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에 돈쭐내주자"..미닝아웃족을 아십니까

추동훈 2021. 6. 2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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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MZ세대들은 돈쭐에 열광할까

[추적자 추기자] 여러분, 돈쭐난 적 있으세요? 거의 없으실 겁니다. 근데 반대로 돈쭐낸 적 있으세요? 그러신 분들은 꽤 계실 겁니다.

'선행의 주인공이나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행해지는 착한 돈쓰기.'

이런 돈쭐 스토리는 보통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굴되고, 소개되고, 확산되고, 알려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요.

오늘은 커뮤니티의 힘을 확인시켜준 2021년 돈쭐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2021년 5월 경기도 양주시의 한 고깃집. 한 모녀 손님이 사장님에게 갑자기 폭언을 쏟아붓습니다.

코로나인데 왜 자기 옆자리에 다른 손님을 앉혔느냐는 겁니다.

"넌 내가 담에 카운터에서 다시 만나면 가만히 안 놔둔다."

"기분이 나쁘고 더러우니 환불을 해달라."

"방역수칙을 어겼으니 신고하겠다."

폭언과 협박, 그리고 환불까지 요구한 갑질 모녀의 행태는 녹취록과 문자, CCTV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해당 고깃집 사장님이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린 글에 의하면 이틀간 잠을 못 자고 손발이 떨려 정신과에서 약까지 처방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 갑질 모녀는 보배드림에 억울하다며 모함글까지 썼다가 삭제하기도 했는데요. 대한민국 네티즌이 누굽니까! 당연히 박제돼 널리널리 퍼진 상황입니다.

이런 사실이 모두 밝혀지자 신상이 탈곡기 털리듯 털린 것은 물론 망신이란 망신을 다 당했습니다.

반대로 고깃집 사장님은 돈쭐이 나게 됩니다. 보배드림에서는 이들 부부 사장님께 힘을 내라며 죽과 음료수, 꽃다발과 화환 등 위로 선물을 보내고 있습니다.

화환에는 '돈쭐나시고 마음 푸세요'라는 훈훈한 문구가 담겼고요.

출처=보배드림
어떻게 알았는지 주인댁 카카오톡으로 카카오 선물하기 폭탄도 쏟아졌는데 주인 부부는 받을 수 없다며 모든 선물을 취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주인 부부의 통장으로 진짜 돈까지 연이어 입금되며 진짜 돈쭐내는 사람들이 제대로 혼을 내고 있죠.

주인 부부는 일단 입금된 돈은 좋은 곳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선한 영향력 가게에도 선정된 해당 고깃집에는 손님들 발길도 끊이지 않으며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근데 너무 손님이 많아진 탓이었을까요. 주인 부부는 건강 악화와 방역 문제 등으로 인해 당분간 휴무를 한다며 문을 닫았습니다.

워낙 성실하고 친절했던 두 부부를 지켜본 주변 상인들은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는데요.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해 장사를 재개하길 희망합니다.

사실 올해 돈쭐의 베스트 어워드를 수상한다면 그 주인공은 독보적으로 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인7호 로고

훈훈한 사연이 알려지자마자 뜨거운 돈쭐로 올해 가장 핫했던 곳, 바로 철인7호 홍대점입니다.

혹시 철인7호 들어보셨나요? 철인28호도 아니고 7호? 로봇 제조사인가? 애니메이션 가게인가? 둘 다 아닙니다.

바로 맥주의 영원한 동반자, 치킨가게입니다. 사이즈가 7호(영계)인 7호 닭만 쓴다는 철인7호 홍대점은 왜 돈쭐이 났을까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형제가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를 잃었고 현재 할머니와 함께 살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쫄쫄 굶었습니다.

형은 아르바이트 중 가장 힘들다는 택배 상하차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버텨왔는데, 철없는 동생이 치킨이 먹고 싶답니다.

형은 수중의 5000원을 들고 치킨가게를 돌아다녔어요.

5000원어치만이라도 치킨을 먹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전부 거절당했죠. 그렇게 망원시장부터 홍대까지 걸어가던 두 형제가 들어간 가게가 바로, 철인7호 홍대점입니다.

한국판 우동 한 그릇 사건이라 비유되는 이번 미담의 주인공인 가게 사장님은 달랑 5000원을 들고 입구 앞을 서성이는 두 형제를 가게로 들입니다.

그리고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를 대접합니다. 닭 한 마리 반이 들어가는 1만9900원짜리 메뉴인데 그냥 닭 두 마리를 튀겼대요. 많이 먹으라고요.

당시가 2020년 초, 코로나19가 대유행했던 시기예요. 당연히 장사는 안되고 매출은 반 토막 났죠.

