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폐플라스틱, 분리 배출 해도 재활용 퇴짜 많아

윤혜인 입력 2021. 6. 26. 00:21 수정 2021. 8. 1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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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용량 63개국 중 3위
코로나 이후 배출량 16% 증가
소재별 분리 배출 제대로 안 돼
재생 힘든 복합재질 등 소각·매립
"각종 용기 내용물 깨끗이 비우고
펌프·스프링 등 해체해 버려야"

플라스틱 중독 사회의 고민
22일 오전 서울 중구 재활용선별장에 쌓여있는 재활용 잔재물. 선별 작업 후 남은 쓰레기로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소각된다. 정준희 인턴기자
지난 22일 서울 중구 재활용선별장. 중구에서 발생한 재활용 쓰레기들을 일차적으로 모아 선별한 후, 최종 재활용 업체로 보내는 곳이다. 선별장에는 주택가와 사업장에서 버려진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했다. 입구부터 이미 선별 작업을 거쳐 압축된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일회용 플라스틱 컵, 식용유통, 배달 음식 용기, 비닐 등 아직 선별되지 않은 재활용 쓰레기들이 뒤섞여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곳엔 하루 평균 30t의 재활용 폐기물이 들어온다.

이 쓰레기들의 운명은 18m 길이의 레일(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결정된다. 12명의 작업자가 비닐-페트병-알루미늄 캔-파지(종이)-플라스틱-병 순서대로 선별한다. 쉼 없이 움직이는 레일 위에서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를 골라내는 건 쉽지 않다. 보통 잡기 쉬운 큰 쓰레기가 먼저 선별된다. 레일에서 선별되지 못한 쓰레기는 재활용될 수 없는 ‘진짜 쓰레기’(잔재물)다. 잔재물은 대부분 소각·매립된다. 페트병 뚜껑 같은 작은 플라스틱, 재질을 알 수 없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잔재물은 평균 7~8t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당연히 재활용될 것으로 생각해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정작 선별장에 오면 잔재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 중구 오택주 재활용관리시설 팀장은 “주민들은 분리배출 표시만 있으면 다 재활용되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소재별로 분리해서 배출해야 재활용이 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곳 중구 선별장은 계약 업체가 복합재질 플라스틱까지 수거해 가기 때문에 타 지역 선별장에 비해 잔재물이 적은 편이다. 보통 다른 선별장에선 복합재질 플라스틱도 잔재물로 처리된다. 복합재질 플라스틱은 단일 소재가 아닌 여러 재질을 섞어 만든 플라스틱을 말한다. 서울 송파구 재활용선별장을 맡아 운영하는 KC에코사이클 관계자는 “음식물 등 이물질이 묻어 있는 배달 음식 용기 같은 플라스틱은 재활용하기 어렵다”며 “최종 재활용업체에서 복합 플라스틱이나 이물질이 섞인 플라스틱은 잘 가져가지 않는다”고 했다.

화장품 용기는 재활용 힘든 ‘민폐 용기’

최종 처리업체에서 꺼리는 대표적인 품목이 플라스틱 재질의 화장품 용기다. 다양한 첨가제 사용, 복잡한 구조, 복합재질, 내용물 잔존 등의 이유로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는 대부분 복합재질이다. 환경단체 화장품어택시민행동에 따르면 화장품 용기 6617개 중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는 18.7%(1238개)에 불과하다. 선별장을 거친 후 최종 처리하는 업체에서도 복합재질보다는 단일재질 플라스틱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화장품 용기는 ‘민폐 용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해도 선별장에서는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쓰레기로 간주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크기가 작아서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 제품도 많다. 움직이는 선별장 레일에서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잘 보이지 않고 잡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칫솔이 대표적이다. 칫솔은 솔부터 손잡이까지 대부분 플라스틱 소재로 돼 있지만 크기가 작은 데다, 손잡이 부분에 미끄럼방지 고무를 덧댄 복합재질로 대부분 소각·매립된다. 결국 크기가 큰 단일 소재 플라스틱, 이물질이 깨끗하게 제거된 플라스틱 용기 등만 제대로 재활용된다는 뜻이다.

