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님'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수평적인가

전혜원 기자 2021. 6. 2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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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대신 티셔츠를 입고 서류가방이 아닌 백팩을 멘다고 내면도 수평적이었을까? '민주주의는 직장 문 앞에서 사라진다.' 우리의 노동에 인간적 모멸을 참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6월7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그린팩토리 앞에서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관계자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이버 직원이 지난 5월25일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일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임원이었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구성원 3명은 자체 조사를 벌였다. 20명에 가까운 고인의 동료, 지인을 만났고 사내 메신저 등 기록을 살폈다. 이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초기 정황을 발굴하고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시사IN〉은 조사를 주도한 네이버 노조 기조국장 ㄴ씨 등을 만났다. 조사 결과를 참고해 사건을 시간순으로 복원했다. 이 기록은 완벽하지 않고, 이견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이 기록은 우리 시대 직장에 관한 일말의 진실을 알려준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김동준씨(가명·40대)는 네이버 지도앱을 만드는 개발자였다. 지도 만드는 일을 10년 넘게 해왔다. 평소에 주변 지인들에게 네이버 지도 서비스의 개선점을 물었다. 주말이나 밤늦은 시간에도, 밥을 먹다가도 업무 연락이 오면 늘 답변했다. 김씨는 개발자이면서 ‘리더’라 불리는 조직장이기도 했다. 실무와 조직 관리를 둘 다 했다.

A는 2019년 1월 네이버에서 지도 개발을 맡는 ‘리더’ 중 한 명으로 입사했다. 2019년 1월31일 지도 서비스 개발인력 60여 명이 모였다. 한 직원이 A의 ‘과거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질문했다. A는 일부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 자리에는 경영진 C도 있었다. 경영진 C는 이렇게 말했다. “A에게 문제가 있으면 A에게 말을 하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말해라, 내가 책임지겠다.”

몇 달 뒤인 2019년 5월17일 김씨를 포함한 조직장 14명이 경영진 C를 찾아가 1시간 동안 면담했다. A의 “강압적인 의사소통(‘당신은 패착이다’ ‘너는 이 일을 하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 등), 조직체계를 무시한 업무지시, 회의 중 물건을 던지는 행위, 협의를 거쳐 결정된 기획안에 대한 의사결정 번복, 설명을 듣지 않고 혼을 내려는 태도 등의 문제점과 이로 인한 업무적이거나 심리적인 괴로움을 토로”했다. 경영진 C는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2019년 6월에는 한 직원이 퇴사했다. 경영진 C와의 퇴사 면담에서 그는 “A 때문에 퇴사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A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경영진 C를 찾아간 조직장 14명 중 4명은 면담 두 달 만에 보직에서 해임되었다. 이듬해인 2020년 1월까지 남은 조직장 10명 중 4명이 퇴사했다. 2020년 2월, A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조직장인 김동준씨의 직속 상급자가 되었다.

지도앱 중에서도 내비게이션 업무를 맡은 김씨의 팀원은 4명이었다. 2020년 7월과 8월, 팀원 2명이 연이어 퇴사했다. 인력 충원은 없었다. 김씨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여름 인턴십 과정을 거친 이에게 정규직 전환을 제안하기도 했다. 해당 인턴은 입사를 거절했다. 임원 A의 질책이 심했던 점을 이유로 들었다.

2020년 10월16일, 임원 A는 말했다. “팀원 ㄱ님 이직하면 (김동준씨는) 나한테 죽어요.” 2020년 11월18일 김씨는 동료에게 이렇게 털어놓는다. “A가 나를 거치지 않고 팀 멤버들을 직접 매니징(관리)하여 최근 퇴사한 사실 때문에 고민이 많다.” “업무도 과중한 상황에서 팀원을 트레이닝시키고 이제 적응할 만큼 성장시켜 놓았는데 A 때문에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허탈하고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

2021년 들어 김씨의 업무가 더 많아졌다. 5월 출시 목표로 내비게이션 기능을 개편해야 했기 때문이다. 2021년 1월28일 김씨는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두 달짜리 업무가 매일 떨어지고 있어서 매니징하기 어렵다.”

‘뭘 해도 안 되겠구나’라고 느꼈다

2021년 3월4일 임원 A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다시 나왔다. 이해진 GIO와 한성숙 CEO도 참석한 회의에서, 한 직원이 임원 선임의 적절성을 물었다. 구성원들이 단체로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경영진에게 냈는데도 임원으로 승진했고, 이전의 회사에서 비위 의혹이 있으며, 운전면허가 없는데도 내비게이션 개발을 총괄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사실상 임원 A를 지칭한 질문이었다. 이에 인사담당 임원 D는 이렇게 답했다. “책임리더(임원)는 경영리더와 인사위원회가 검증하고 있으며 더욱 각별하게 선발하고 있다.”

2021년 3월26일 김씨는 동료에게 사내 메신저를 통해 A로 인한 자괴감을 호소했다. A는 ‘개발자’인 김씨에게 ‘기획안’을 짜오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2021년 5월7일 다음 프로젝트를 정하는 회의에서 김씨가 아이디어를 내자마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면박을 준 뒤, 5분 뒤 김씨와 같은 내용의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A는 다른 이들에게도 자괴감을 느끼게 하거나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일이 많았고, 복수의 직원들이 이를 ‘가스라이팅’에 비유했다. 심리치료나 정신과 상담을 받은 직원도 있다고 한다). 2021년 5월21일 김씨는 휴가임에도 사내 메신저로 업무를 수행했다. 김씨는 그로부터 나흘 뒤인 5월25일 숨진 채 발견되었다.

