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극단 '노란리본'이 보낸 참사 이후 7년

고주영 2021. 6. 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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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 릴레이 기고 "불빛과 노트들" ①] 죽음이 남긴 불빛을 쫓아

2021 제22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기간 중에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소수자, 인권, 평등에 대한 감각, 차별, 대항표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칩니다. 불빛을 따라 자신만의 노트를 써가고 있는 문화·예술인 6인의 글을 릴레이 기고 "불빛과 노트들"을 통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고주영]

"먼저 떠난 이들의 손에 이끌려, 혹은 그 손을 놓지 않아 간신히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적은 적이 있다. 내가 기획한 작업들의 시작에는 '죽음'이 있었다.

한 건축가이자 예술가로 하여금 독립국가를 선포하게 했던 3.11 동일본 대지진(<움직이는 집@서울>(2012), <제로 리:퍼블릭>(2015)), <변칙 판타지> 연극 무대에 오른 지보이스가 '북아현동 가는 길'이라는 노래에 담아 그리워했던 친구, 미국 소도시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매튜 셰퍼드(<래러미 프로젝트>(2019), <래러미 프로젝트: 십년 후>(2020)), 고작 예닐곱 시간의 순례에 불과했지만, 그 고통과 슬픔, 분노에 다가가고자 했던 세월호 참사 후 5년 간의 <안산순례길>. 

올해 3월 김비 작가의 희곡 데뷔작 <물고기로 죽기>를 준비하던 기간 중에 전해진 세 트랜스젠더의 죽음과, 그 이전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이들. 어쩌면 나는 단지 '죽음'이라는 결말이 나타날 때 현실을 새삼스레 깨닫는, 지극히 평범하고 적당히 무딘 사람일 뿐인 지도 모른다.

노란리본의 공연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두 번째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의 한 장면. 연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간고한 시간 속에 희망을 잉태하는 내용을 담았다.
ⓒ 416가족극단
죽음과 상실을 동력으로 꾸려진 극단이 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로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이를 잃은 유가족 어머님들로 이루어진 연극팀이다. 참사와는 무관해 보이는 안산 공단 지역 노동자 역할로 분했던 첫 작품 <그와 그녀의 옷장>(2017) 이후 어머니 배우들은 안산의 이웃(<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2018)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보여줄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여자고등학생으로 변신(<장기자랑>, 2019)했다가, 참사로부터 7년간 세월호를 둘러싼 여정을 바라보는 노란리본 역할(<기억여행>, 2021)을 한다.

여전히 그 진상을 알지 못하는 시간의 끝에 자식을 잃은 어머님들은 처음엔 그저 마음의 치유를 위해 연극을 시작하셨다 했다. 이 어머님 배우들은 "기억하겠습니다"를 외쳤던 사람들만을 바라보며 쉽게 치유와 희망을 말하는 대신,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서 쏟아냈던 세월호에 대한 각종 억측과 오해, 혐오까지 일삼는 이웃들, 면식조차 없는 누군가의 말을 당신들의 입을 통해 발화하고,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가는 '우리'를 바라보며 느낀 마음과 생각을 점점 더 솔직하게, 점점 더 날카롭게 던진다.

노란리본의 공연을 볼 때마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장면 너머로, 저 혐오의 말들을 직접 뱉어내는 연기를 하기 위해, 이제는 없는 아이 역할을 직접 해내기 위해 저분들이 통과해온 시간을 떠올린다. 그 무게와 진동과 정동을 한없이 가늠해본다. 노란리본의 무대는 상실과 죽음의 실체를 사유하게 만들고, 운좋게 살아남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매번 다시, 또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 내 삶의 지극히 일부이기를,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를 바라면서도 예술인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특권의 유혹에 넘어가고 싶을 때, 가끔, 아니 자주, 예술의 무력함에 무릎을 꿇고 싶을 때, 이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얼굴과 목소리를 되새긴다.

스스로의 치유가 무대가 되고 연극이 되고 기억을 위한 활동이 되었고 점차 세월호뿐 아니라 부당한 권력, 억압, 차별에 맞서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싸우는 투쟁의 장에 어머님 배우들의 모습이 보인다.

"매키니씨, 당신에게 자비를 보여주는 것이 저한테는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전 당신의 목숨을 허락하려 합니다. (중략) 당신은 나한테서 아주 소중한 것을 앗아갔고 난 그걸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키니씨, 나는 더 이상 살지 못하는 사람을 기억하라고 당신에게 삶을 줍니다. 오래 살게 되기를, 매일매일 매튜에게 감사하기를."

노란리본의 배우 한 분을 <래러미 프로젝트>에 초대하고는 매튜 아버지의 이 대사가 나오는 순간, 나의 초대가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는지 스스로를 탓했다. 하지만,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살아 있다면 스물두 살이 되었을 우리 아이가 꿈꿨을 세상이 어떤 세상일까를 자주 생각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물고기로 죽기>를 보러 오셔서는 김비 작가님의 손을 덥석 잡아주기도 하셨다. 몇몇 어머님과 나는 매년 정기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지보이스 팬클럽을 결성하기도 했다.

"현재를 사는 것은 과거 사람들의 삶 위에 마지막으로 놓인 돌멩이 하나 같은 것이다. 삶은 죽은 자에 대한 생각으로 이뤄진다." (이소마에 준이치 저, <죽은 자들의 웅성임>(글항아리, 2016))

노란리본의 이 어머님들이야말로 죽음과 상실 앞에 "애도하고 투쟁하는" 진짜 예술가이자 실천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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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고주영 : 몇몇 예술 축제와 지원기관을 거쳐 2012년부터 공연예술 독립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안산순례길>(2015~2019), 정상성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들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플랜Q](<래러미 프로젝트&십년 후>),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연습 프로젝트]( <1. 연출 연습-세 마리 곰> <2. 연기 연습-배우는 사람> <3. 극작 연습-물고기로 죽기>) 등을 기획·제작했다. 연극, 극장, 예술과 그 바깥의 사이에 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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