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중립 걷어찬 '감사원장 1호'

김미나 2021. 6. 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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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임기 안 마친 채 사의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들머리에서 사의표명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사퇴했다. 최 원장은 이날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오늘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 출마 의사가 있나’라는 질문에는 “사임하는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다”며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숙고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답했다. 사실상 대선 도전 의사를 밝힌 것이다.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감사원장이 정치 참여를 위해 임기 중간에 물러나는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앞서 이회창·김황식 전 감사원장이 정치권에 입문했지만 이들 모두 국무총리를 거치며 ‘유예기간’을 뒀다.

감사원은 행정기관의 업무와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헌법기관이다. 감사원의 권한 또는 직무 범위가 침해되지 않도록 헌법에 설치 근거가 명시되어 있고, 헌법 제98조 2항에 ‘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 정치 참여를 위한 최 원장의 사퇴는 헌법이 규정한 이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송두리째 훼손한 것이다.

최 원장이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을 사임 배경으로 밝힌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최 원장 스스로 헌법기관장이 야권의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을 몇달간 묵인했다. 대선 출마설에 명확히 선을 그었다면 일찌감치 거취 논란을 종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 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거취를 묻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질문에도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최 원장이 월성 원전 경제성 감사, 김오수 감사위원 선임 등을 놓고 문재인 정부와 겪은 불화가 정치권 입문의 명분으로 소환된다. 하지만 그러므로 더욱 정치권과 거리를 둬야 했다는 지적이 크다.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는 감사원법 2조를 앞세우며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결과적으로 보수 야권 내 지지 기반을 마련한 계산된 행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원장 사퇴설에 반신반의하던 감사원 내부에서는 배신감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감사원의 한 직원은 <한겨레>에 “감사원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업무를 공정하게 하라는 것이지 그것으로 국민한테 인기를 얻어 정치의 밑받침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게 모양새가 안 좋다. (감사원을 향한) 의리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여당도 최 원장의 정치권 입문은 ‘내로남불의 결정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경북 구미에서 열린 ‘경북도 예산정책협의회’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현직 감사원장이 임기 중 사표를 내고 대통령 선거에, 그것도 야당 후보로 나가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감사원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이 과거 청와대가 추천한 ‘김오수 감사위원’을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거절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그렇게 거절한 본인이 감사원장 그만두고 야권 대선후보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말이 맞지 않는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야권에선 초읽기에 들어간 최 원장의 정치권 입문을 반기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 원장에 대해서 항상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고, 저희와 공존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환영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최 원장은) 아주 맑고 고운 분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으로서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추어올렸다.

그러나 최 원장이 당장 국민의힘으로 입당할 것인지를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정치 참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잦아들 때까지 당분간 당 밖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정치적 기반이 부족하고 인지도·지지율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따라잡아야 하는 위치여서 비교적 신속히 입당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전 총장이 입당을 최대한 늦추면서 중도층을 겨냥하려 한다면, 최 원장은 먼저 입당해서 당내 1위 주자 자리를 확보하려는 계산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나 김지은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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