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자식"..고독사한 청년들 방엔 대출 독촉장·공무원 수험서
"이미 버린 자식이니 난 책임 못져요. 처리비용도 못 줍니다."
지난 3월 특수청소업체 '스위퍼스' 대표 길해용씨(37)가 경기도 한 주택에서 숨진 A씨(24)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A씨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A씨의 어머니는 "이미 버린 자식인데 왜 나한테 연락하냐"며 "돈 한 푼 안 줄테니 알아서 하라"라며 전화를 끊었다.
A씨는 16㎡(5평) 남짓되는 집 안 침대 위에서 발견됐다. 숨진 지 열흘이 지난 후였다. 건물주는 며칠 동안 A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집에 찾아갔고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그를 처음 발견했다. A씨는 제대 후 다단계에 빠져 생활고를 겪었다. 사채업자들까지 찾아와 빚을 독촉했다.
특수 청소업체가 문을 열었을 때 집안 곳곳에 잔뜩 쌓인 대출 독촉장들을 발견했다. 가스도 이미 끊겨 A씨 주변에는 휴대용버너, 라면, 즉석밥 등만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특수 청소업체는 2주에 걸쳐 현장에서 유품을 정리하고 변사체에서 나온 오염물들을 끊임없이 닦았다.
길씨는 "A씨 뿐만 아니라 최근 20, 30대 청년들의 고독사 현장을 정리해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는다"며 "취업, 우울증, 생활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쓸쓸하게 시신으로 발견된다"고 했다.
지난해 6월 길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30대 여성의 오피스텔을 청소했다.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이 여성은 우울증 때문에 휴직을 신청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여성의 집 한 켠에는 공무원 수험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마음을 다잡는 글귀를 적은 포스트잇도 붙어 있었다.
길씨는 "이 여성은 해당 오피스텔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들어와 발견됐다"며 "현장 정리를 위해 집에 들어갔을 때 공시 준비를 할 때 썼던 수험서와 글귀가 적혀 있는 포스트잇이 많았다"고 했다. 이어 "유가족은 죽음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특수 청소업체가 다루는 고독사는 가족, 친척들과 왕래가 끊긴 50대 남성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려워진 경제 상황과 코로나19(COVID-19) 여파로 자살, 고독사한 2030대 청년층들에 대한 청소 의뢰가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길씨는 "2, 3년전부터 20, 30대 고독사 현장 청소 작업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며 "코로나19 확산 이후 더 심해져 요새 의뢰가 오면 '50대 남성이냐, 아니면 2030대냐'고 물을 정도"라고 했다. 이어 "연이은 취업 실패로 인한 우울감, 어려운 경제상황에 따른 생활고, 코인 폭락 등 다양한 이유로 젊은층이 홀로 사라져간다"고 했다.
길씨는 "청소를 시작하면 먼저 유품정리부터 시작해 악취가 벤 벽지·장판 제거, 살균, 약품 청소 등을 진행한다"며 "시신에서 나온 오염물이 콘크리트까지 스며들 땐 설비공사도 함께 진행한다"고 했다. 그는 "유품 소각 대행까지 진행하면 길게는 1달 넘게 걸린다"고 했다.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며 유가족, 건물주 등과 갈등을 겪을 때도 많았다. 그는 "악취가 나고 소음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청소하러 간 건물 이웃들과 자주 마찰을 겪는다"며 "시신에서 나온 오염물 처리에 관해 환경부 등에 의뢰하면 '일반쓰레기로 묶어 처리하라'고 해 난처할 때가 많다"고 했다.
지난 4월1일 '고독사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이 제정됐지만 아직 고독하게 사라져가는 젊은층들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시신처리된 40세 미만 청년층은 97명이다.
이에 대해 길씨는 "쪽방촌 등에 거주하는 독거노인이 사망할 경우 지자체, 노인복지기관 등을 통해 대부분 발견돼 고독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오히려 현재 늘어나는 20, 30대 청년들의 고독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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