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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었네'..일본 도굴꾼 훑고간 백제 왕릉고분 88년만에 드러났다

노형석 입력 2021. 06. 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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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도굴왕'이 훑고간 백제 왕릉무덤은 텅 비어 있었다.

1933년 그가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는 충남 공주군 송산리 고분군의 왕릉급 무덤 '29호분'이 88년 만에 실체를 드러냈다.

위치나 구조 면에서 조성 시기가 송산리고분군의 핵심인 무령왕릉보다 늦은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소 쪽은 분석했다.

송산리고분군에는 백제가 웅진(공주)에 도읍을 두었던 시기(475∼538)의 왕릉급 무덤들이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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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옆 공주 송산리 29호분 조사결과 발표
최근 위치를 찾아내 재발굴한 공주 송산리 29호분 내부 무덤방 바닥 모습. 벽돌이 깔린 바닥 위에 관대 2개가 놓여있다.

일본인 ‘도굴왕’이 훑고간 백제 왕릉무덤은 텅 비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백제 유적들을 무단 도굴해 악명을 떨치다 해방 뒤 막대한 유물들을 품고 돌아간 교사 출신의 가루베 지온. 1933년 그가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는 충남 공주군 송산리 고분군의 왕릉급 무덤 ‘29호분’이 88년 만에 실체를 드러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공주시는 일제강점기에 조사했으나 유적 상황과 위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송산리 29호분 자리를 최근 찾아내 발굴한 결과 바닥에 벽돌을 깐 무덤 내부 얼개를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주인을 밝히는 부장품 등은 찾지 못했다. 위치나 구조 면에서 조성 시기가 송산리고분군의 핵심인 무령왕릉보다 늦은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소 쪽은 분석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조사 당시 찍은 송산리 29호분 무덤방 내부의 모습.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리건판 사진이다.

무덤방 남북 길이는 340∼350㎝, 동서 길이는 200∼260㎝다. 상부 천장 구조는 발견 당시에도 사라진 상태였고, 벽돌로 만든 바닥과 옆 벽면 일부만 남아있다. 벽면은 깬돌을 쌓고 회칠했고, 입구는 벽돌을 쌓아올려 막았다. 입구에서 무덤방에 이르는 길(연도)은 무덤방처럼 바닥에 벽돌을 썼고, 연도에서 이어지는 무덤길(묘도)에도 벽돌로 만든 배수로가 드러났다. 벽돌 대부분은 무늬와 글자가 없으나, 무령왕릉처럼 연꽃무늬와 ‘중방’(中方) 글자가 있는 벽돌도 소량 나왔다. 연구소는 유적의 디지털 기록 작업을 벌여 사라진 상부 얼개를 가상현실(VR) 그래픽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송산리 29호분 발굴현장 전경.

송산리고분군에는 백제가 웅진(공주)에 도읍을 두었던 시기(475∼538)의 왕릉급 무덤들이 모여있다. 올해 발굴 50주년을 맞은 무령왕릉과 1∼6호분이 동서 축을 따라 배치된 얼개다. 새로 확인된 29호분은 6호분에서 남서쪽으로 약 10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한다. 6호분, 5호분이 있는 지점과 이으면 삼각형을 이루며, 북쪽 꼭지점에 해당하는 6호분 북동쪽에 무령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29호분은 가루베가 발견한 뒤 총독부 고적조사 담당자였던 아리미쓰 교이치가 정식조사를 벌여 소량의 장신구·철기·관못 등을 발굴했다고 알려져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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