월세도 못 내고 식자재값도 못 내 물건 발주도 못하고 있었대요. 손님은 없고 홀은 텅텅 비어 마음이 무거웠을 텐데 사장님은 그냥 닭 두 마리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돈도 안 받았어요. 되레 사탕을 줬다고 합니다.

철부지 동생은 형 몰래 치킨집을 몇 번 더 찾아갔습니다. 이때마다 사장님은 공짜로 치킨을 내줬습니다. 더벅머리 초딩 동생을 데리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깎아줬대요.

미용실 사장님도 눈치가 빨랐던지 공짜로 잘라줬습니다.

치킨을 대접받은 고등학생이 쓴 손편지 /사진 출처=김현석 철인7호 대표이사 인스타그램
그리고 1년 뒤 코로나로 자영업자가 힘들다는 뉴스를 본 고등학생 형은 철인7호 홍대점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철인7호 본사로 보냈습니다.

이게 언론에도 알려지며 화제를 모읍니다.

선행이 알려지자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득달같이 돈쭐내기로 결심합니다. 커뮤니티마다 미담이 줄줄이 퍼졌고요.

배민, 쿠팡이츠 등 배달 앱에서 철인7호 홍대점 치킨이 불티나게 주문됩니다. 어 근데 강원도요? 제주도요? 막 상식적으로 절대 배달받을 수 없는 지역에서 막 주문이 들어오는 거였습니다. 이들은 그냥 치킨은 먹은 걸로 할 테니, 치킨값은 받으라면서 돈쭐을 마구마구 내기 시작합니다.

철인7호 홍대점에는 선물들도 쏟아졌고요. 응원 메시지와 함께 넘쳐나는 주문으로 본사 직원 4명이 지원했고 튀김기도 늘렸습니다.

얼떨떨한 사장님은 돈쭐의 무서움을 직접 체험하고있다며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심지어, 유느님, 유재석 역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곳 홍대점을 찾아 돈쭐을 내줬습니다. 와 전국구 돈쭐각이죠.

사실 저도 직접 주문해 먹어봤는데요. 진짜 맛좋았습니다. 근데 주문하려면 이미 마감된 경우가 5번쯤 있었어요.

올해 3월 사장님은 돈쭐 주문으로 생긴 300만원과 후원금 200만원, 자기 돈 100만원을 보태 총 600만원을 마포구청 꿈나무 지원사업에 기부합니다.

파도파도 미담만 나옵니다. 그렇게 철인7호는 2021년 돈쭐의 전설 아닌 레전드를 찍게 됩니다.

#번개탄 극단손님 막은 마트

한 손님이 슈퍼마켓에서 20분간 서성입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가게를 돌아다니던 손님은 소주 2병과 번개탄을 집어듭니다.

계산을 하고 보니 주인의 촉이 약간 싸하죠. 수상함을 느낀 슈퍼 주인은 재빨리 손님의 차량번호를 외우고 112에 전화를 겁니다.

왜 영화 추격자의 슈퍼 아줌마는 이런 촉이 없었을까요.

경찰은 2시간 만에 해당 차량을 확인합니다. 역시나 해당 손님은 극단적 선택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경찰의 회유로 다행히 그는 가족의 품으로 무사 귀가합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이야기는 지난 2월 전북 전주시에서 발생한 실화입니다.

마트 사장님은 예리한 촉과 판단력으로 한 생명을 구했는데요.

경찰은 신속한 신고로 시민을 구조한 이 사장에게 감사장을 수여합니다.

해당 뉴스 역시 온란인과 커뮤니티에 퍼져나가며 돈쭐의 주인공으로 등극합니다.

사실 고깃집이나 치킨집에 비해 돈쭐낼 핵심 메뉴는 없지만 네티즌들은 물건 재고 가득 채워놓으라며 돈쭐 채비에 나섰습니다.

#왜 MZ는 돈쭐에 열광하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금까지 올해 온라인 커뮤니티가 돈쭐낸 가게 3곳을 살펴봤는데요.

이런 돈쭐 문화,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착한기업을 추려내고, 이들을 돈쭐내는 소비 행태를 '미닝아웃' 소비라고 하는데요.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숨겨왔던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힌다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의 합성어입니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드러내는 사람들을 아예 미닝아웃족이라고 부르는데요.

미닝아웃족으로 대표되는 MZ세대는 이러한 가치소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과거 나쁜 물품 구매를 거부하는 보이콧 운동이 이러한 소비자 운동의 대표적 행태였다면, MZ세대는 직접 물건을 사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이콧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저 돈으로 혼내는 게 다라고 생각했던 돈쭐이,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다가오는 여름, 또 어떤 가게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 돈쭐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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