A가 네이버에 입사한 2019년 1월부터 총 3차례, 경영진 C 등이 참석한 회의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A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개인적 문제 제기도 적지 않았다. 복수의 퇴사자가 퇴사 이유로 임원 A를 언급했고, 이 중에는 경영진 C에게 직접 말한 직원도 있었다. 퇴사하는 직원에게 인사팀이 먼저 “임원 A 때문에 퇴사를 하느냐”라고 직접 물어볼 정도였다.

왜 A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네이버 홍보팀 관계자는 “문제 제기 여부나 내용, 그에 대한 대응 등을 포함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단계에서 하나하나 확인해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김두나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노동자가 노무제공 과정에서 심한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필요한 보호조치를 하는 것이 사측의 의무다. 법원 판례는 이것이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안전배려 의무’이며 이를 어기면 불법행위라고 인정해왔다. 이 사건에서 회사는 임원 A에 대한 호소와 문제 제기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안전배려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은 A가 네이버에 입사한 2019년 1월 이후인 2019년 7월16일부터 시행됐다. 김두나 변호사는 “모욕적인 대우 등이 반복되었다고 입증된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사실확인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면 이 역시 법 위반이 된다. 특히 고인은 업무강도가 가중되는 상황이었는데, 업무강도가 높은 조직일수록 괴롭힘이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고인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만들어질 때부터 ‘가해자 처벌 규정이 없다’거나 ‘사업주에게 신고하라니 말이 되나’라는 냉소를 받았다. 그럼에도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회사에 신고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주면 처벌받는다고 명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신고란 어떻게 작동할까.

네이버에도 ‘노크’와 ‘위드유’라는 이름의 사내 신고 채널이 있다. 지도 업무를 하던 한 직원은 올해 3월 임원 B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사내 채널로 신고했다. 외부 기관과 면담을 진행했으나, 조사 리포트는 면담에서의 발언 내용보다 약하게 작성되었다. 신고한 직원은 이후 ‘인사팀 기타’로 발령받았고 결국 신고 다음 달 퇴사했다. 퇴사 뒤에 회사로부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최종 공지를 받았다.

노조 자체조사를 진행한 기조국장 ㄴ씨는 “지도 업무를 하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문제를 이야기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상급자도 하급자를 평가하지만 하급자도 상급자를 평가(상향 평가)한다. 조직장들은 직접 문제 제기를 했을 뿐 아니라 상급자인 임원 A에 대해 (좋지 않은) 상향평가도 했다. 그런 만큼 뭔가 바뀔 것이라고 기다렸는데 아무 조치가 없으니 ‘뭘 해도 안 되겠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노동조합의 대처도 여의치 않았다. ㄴ씨의 말이다. “A가 입사할 때부터 노조 쪽으로도 우려가 많이 들어왔다. 노조는 지도 업무를 특정해서 직장 내 괴롭힘이란 무엇무엇인지 알리는 홍보물을 뿌리고, 노조에 신고를 독려하는 자석도 나눠주며, 소규모 그룹 인터뷰도 진행했다. 인사팀과 만나 상향 평가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구성원 이탈이 계속되는데 지도 조직을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닌지 물었다. 원론적 답변만 돌아왔다.”

노조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임원 B에 대한, 사내 채널을 이용한 신고마저 묵살된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서 회사는 리스크 관리위원회를 통해 ‘외부 기관’에 조사를 맡긴다고 강조하는데, 앞서의 임원 B 신고도 외부 기관이 조사했다. 조사를 외부 기관이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처분 결정을 회사가 한다는 게 본질이다. 이번 조사를 맡기는 리스크 관리위원회는 모두 사외이사로 구성되고, 그들은 경영진이 임명한다. 회사 쪽 위탁을 받아 조사하는 외부 기관이 사측의 아픈 곳을 지적할 수 있을지에도 불신이 많다.”

네이버 노조는 적어도 문제해결 과정에서부터는 회사가 노조와 함께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회사가 이번 조사를 결정하면서 노조의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 노조가 자체 조사를 발표하며 고인의 출퇴근 기록이나 임원 검증 절차, 퇴사 면담 이력 등 자료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부했다. 노조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위원회를 꾸리자는 요구에도 답이 없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인사 문제에 대한 직원들의 견제와 감시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 인사·경영권은 어떤 상황에서도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남아야 할까? 소수 경영진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회사가 모든 걸 알아서 하려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나. 무엇보다 회사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게 도리다.”

이번 사건으로 IT 기업의 조직문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비슷한 시기 카카오의 근로기준법 위반도 드러났다. 네이버 노조 기조국장 ㄴ씨는 ‘IT 기업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이미지’가 “신기루였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양복 대신 티셔츠를 입고, 서류가방이 아닌 백팩을 멘다고 내면도 수평적이고 자유로웠을까? 임원 A는 고인을 ‘○○님’이라고 불렀다. ‘팀원 ㄱ님 이직하면 ○○님 나한테 죽어요’라고 했다. ‘님’이라는 말은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한 건데 존중은 없고 껍데기만 남았다. ‘민주주의는 직장 문 앞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임원 A는 김씨의 연봉 인상과 인센티브, 스톡옵션, 조직 이동 등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평가와 보상에 대한 상급자 권한이 너무 크다. 임원 선임을 검증하는 인사위원회의 구성도 공개되지 않는다. 인사나 경영 영역에 직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할지 논의해야 한다. 우리의 노동에 인간적 모멸을 참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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