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로 폭력 반대"..'비종교적 현역거부' 첫 무죄 확정
“성소수자로 폭력과 전쟁에 반대한다”며 현역병 입대를 거부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30대 남성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2017년 10월 현역 입영 통지서를 받았지만 “신념에 반한다”며 군 입대를 하지 않은 정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당사자의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상 ‘정당한 기피 사유’에 해당한다”며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반해 병역법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지난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이래 비(非)종교적 사유로 예비역이 아닌 현역병 입대 거부를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앞서 정씨는 1·2심 재판을 통해 “성소수자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집단 문화에 반감을 느꼈다”며 “대학생활 도중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고, 성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퀴어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다양성을 파괴하고 차별과 위계로 구축되는 군대 체제 및 생물학적 성으로 자신을 표준 남성으로 규정짓는 국가권력을 용인할 수 없다”면서다.
정씨는 “대학 입학 후엔 기독교 선교 단체에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을 안기는 전쟁과 타인에 대한 폭력을 전제로 하는 군대는 기독교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주장도 폈다. 지금까지 집총 거부를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 교인들이었지만, 정씨는 대한성공회 교리를 따르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정씨에 대한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피고인이 종교적 양심 내지 정치적 신념에 따라 현역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정씨에 대한 1심 선고는 2018년 2월 나왔는데, 같은 해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병역법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같은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종교적 사유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렸다.
이후 병역법 개정으로 지난해 10월부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군사훈련을 받지 않고 36개월 간 교정시설에서 합숙을 하는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반영해 정씨 항소심을 심리한 의정부지법은 지난해 11월 “정씨의 입영 거부 사유는 진정한 양심에 해당해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선교활동 자료 등 정씨가 제출한 객관적인 자료를 보면 정씨에게 폭력적인 성향이 있거나 자신이 주장하는 양심을 부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정씨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부터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 입영을 거부했다”고도 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정씨가 주장한 종교적 사유에 대해선 “기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고만 볼 수 없고, 신앙과 개인적 신념이 더해져 피고인의 내면에 실체를 이룬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올해 2월에는 비(非)종교적 사유로 인한 병역거부도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해당한다면 인정할 수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의 구체적인 범위와 기준을 제시해가고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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