가정에서 좀 더 세밀한 분리배출을 할 필요가 있다. 중구 재활용폐기물 처리 업체 김윤호 명민산업(주) 부사장은 “음식물 찌꺼기 등 내용물을 깨끗이 비워서 버려야 재활용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오택주 팀장은 “가령 손 소독제의 경우 펌프, 스프링, 용기 소재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분리해서 배출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플라스틱 쓰레기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 “생산·유통 단계 근본적 변화 필요”김성수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팀장은 “재활용을 위해서는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고, 활용하는 기업과 업체들이 가급적 단일 소재를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도 “물건을 만들고 유통하는 단계부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며 “코카콜라 같은 글로벌 기업이 페트병 재활용에 나서는 것도 기업이 직접 플라스틱 문제를 책임지라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부속기사 참조〉

시민 사회의 관심과 꾸준한 감시도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플라스틱 중독 사회’라고까지 불린다. 유럽 플라스틱·고무 생산자 협회 유로맵(EUROMAP)에 따르면 조사 대상 63개국 중 한국의 지난해 연간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3위(145.9㎏)다. 한국보다 많은 플라스틱을 쓴 나라는 벨기에(177.1㎏)와 대만(154.7㎏) 정도다. 특히 코로나19로 배달 수요가 늘면서 국내에서만 하루 평균 848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전보다 15.6% 급증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플라스틱 사용량이 월등히 많은 만큼 그에 걸맞은 생활 문화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시민사회의 활동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 4월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하루 최소 830만 개의 일회용 배달 용기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배달 전문 업체 측에 “배달 쓰레기 없는 배달을 선택할 소비자의 권리에 답하라”는 운동을 펼쳤다. 지난 3일에는 ‘화장품어택시민행동’이 “화장품 업계는 용기 재질을 개선하고 실효성있는 공병 회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상공인들의 노력도 더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상인회는 5월부터 ‘용기내 망원시장’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 장바구니를 사용한 손님은 10 종량제봉투로 교환되는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집에서 가져온 용기에 닭강정을 포장해 쿠폰을 받은 엄모(40)씨는 “쓰레기 처리할 필요도 없고, 냉장고에 바로 넣을 수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과 관련해 홍수열 소장은 “자원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계속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실천과 기업의 혁신, 정부·지자체의 인프라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라벨 없는 생수·탄산음료, 종이 튜브 화장품…플라스틱 줄이기 동참 기업 늘어

「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는 기업 코카콜라. 코카콜라는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료를 만드는 회사지만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 코카콜라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 1월 코카콜라는 국내 페트 탄산음료 최초로 라벨을 없앤 ‘씨그램 라벨프리’를 선보였다. 비닐 소재의 라벨은 플라스틱 페트병의 재활용에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됐다. 앞서 코카콜라는 친환경정책에 발맞춰 자사의 사이다 브랜드인 스프라이트의 기존 초록색 페트병을 재활용에 용이한 무색 페트병으로 전면 교체하기도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종이용기에 음료를 담아 유통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은 비단 코카콜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전국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 제도가 의무화된 후 무라벨 생수병이 나왔다. 롯데칠성음료, 제주 삼다수 등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생수병에서 라벨을 제거한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이 많은 화장품 업계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개발한 친환경 화장품 종이 용기가 대표적이다. 화장품 용기는 복합재질 플라스틱으로 많이 만들어져 재활용되기 힘들었다. 일부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은 ‘화장품 어택’ 등 운동을 통해 개선을 촉구했다. 업계에서도 단일 재질로 용기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유통기한 단축, 자외선 차단, 제품 보존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 중 하나가 종이 튜브 용기 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기존 용기 대비 70%가량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기업들의 변화 바람에 소비자들도 호응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의 무라벨 생수 ‘아이시스 8.0 ECO’ 판매량은 500% 급증했다.

제과업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롯데제과는 일부 대용량 과자 제품에 쓰이는 플라스틱 완충재를 종이 재질로 바꾸기로 했다. 또 플라스틱 트레이나, 컵 형태의 용기에 담겨 유통되는 과자 제품(칸쵸, 씨리얼 컵 등) 용기도 플라스틱에서 종이 재질로 교체할 계획을 검토 중이다. 해태제과의 대표 제품인 ‘홈런볼’에 쓰이는 플라스틱 트레이도 내년부터는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용기로 교체될 예정이다.

윤혜인 인턴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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