지원에 나서지 못하도록 못을 박겠다는 미국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했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었던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역시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대북 접근법을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키로 한 대목이 어떻게 작동할지, 미국과 완전한 조율이 안 됐을 때 한국 정부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뉴시스

김여정, '대화하자'는 美에…"잘못된 기대"

한편 김여정 부부장은 이날 발표한 개인 명의 담화에서 '북한의 분명한 협상 복귀 메시지를 기다리겠다'는 미국을 겨냥해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과의 대화·대결을 모두 강조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흥미로운 신호'에 비유하며, 북한의 명확한 협상 복귀 메시지를 기다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부부장은 "조선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며 "미국은 아마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쪽으로 해몽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와 대결을 동시에 언급한 만큼, 대화 가능성뿐만 아니라 대결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데일리안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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