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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멈춘 원전, 올해는 안전할까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입력 2021. 07. 0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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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의 교훈..가장 위험한 건 전원 상실"

(시사저널=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4월26일부터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에 대한 정기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고리원전은 태풍 '마이삭'이 상륙했던 지난해 9월3일 가동이 정지됐다. 1·2호기는 전원이 상실되는 말 그대로 비상사태였다. 그로부터 나흘 뒤 태풍 '하이선'이 경주 월성원전을 강타해 2·3호기의 터빈 발전기가 잇따라 멈춰섰다. 전기 송출설비에서 누전이 연속 발생하면서 터빈 발전기가 자동 정지한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태풍에 전원 설비가 고장 났다고 해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원전 안전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원전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전원 상실"이라고 말했다.

원안위는 이번 정기검사에서 고리원전의 태풍 피해 대비 현황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태풍이 몰고 온 염분이 전력 설비에 닿아 스파크가 일어나는 '섬락(閃絡·flashover)' 현상으로 전원이 차단됐기 때문이다. 고리원전은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도 멈춰선 적이 있다. 염분이 원인이었다. 당시 한수원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안전대책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한수원의 '안전대책'이 '날림대책'이란 비난을 받는 이유다. 한수원은 2020년 9월 태풍 사고 후에 부랴부랴 염분 흡착 방지 설비 변경에 나섰다.

2020년 9월3일 태풍 마이삭이 몰고 온 강풍으로 가동을 멈춘 고리원전 3호기와 4호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조사 결과 이날 발생한 원전 집단정지는 강풍을 타고 날아온 염분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연합뉴스

태풍 때마다 멈춰서는 원전, 사고 조짐인가

원안위는 한수원이 태풍에 대비해 전력계통 조치를 적절히 추진했고, 최근 3년간 사고·고장 사례 반영사항 등을 검사한 결과 신고리 2호기의 향후 원자로 임계가 안전하다고 판단해 6월18일 임계를 허용했다고 밝혔다. 임계는 핵분열 연쇄반응 과정에서 생성되는 중성자와 소멸되는 중성자 수가 같아져 평형을 이루는 상태다. 4월23일 고리원전 2호기 원자로가 또 멈춰섰다. 원인은 섬락(전기불꽃) 현상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9월 태풍 때와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난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작업자의 안전 부주의 탓으로 돌렸다.

올해는 강하고 센 태풍 4개 정도가 한반도를 통과할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보고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여름처럼 라니냐(동태평양 적도 부근의 저수온 현상)가 끝난 뒤 중립 상태로 접어드는 시기에는 강하고 센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라니냐가 멈추면서 태풍과 폭우가 몰아쳐 역대급 피해가 발생한 2018년과 같은 상황이란 것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원전의 태풍 대비책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데, 올해 대형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악몽을 한수원이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반도 태풍의 상륙 경로인 동해안을 따라 18개 원전(고리 5, 새울 2. 월성 5, 한울 6)이 밀집해 있다. 원전은 냉각장치에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바닷가에 입지한다. 한수원과 원자력 학계는 우리나라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지난해 태풍으로 부산·울산·경주에서 원전 8기가 멈춰섰다. 앞서 1987년 7월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고리 1~4호기 원자로 가동이 중지됐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도 고리 1~4호기와 월성 2호기 원자로가 정지됐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의 경고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전국 원전 인근 지역 동맹 소속 16개 지자체는 5월31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원전 사고 원인을 태풍 등으로 돌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반드시 책임소재를 가려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풍으로 원전 가동이 중단되면 고온의 핵연료를 식히지 못해 멜트다운(원자로의 노심부가 녹는 현상)으로 이어져 위험한 사태가 올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수소폭발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1년 3월 쓰나미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 후인 5월 이명박 정부는 50개 과제 안전개선 대책을 수립해 한수원에 이행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행률은 56%에 불과하다. 그나마 완료된 사업들도 당초 발표와 다르거나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김호철·한준호 원안회 위원은 "후속 안전대책을 급하게 서둘러 만든 게 문제 발생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태풍으로 인한 원전 가동중지 사고는 계속 이어지자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300억원을 들여 태풍으로 고장이 발생한 설비를 모두 지중화하거나 외부 영향이 없도록 가스절연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기관 원전 전문가는 "쓰나미와 태풍은 재해 성격이 비슷해 '별도 대비'할 필요가 없는데도 따로 예산을 배정하고, 동일 유형 사고가 반복되는 건 후속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원안위의 신뢰성도 상처를 입었다. 신고리 사고에서 보듯 원안위의 확인을 거친 재발방지 대책이 시행됐지만, 태풍 사고가 여전히 재발하고 있어서다. 한수원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 파동형 수소 제거 설비에 514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11개 원전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원안위가 재시험에 나서 "성능에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전문기관의 재시험 결과 보고서까지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안전대책에 투입된 사업비를 보면 하드웨어적 개선은 극히 일부에 그치고 대부분 공학적 평가를 통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끝낸 것"이라고 말했다. 한병섭 소장도 "후쿠시마 후속 대책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보여주기식 사업에 그쳤다"고 했다.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기후재난에 원전 안전도 위협

그린피스는 지난해 9월 한반도 대홍수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2030년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태풍 피해가 겹치면 국토의 5% 이상이 침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침수 피해는 서해안에 집중돼 영광의 한빛원전 부지가 포함된다. 2018년 6월 감사원은 "한수원이 2012년 고리원전 침수에 대비해 원전 외곽에 해발 10m의 해안방벽을 설치했지만, 100년 빈도 태풍이 다가오면 바닷물 높이가 최대 17m에 이를 것으로 분석돼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한수원은 안전성 평가 결과에 따라 이달부터 후속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국립해양조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해수면이 매년 3.12㎜씩 높아지고 있다. 원전이 늘어서 있는 동해안 해수면은 매년 3.83㎜ 상승하고 있다. 원전은 해안에 바짝 붙어 있다. 신고리는 200m, 고리는 230m, 월성은 345m 이격돼 있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안선 500m 이내는 언제든지 염해가 발생 가능한 '중염해 지역'으로 태풍 때마다 후진적 원전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8년 동안 원안위와 한수원이 태풍 방재와 염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고, 대책도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한수원은 고리 1·2호기의 해안방벽 1.85m, 높이 10m, 총길이 2.1km로 보강했고, 대규모 배수펌프 시설과 방수문을 설치해 태풍에 충분히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시설물로는 대형 태풍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센 태풍이 예상되는 올해 한수원의 '태풍 대책'이 심판대에 올랐다. 용석록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원전이 자연재해 앞에 맥없이 주저앉고 있다"며 "한수원은 기상이변에 대비해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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